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5월 3일 - 민서야 고맙다

늙은어린왕자 2010. 6. 16. 15:17

5월 3일 월요일

민서야 고맙다


  5월을 맞아 둘째 시간에 자리를 바꾸었다. 이번 달에는 수학이끔이를 먼저 배치하고 눈이 나쁜 친구들을 앞쪽으로 앉게 한 다음 나머지 친구들 자리를 정했다.

  자리를 바꾸고 나면 늘 불만이 나온다. 책상이 작다, 앞에 덩치 큰 아이가 있다, 칠판과 거리가 멀다, 짝지가 마음에 안 든다는 둥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그래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지만 모두 만족하는 방법은 여태껏 찾지 못했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자리를 바꾼 뒤 불만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하니 열 명이 넘게 들었다.

  "OO이 자리가 너무 더러워요."

  "지난달과 같은 자리라서 싫어요."

  "책상이 너무 낮아요."

  이렇게 불만이 많으면 참 힘이 든다. 모두 해결해주고 싶지만 그건 힘들기 때문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가장 불만이 많은 사람은 민서였다. 민서 짝지는 예진이가 되었다. 그런데 민서는 다른 사람과 앉고 싶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

  "민서야, 넌 어떤 짝지랑 앉고 싶노?"

  민서 의견을 들어주고 싶어서 물었다. 민서가 교실을 둘러보더니 대답했다.

  "저는 여학생 중에서 착한 사람요."

  이 말에 예진이 마음이 상했을 것 같았다.

  "그럼 한 명 정해보자. 그 친구가 원하면 같이 앉혀줄게."

  민서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사람은 량희였다.

  "량희야 민서랑 앉을래?"

  량희는 고개를 저었다. 말이 나온 김에 반 친구들 모두에게 물어보았다.

  "민서랑 앉고 싶은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민서가 이 모습을 보더니 조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봐라 민서야. 너는 너 마음대로 하고 싶지만 다른 친구들도 모두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단 말이야. 내 생각엔 너부터 먼저 친구들한테 착한 모습을 보여주면 친구들도 니 마음을 알아줄 것 같은데."

  민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5교시에 작은 쪽지를 모두에게 한 장씩 나눠주었다. 30년 뒤 자기 직업이 무엇일까 상상해보고 글 쓰는 시간을 가졌다.

  글을 다 쓰고 나니 시간이 제법 남아있었다. 그래서 쪽지 뒷면에 자리 바꾸기에 관해 불만이 있으면 모두 쓰라고 했다. 다 해결하지는 못하겠지만 최대한 해결해주고 싶었다.

  글을 다 썼을 무렵 곁눈 길로 민서 쪽지를 보니 아무 것도 써놓지 않았다.

  '아까 내가 민서에게 너무 심하게 말해서 화가 났을까?'

  이런 생각도 들었지만 민서 표정을 보니 화난 표정은 아니었다.

  "민서야, 넌 왜 아무 것도 안 적고 있노?"

  "저 이제 불만 없어요."

  이 말에 깜짝 놀랐다.

  "아니 아까 불만이 많았잖아."

  "그런데 지금은 하나도 없어졌어요. 보세요"

  민서 쪽지를 보니 커다란 글씨로

  '없습니다.'

라고 써 놓았다. 민서 표정을 보니 정말 불만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정말 다행이구나 싶었다. 민서가 똑같은 불만을 이야기했다면 내 마음에도 똑같은 고민이 하나 쌓였을 것이다.

  마음속에 있던 불만을 아무런 대가 없이 한 번에 날려 보내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민서는 어떻게 해냈을까. 민서 덕분에 내 마음에 생길 뻔했던 고민까지 없어졌으니 민서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민서야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