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6월 4일 - 두 번째 생각주머니

늙은어린왕자 2010. 6. 16. 15:41

6월 4일

두 번째 생각주머니


  사월 중순부터 오월 말까지 생각주머니에 쓴 글을 모아 두 번째 글모음을 만들었다. 글은 한 아이에 한 편씩 모두 스물여섯 편을 실었다. 특히 이번에는 지난번에 빠졌던 정훈이, 민석이, 한별이 글도 들어가서 모든 아이 글이 다 실렸다.

  글을 고를 때는 조금 힘이 들었다. 오월에 행사가 많아서 글을 많이 못 쓴 탓이다. 실을 만한 글이 없던 몇몇 아이는 편집을 끝내는 날까지 글쓰기를 해야 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오늘 두 번째 글모음이 태어난 것이다.

  아이들이 돌아간 뒤부터 복사하고 제본하는 일을 했는데 저녁 여덟시까지 하니 마무리됐다. 표지를 합쳐서 스물여덟 쪽 밖에 안 되지만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 셈이다. 그래도 깔끔하게 제본된 책을 보니 수고한 보람이 느껴졌다. 마치 새 식구를 얻은 기분이라고 할까.

  다 만든 책을 읽어보며 아이들 생각을 다시 마음으로 느껴보았다. 아침 시간에 잠깐 짧은 틈을 내어 썼는데도 깜깜한 밤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글이 대부분이다. 웃음 짓게 하는 글도 있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도 있고, 참 그렇구나 하는 글도 있다.

  만든 책 몇 개를 집에 가져와서 초등학교 이학년, 사학년 딸에게 읽어보게 했더니 참 재미있다고 한다. 같은 또래들이 쓴 글이어서 내용이 쉽게 다가갔던 모양이었다.

  두 딸에게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글을 다섯 개씩 골라보라고 했다. 각자 열심히 읽고는 형광펜으로 표시를 해왔는데 재미있게도 세 편이나 겹쳐서 나왔다.

  둘이 함께 표시한 글은 네모난 세상에 관해 쓴 태현이 글, 가연이가 토한 내용을 쓴 용은이와 윤재 글이다. 아마 두 딸도 세 사람이 쓴 글 내용과 비슷한 생각이나 경험을 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딸들이 골랐다고 해서 꼭 좋은 글이란 뜻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생각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나 경험과 비슷하면 좋다고 하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아이에게 고르라고 하면 또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다.

  큰 딸이 고른 글 가운데는 정훈이 글도 있다. 정훈이는 지난번에는 글이 없어서 못 넣었는데 이번에는 글을 써서 아주 기뻤다.


  4월 26일 월요일 흐림


  내일 시험을 본다.

  나는 시험을 볼 용기가 안 난다.

  나는 시험을 보기 싫다.

  왜냐하면 시험을 망치면

  애들이 놀릴 것 같아서

  시험을 보고 싶지 않다. (강정훈)


  우리 큰 딸도 이런 생각을 해봤던 모양이다. 아니,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 번 쯤은 할거다. 그런데 정훈이가 그 마음을 글로 썼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함께 느끼게 된 것이다. 좋은 글이란 특별한 기술로 쓰는 게 아니고 자기가 겪고 생각했던 걸 그대로 표현하면 된다는 걸 정훈이가 가르쳐 준 셈이다.

  오늘 만든 글모음은 내일 아이들 손에 가게 된다. 또 몇몇 우리 학교 선생님과 다른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보내게 된다. 마치 민들레 홀씨가 바람 타고 가듯 그렇게 날아갈 것이다. 세 번째 글모음은 어떤 홀씨로 태어날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