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7월 2일 - 애국가는 경건하게만 불러야 하나?

늙은어린왕자 2010. 7. 2. 18:39

7월 2일 금요일 아침에 빗방울 잠깐, 하늘은 여전히 흐리다

애국가는 경건하게만 불러야 하나


  어제 치룬 시험지를 오전에 모두 채점했다. 마침 전담 수업이 두 시간 있어서 여유가 매길 수 있었다. 점수를 훑어보니 한두 과목 빼놓고는 성적이 좋은 편이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도덕 점수가 평균보다 낮게 나왔다는 거다. 대개 도덕 과목은 점수를 쉽게 따는 과목인데 이번에는 문제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문항별로 살펴보니 두 문제에서 많이 틀렸다. 한 문제는 문제를 검토할 때부터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맞힌 아이가 다섯 명이다. 나머지 한 문제는 쉽게 답할 거라고 봤는데 틀린 아이와 맞힌 아이가 반반이다. 정답률이 정도면 초등학생들에게는 어려운 문제다. 문제는 이렇다.

  

<문제> 다음 중 애국가는 어떤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까?

① 가벼운 마음 ② 슬픈 마음 ③ 귀찮은 마음 ④ 경건한 마음 ⑤ 씩씩한 마음


  이 문제의 정답은 ④번이다. 그런데 아이들 가운데 절반이 ⑤번을 선택해서 틀렸다. 시험 볼 때 ‘경건한’의 말뜻을 모르겠다고 해서 사전에 있는 대로 ‘공경하며 삼가고 엄숙하다’는 설명을 텔레비전으로 보여주었다. 거의 답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정답률이 절반 밖에 안 됐다. 무엇이 원인이었을까.

  교과서(생활의 길잡이)에는 ‘태극기를 바라보면서 애국가를 감명 깊게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예절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는 주제가 있다. 태극기와 애국가는 예절을 지켜서 대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도록 미리 선을 그어놓았다.

  또 그 아래에는 ‘외국 팀과 축구 경기를 하기 전에 태형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 감동을 생각하며 애국가를 힘차게 불러 봅시다’는 지시문을 넣고 ‘태극기를 보며 애국가를 부를 때 어떤 마음과 자세로 불러야 하겠습니까?’하는 질문을 넣어놓았다. 이때는 당연히 조용하고 경건하면서도 힘차게 불러야 한다고 답해야 한다.

  그런데 월드컵 같은 큰 국제스포츠행사가 열리면 톡톡 튀는 복장에 얼굴이며 몸에 갖가지 무늬를 그리고 응원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태극기도 이들에게는 예절을 떠올리는 대상이 아니라 옷이나 신체그림 같은 훌륭한 응원 도구로 변한다.

  이들이 가끔 응원가로 애국가를 부르는데 들어보면 아주 밝고 신난다. 유명가수들도 애국가를 넣은 응원가를 빠른 반주에 맞춰서 부르기도 한다. 애국가는 늘 굳은 표정으로 몸을 꼿꼿이 세우고 무뚝뚝하게만 불러왔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 애국가를 저렇게 기분 좋게 부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에게 태극기에 대한 예절이 부족하다거나 경건하게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고 야단치면 될까. 오히려 태극기와 애국가를 더 친하게 느끼도록 해주어서 상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애국가는 때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 문제를 나이 든 어른들에게 내면 대부분 ④번을 선택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애국가는 의식행사 때 조용하고 경건하게 부른 기억 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양한 경험을 하는 어린 세대에게 애국가는 때로는 경건하게 부르는 의식곡이다가도 때로는 씩씩하고 신나게 부르는 노래가 된다.

  이 문제는 다음처럼 내면 아이들도 헷갈리지 않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 다음 중 광복절 기념식을 할 때 애국가는 어떤 마음으로 불러야 합니까?

① 가벼운 마음 ② 슬픈 마음 ③ 귀찮은 마음 ④ 경건한 마음 ⑤ 씩씩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