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6월 30일 - 체육이 그렇게 좋을까?

늙은어린왕자 2010. 6. 30. 16:48

6월 30일 수요일 장마 구름 속에 햇살이 비친다. 무덥다.

체육이 그렇게 좋을까?


  내일이 기말고사 시험 날이지만 아침 시간에 시험공부 하는 아이는 남학생 두 명 뿐이었다. 그 두 명도 문제지만 펴 놓았지 앉아서 노는 건 마찬가지였다. 시험을 코앞에 두고도 아이들은 태평스럽다. 부모님이나 교사들만 마음 졸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첫째 시간은 체육이었다. 이번에 체육도 시험을 보기 때문에 오늘은 바깥활동 대신 체육교과서를 들고 공부하기로 했다. 어제 책 준비하라고 예고도 해두었다.

  “모두 체육 책 펴세요. 오늘은 책으로 시험공부 한다고 했지요?”

  하지만 아이들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아까운 체육시간을 놓치기 싫은 표정들이었다.

  “아니, 뭐해? 시험 빵점 받아도 좋아?”

  “네!”

  이구동성이었다. 정말 빵점 맞아도 좋은 사람 손 들어보라고 했더니 태현이와 현수 빼고 모두 손을 들었다.

  “오늘 체육 한다고 미경이는 구두 안 신고 운동화 신고 왔단 말이에요.”

  “이것 보세요. 체육 하면 덥다고 물도 챙겨왔어요.”

  “우리 엄마가 더울까봐 아이스티도 챙겨줬어요.”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에 갖가지 변명을 둘러댔다.

  “공부 안 해서 빵점 받으면 누가 책임져?”

  “우리가요.”

  막무가내였다. ‘이 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라던 전직 대통령 말이 생각났다.

  “안 되면 줄넘기라도 해요.”

  평소에는 체육시간에 줄넘기 한다고 짜증만 내더니 오늘은 마음이 급한 모양이었다.

  “지난번에 1반하고 발야구 했을 때 너무 못해서 체육 해봐야 소용없더라. 그냥 공부하자.”

  “다음에는 우리가 이기면 되잖아요.”

  어떤 말을 해도 이미 아이들 마음은 운동장으로 가 있었다. 눈을 돌려 슬쩍 운동장을 바라보니 텁텁한 장마철 더위가 느껴졌다. 교실에 있으면 땀 흘리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데 더위 따위는 아랑곳 않는 아이들이 얄미웠다. 머리 보다 몸을 놀리고 싶은 아이들을 누를 수가 없었다.

  “좋아. 그럼 줄넘기 줄 챙겨서 운동장으로 가자.”

  기다리던 말이 나오자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기뻐했다. 마치 우리나라 축구가 월드컵에서 우승이라도 한 분위기였다.

  아이들을 모두 내 보내고 호루라기 챙겨서 나가는데 태현이가 다가와서 말했다.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선생님, 저는 머리가 아파서 못 가겠어요.”

  “왜? 어제 공부 많이 해서 그렇제?”

  “네.”

  태현이 말로는 어제 학원에서 밤 아홉 시까지, 집에 와서 열한 시 반까지 공부하고 오늘 새벽에도 다섯 시 반에 일어나서 공부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몸에 부치는 공부를 하다보니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태현이와 다리가 불편한 한별이를 교실에 남겨두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숨 막힐 듯 눅눅하고 더운 공기 속에서도 아이들이 열심히 줄넘기를 하고 있었다. 시험이 있든 말든 걱정 없이 뛰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번 체육 시험은 내가 냈다. 그래서 사실은 책을 안 봐도 큰 걱정이 안됐다. 문제만 읽으면 답이 나올 정도로 쉽게 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체육 하자고 했을 때 아이들에게 밀리지 않고 내 고집을 피웠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