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 - 대리싸움
6월 24일 목요일
대리 싸움
아침에 교실에 들어서니 평소와 달리 조용하였다. 뒤에서 딱지 치는 아이도 없고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도 없다. 모두 자리에 앉아 생각주머니에 글을 쓰거나 제 할 일을 하고 있다. 오늘 봉사위원인 윤재가 교실 관리를 잘 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오늘 아침 활동 참 잘하네? 근데 무슨 일 있었나?”
교실을 한 바퀴 돌며 아이들에게 물었다.
“아까요, 1반 아이들이 쳐들어왔어요. 그래서 우리가 가라고 했어요.”
“구완이를 데리고 가려고 했어요.”
그럼 그렇지. 내 짐작이 맞았다.
아이들 말을 들어보니 1반 여학생 세 명과 남학생 두 명이 우리 반 구완이를 잡으러 왔다고 했다. 구완이와 1반 오선이가 같은 학원차를 타고 오다가 잡기 놀이를 했는데 오선이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완이가 사과를 하고 교실로 왔는데 1반 아이들은 구완이가 사과를 안 했다며 따졌다는 것이다. 특히 여학생 세 명은 큰 목소리로 이렇게 압력을 넣었다고 했다.
“구완이 나왓! 너도 오선이랑 똑같이 만들어 줄거야.”
이 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친구가 다쳤더라도 이렇게 복수하려는 듯한 말은 안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오선이는 남자인데 말이다.
경민이 말로는 이 여학생 중 두 명이 오선이를 좋아하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오선이가 1반에서 ‘인기 짱’이라고 했다. 그럼 좋아하는 남자친구를 위해 복수하려고 우리 반에 왔다는 말인가? 경민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참 웃겼다.
구완이한테 그 여학생들이 나오라고 할 때 기분이 어땠느냐고 물으니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다섯 명이나 몰려와서 압력을 넣으니 마음 약한 구완이가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1반 아이들은 좋아하는 오선이가 다쳐서 마음이 아팠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아이들 때문에 눈물 흘리는 구완이가 더 마음 아파보였다. 우리 반 아이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궁금했다.
“그럼, 그 애들이 몰려왔을 때 우리 반 아이들은 가만히 있었나?”
“아뇨, 우리가 가라고 소리쳐서 보냈어요.”
“그래? 소리 친 사람 손 들어보자.”
손 든 아이들 수를 세어보니 열 명쯤 되었다. 일곱 명은 여학생이고 세 명은 남학생이다.
“내가 보기에 오선이보다 구완이가 더 인기 있네. 오선이한테는 다섯 명 밖에 안 왔지만 우리 반은 열 명이나 가라고 했으니 말야.”
이러니까 당장 다른 말이 나왔다.
“그렇다고 우리가 구완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에이, 아까 가라고 소리치지 말걸.”
그냥 넘어갔으면 구완이가 기분이 좋아졌을 텐데 아이들은 이런 차이가 있을 때 참지 않고 말해버린다. 내가 말했다.
“그래. 너희들 말이 맞아. 꼭 구완이가 좋아서 그랬다고 할 수는 없어. 그런데 1반 아이들도 다섯 명 왔지만 그 애들 모두 오선이를 좋아해서 온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우리 반이 더 대단한 거지. 우린 열 명이 막았으니까.”
이 말에 토를 다는 아이들은 없었다. 오선이와 구완이 사이에 있었던 일인데 오선이를 대신해서 1반 아이들이, 구완이를 대신해서 우리 반 아이들이 서로 말싸움을 벌여서 ‘대리 싸움’이 벌어진 아침이었다. 재미있는 아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