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6월 5일 - 아이들이 좋아하는 글

늙은어린왕자 2010. 6. 16. 15:42

6월 5일

아이들이 좋아하는 글


  아침 시간에 생각주머니 글모음을 나눠주고 마음에 드는 글 다섯 편을 고르고 까닭을 써보게 했다. 결과를 보니 아이들마다 좋아하는 글이 다 달랐다. 어떤 글을 읽고 자기도 비슷한 생각이나 경험을 해봤다면 그 글에 마음이 간다는 뜻이다.

  그럼 좀 더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글은 어떤 글일까. 아이들이 열 명 이상 뽑은 글은 모두 다섯 편이다. 네모난 세상을 쓴 태현이글, 시험이 엄마를 위한 것 같다고 쓴 규리 글, 고양이 가족이 오순도순 사는 모습을 쓴 은서 글, 시험에서 쉬운 문제만 나오면 좋겠다고 쓴 수민이 글 그리고 닌텐도를 들고 오고 싶은 마음을 쓴 동협이 글이다.

  그럼 어떤 점이 좋았을까. 어떤 일이나 생각을 썼기에 여러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5월 17일 월요일 바람이 불지 않고 구름이 옅게 낌

  어제 컴퓨터실에서 ‘네모의 꿈’이란 노래를 들었다. 그 노래에서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라고 했다.

  오늘 학교에 오니 네모난 학교에다 네모난 공책에 네모난 칠판에 거의 다 네모였다. 이 노래가 세상을 보며 부른 노래인 것 같다. (김태현)


  이 글은 내 마음에도 쏙 들었던 글이다. 노래를 들으며 가사의 뜻을 생각한 점도 남다르게 보이고, 그 가사를 떠올리며 주위를 둘러보는 태현이 모습도 엿보인다. 읽자마자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아이들도 태현이 글은 생각이나 느낌이 잘 들어 있다고 써놓았다. 어떤 아이는 ‘이 노래가 세상을 보며 부른 노래인 것 같다.’ 를 가장 마음에 드는 표현으로 꼽았다.


  4월 26일 월요일 흐림

  내일은 시험 치는 날이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제 엄마가 게임하지 말고 공부 안 했다고 했다. 너무 힘들다. 그리고 이상했다. 내가 보는 시험인데 엄마 마음대로 공부 안했다고 한다. 꼭 나를 위한 시험이 아니라 엄마를 위한 시험인 것 같다. (박규리)


  규리가 쓴 글 가운데 이 글을 생각주머니에 넣은 까닭은 ‘꼭 나를 위한 시험이 아니라 엄마를 위한 시험인 것 같다.’ 는 표현이 마음에 들어서이다. 아마 엄마들이 이 표현을 보면 뜨끔 하는 분들이 많을 거다.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하지만 규리는 그 생각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나타낸 점이 참 좋다. 아이들도 이 표현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한다.


  4월 20일 화요일 쌀쌀하다

  학교에 가고 있을 때

  고양이 가족을 봤다.

  내가 빵 한 개를 던졌다.

  냠냠 맛있게 먹었다.

  새끼가 귀여웠다.

  오순도순 사는 게

  행복해 보였다. (손은서)


  은서 글에는 생각이 별로 없지만 읽으면 저절로 행복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미와 다정하게 있는 귀여운 고양이 새끼도 한 번 보고 싶고, 먹이도 던져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만약에 은서가 나쁜 마음을 먹은 아이였다면 이런 글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고양이한테 해코지를 하거나 쫓아내기 바빴을 테니까.

  아이들도 ‘오순도순 사는 게 행복해 보였다.’를 가장 좋은 표현으로 꼽았다. 어떤 아이는 은서 글을 보고 이렇게 써놓았다.

  ‘나는 은서 글이 마음에 든다. 나도 가족이랑 오순도순 살고 싶다.’

  은서 글은 나와 아이들 모두에게 따뜻한 감동을 준다.


  4월 26일 월요일 비가 오며 쌀쌀하다

  난 시험에서

  아는 문제만 나오면 좋겠다.

  올백 하면 좋겠고

  점수가 좋으면 좋겠다.

  제발 쉬운 문제가

  나오면 좋겠다. (이수민)


  시험을 잘 치고 싶은 마음은 우리 아이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아이들 마음일 것이다. 수민이는 그런 마음을 솔직하게 잘 썼다. 그래서 아이들이 많이 뽑았다. 수민이 글을 뽑은 아이가 이렇게 썼다.

  ‘시험칠 때 나도 쉬운 문제가 나오면 좋아서 이수민을 골랐다.’

 

  5월 11일 월요일 구름

  권구완, 김태현이

  닌텐도를 들고 왔다.

  들고 오지 말라고

  선생님께서 얘기하셨는데도

  오늘 또 갖고 왔다.

  나도 들고 오고 싶은데

  선생님 말을

  거역할 수 없다. (김동협)


  동협이는 선생님 말을 정말 잘 듣는다. 그 만큼 순수하고 어린이답다. ‘선생님 말을 거역할 수 없다.’고 한 표현이 가장 동협이답다. 아이들도 모두 이 표현이 가장 좋다고 한다. 동협이 글을 보니 방학 전에 한 번이라도 닌텐도 가지고 오는 날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글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열 명 이상 뽑지 않았다고 해서 나쁜 글은 절대 아니다. 내 글을 어떤 한 아이만 뽑았다고 해도 그 아이한테는 좋은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쓰려고 억지로 말을 지어내거나 없던 생각을 만들면 절대 안 된다. 그런 글은 거짓말일 뿐이다. 자기가 보고, 듣고, 겪은 일에서 우러난 생각을 잘 떠올려서 사실대로 쓰면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