삶을가꾸는글쓰기/생활일기

불모산 자전거 등반

늙은어린왕자 2007. 3. 4. 21:11
2007년 3월 4일
장유-창원을 가르는 불모산 자전거 등반기

오랜만에 일요일 정기투어에 참여 하고 싶었다. 동호회 사이트를 보니 오늘은 불모산으로 간다고 올려놓았다. 시간 계획은 8시에 사무실 출발 - 8시 30분 전하교 다리에서 2차 집결이다. 그런데 시간을 보니 벌써 8시 30분을 넘고 있어서 할 수 없이 자전거를 차에 싣고 장유로 달렸다. 먼저 산 입구에 가서 기다렸다가 같이 가는 수밖에.

불모산 들머리 계동초등학교 근처에 차를 대놓고 기다렸는데 올 시간이 훌쩍 넘겼는데도 자전거 행렬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생활자전거 몇 대만이 지나갈 뿐이다. 불모산 정상까지는 12km 남짓한 거리. 비포장 산길은 9~10Km 가량 된다. 비가 조금씩 흩뿌리는 가운데 불모산은 짙은 구름에 뒤덮혀 보이지 않는 상황. 돌아가야 하나, 혼자서라도 갈까를 망설이다가 결국 혼자서 라이딩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여름 장유계곡에 왔을 때 꼭 불모산을 한 번 등반하려고 마음 먹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근처 편의점에 들러 검은콩 베지밀 두 개와 작은 생수 한 병을 사서 챙겨넣고 출발했다. 일요일이라 차들이 많았다. 찻길을 달리는 건 언제나 위험천만이다. 그러나 갓길이 제대로 없으니 그냥 감수하고 달릴 수 밖에. 다행히 운전자들이 나를 잘 피해갔다. 그러나 오늘은 위험한 것 보다 매연이 숨통을 조였다.

산길로 접어드니 매연이 줄었다. 그러나 오르막이어서 힘들기는 마찬가지. 비포장 도로로 1Km 남짓 올라가니 갑자기 향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근처에 암자가 있나 둘러보니 계곡에서 어떤 할머니가 한 아줌마에게 무속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굿은 아닌 것 같고 액을 닦아주는 듯 손수건 같은 걸로 아줌마의 가슴을 연거푸 쓸어내리면서 쉴새없이 말을 내뱉고 있었다. 무속 행위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난 인정하고 싶다. 풀리지 않는 속병을 앓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해결수단은 사실 몇 안된다. 저 아주머니가 액풀이행위를 함으로써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보약이 아닐까. 속으로 아주머니의 액이 풀리기를 빌어주었다.

몇 개월 동안 라이딩을 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입원과 아버지의 죽음... 수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수습만 할 수는 없었다. 봄방학 때 자전거를 타고 천문대를 두 번 오르고 오늘이 세 번째다. 그래서일까. 조금 올라갔는데도 숨이 찼다. 언제나 그렇듯이 힘들면 포기할까 말까 망설이게 된다.

차 소리가 멀어지는 만큼 안개(구름)가 짙어진다. 비는 한 두방울씩 끊임없이 떨어진다. 금새 몸에 땀이 밴다. 그래서 윗도리를 벗었다. 조끼 런닝만 입고 올라가도 뿜어나오는 열 때문에 전혀 춥지 않다.

첫 번째 이정표가 나왔다. 불모산 등산로가 표시되어 있고, 용지봉까지 거리(2.5Km였나?)도 나와있다. 젊은 등산객 한 명이 혼자 용지봉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내려서 물을 마셨더니 몇 년 묵은 체증이 풀리는 느낌이다.

승합차 뒤로 당산나무에 제사 지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을 주민들이다. 제사가 다 끝난 모양이다. 짐을 챙기고 있었다. 인심 좋게 생긴 아저씨가 아주머니들 보고 내게 떡이랑 술 좀 챙겨드리라고 소리쳤다. 그냥 사양하고 가려다 제사음식 나눠먹으면 좋다는 생각으로 다가갔더니 아주머니가 시루떡을 네 개나 들고왔다. 난 자전거를 타고 와서 들고갈 수가 없다며 정중히 사양하고 막걸리 한잔에 바나나 하나를 얻어먹었다.

바람이 불고 비가 제법 쳤다. 마을 주민들은 제사가 마침 잘 끝났다며 안도하였다. 그러나 난 걱정이다. 비를 맞고 계속 가야하나, 반도 못 왔는데 그만 내려가야 하나. 구름 속에 잠겨 있는 산길은 말이 없었다. 이럴 때면 늘상 하는 방식이 있다. 계속 가자.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비가 오면 맞으면 되지. 이런 식이다.

그나저나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가시거리가 20m 남짓 될까. 자전거 타는데는 무리가 없지만 얼마 만큼 높이 왔는지, 얼마 만큼 더 가야 하는지 구분을 할 수 없다. 자전거로 1000Km 남짓 달렸지만 오늘 같은 날씨는 처음이다. 무심히 패달만 밟았다. 기어를 2-2로 놓고 오르다가 오르막이 심하면 1-2로 바꾸며 올라갔다.

얼마를 갔을까. 차 소리도 사람 소리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산길. 무심한 구름안개만이 나를 감싸고 있는 천상의 풍경. 모랭이를 돌고 돌아도 또 나타나는 모랭이. 색색거리는 내 숨소리만이 유일한 벗이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난 이렇게 비를 안고 달리면 이상하게 힘이 난다. 다리가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과 나는 천생연분일까? 그런데 엉덩이가 아파왔다. 할 수 없이 내려서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산길을 걷는다기 보다 구름 위를 걷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만큼 구름안개는 점점 짙어졌다.

포기하지 않고 가는 내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아무도 없는 산길을 비를 맞으며 올라간다는 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단은 아닐 것이다.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힘들게 올라가는 것일까 자문을 해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난 이상하리만큼 이런 상황을 즐기는 편이다. 혈액형이 괴짜행동을 잘 하는 AB형이어서일까.

인생을 생각한다. 인간은 언제나 고독하다. 고독과 고통을 맞이하고 이겨내는 것이 인생이라면 난 이 순간 한 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외롭고 힘들지만 난 산을 오르고 있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이 곧 내 인생행보이다. 인생도 산길도 앞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꾸 가다 보면 정상은 반드시 내 앞에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작지만 소중한 그 희망이 한 발 한 발의 의미를 새겨준다.

7~800m 정도 걷다가 다시 타고 오르니 한결 수월하였다. 공군부대와 방송 송신소로 갈리는 삼거리가 나왔다. 내가 가야할 길은 방송송신소 쪽이다. 정상이 가까워졌는지 비바람이 제법 거세다. 이제 주저하거나 두려워할 단계는 지났다. 거침 없이 페달을 밟았다.

정상은 거기서도 1Km 남짓 더 올라서 맞을 수 있었다. 미군 부대도 있고, 한국통신 송신소와 KBS 송신도도 있는 정상이건만 KBS 송신소 외에는 보이지 않았다. 비바람이 태풍 마냥 사나웠다. 정상은 그렇게 나를 맞이하였다. 어쩌랴. 그게 그 산이 살아가는 방식인 것을.

베지밀을 하나 먹고 마음 가벼이 내려왔다. 계곡에서 자전거를 씻고 라이딩을 끝냈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