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4월 17일 - 힘들었던 공개수업

늙은어린왕자 2010. 6. 16. 14:55

 4월 17일

힘들었던 공개수업


  여러 학부모들을 모시고 공개수업을 했다. 주제는 듣기말하기 3단원 '훈화와 내 경험 연결 짓기'였다. 훈화와 관련된 경험을 모둠별 역할극으로 꾸며 발표하는 수업이다. 수업을 잘 해보려고 지난 일 주일 동안 열심히 준비했다. 자료도 필요한 만큼 만들어서 두려움은 없었다.

  부모님들이 많이 오셔서 조금 긴장은 했지만 미리 찾아놓은 동영상 자료를 보여주며 부드럽게 시작했다. ‘검정소와 누렁소’ 이야기를 들을 때도 좋았다. 수업을 무난하게 마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문제는 교과서 이야기를 역할극으로 꾸미려고 할 때 생겼다. 이 활동은 이야기를 눈앞에서 보여주며 등장인물의 감정을 살려주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넣었다. 등장인물 그림을 코팅해서 머리에 쓸 수 있도록 소품도 만들어 놓았다. 

  “방금 들은 이야기를 역할극으로 꾸미려고 합니다. 누렁소, 검정소, 농부, 선비 역할을 하고 싶은 사람은 앞으로 나오세요.”

  아이들이 서로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한 명도 일어서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침묵이 흘렀다. 평소에 이렇게 말하면 서로 하려고 몰려 나왔다. 그러면 필요한 사람만 남기고 자리로 돌려보내는 게 일이었다.

  다시 말해도 마찬가지였다. 수업 흐름이 뚝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긴장이 되었다. 나와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들도 굳게 입을 닫고 서로를 둘러보기만 했다. 시간을 더 끌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쉽네요. 평소에는 많이 나오더니 오늘은 부모님이 신경 쓰이는가 보네요. 몇 명 불러내겠습니다.”

  각본에 없던 말을 하고 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평소 연극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아이 네 명을 불러냈다.

  준비한 등장인물 그림을 머리띠에 붙이고 역할극을 시작했다. 내가 상황을 말하면 아이들은 행동과 말로 보여주는 ‘해설이 있는 역할극’이었다.

  소 두 마리가 풀을 뜯는 장면, 선비가 농부에게 말하는 장면, 농부가 선비에게 답하는 장면까지 잘 됐다. 마지막으로 동작을 멈춰 놓고 인터뷰를 했다. 이 역할극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다. 먼저 농부에게 물었다.

  “농부님은 왜 귓속말로 이야기했습니까?”

  여기서 내가 바라는 답은 ‘짐승이라도 비교하는 말을 하면 기분 나쁘니까요’다. 그런데 농부를 맡은 아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냥요.”

  다시 물었더니 또 똑같이 대답했다. 공부를 하고 있다는 걸 잊은 듯 했다. 서운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 이 질문은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검정소한테 물었다.

  “농부가 크게 말하지 않고 귓속말로 선비한테 말할 때 어떤 느낌이 들었습니까?”

  당연히 ‘우리 주인님은 생각이 깊어요’ 라는 답을 예상했다. 그런데 또 기대를 저버리는 답이 나왔다.

  “아무 느낌이 없는데요.”

  얼굴이 뜨거워졌다. 부모님들 눈길이 모두 붉어진 내 얼굴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장난치지 말고 바로 대답해라.”

  귓속말로 아이에게 살짝 이야기해줬더니 내가 원하는 답을 해주었다. 하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진 뒤였다.

  3학년 아이들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한 탓일까? 너무 당연한 질문을 해서일까? 아이들이 부모님 앞에서 어리광을 부렸던 걸까? 갖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까닭이야 어떻든 부모님들이 보고 있는 수업이 이렇게 되니 마음이 무거웠다.

  남은 활동은 생활 속에서 비교당한 경험을 모둠별로 역할극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활동은 전날 미리 준비해놓아서 무리 없이 진행했다. 그러나 ‘해설이 있는 역할극’에서 시간을 끈 덕에 수업은 십 분 정도 늦게 끝났다.

  수업이 끝나고 참여한 학부모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말했다.

  “오늘 수업은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습니다. 모둠별 역할극은 그럭저럭 잘 됐는데 해설이 있는 역할극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제대로 못한 것 같네요. 점수로 따지면 70점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무거운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나왔다고 변명하기엔 내 준비가 짧았다. 물 흐르듯 내 계획대로 흘러가는 수업만 상상했지 다른 경우는 생각해보지도 않았으니 내 잘못이 컸다. 반성해야 할 점이 많았던 공개수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