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7월 15일 - 겪은 일 쓰기 공부(3)

늙은어린왕자 2010. 7. 15. 18:40

7월 15일

겪은 일 쓰기 공부(3)


  오후에 월요일 날 썼던 글과 주말에 숙제로 썼던 글을 살펴보고 본보기로 할 만한 글을 골랐다. 주말에 숙제로 냈던 것은 써온 아이가 몇 명 되지 않아 겨우 두 편을 골랐고, 수업 시간에 함께 썼던 글은 좋은 글이 제법 있어서 네 편을 골랐다. 우선 이 여섯 편으로 공부를 더 하고 나머지 글도 워드 작업을 해서 함께 볼 계획이다.

  먼저 주말에 썼던 글 두 편이다. 수인이와 시현이 글이다. 수인이 글은 월요일에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  


아빠와 축구하기

정수인


  토요일에 저녁을 먹고 아빠, 엄마, 언니, 나 우리 식구는 김해운동장에 운동하러 갔다. 엄마와 언니는 걷기운동을 하고, 아빠와 나는 잔디위에서 축구를 했다. 내가 아빠한테

  “아빠, 내가 먼저 찰게.”

라고 말했다. 조금 차다가

  “아빠, 왼쪽은 아빠 골대이고 오른쪽은 내 골대다. 알았지?”

라고 했다. 아빠는

  “그래.”

라고 말했다.

  내가 그만 공을 뺏겨서

  “안돼!”

하고 소리를 쳤다. 아빠가 먼저 골을 넣었다.

  나는 아빠를 쫓아가면서 공을 뺏으려고 힘차게 달렸지만 아빠가 또 골을 넣었다. 나는 그 때 잔디에 눕고 싶었는데 아빠가

  “수인아, 잔디에 약 뿌렸다. 눕지 마!”

라고 해서 눕지는 못했다.

  오 분 정도 쉬었다가 또 축구를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비가 내려서 2대 0으로 아빠가 이겼다. 아쉬웠다. 솔직히 내 생각에는 아빠가 봐줄 줄 알았다.

  집에 갈 때 언니가

  “야! 니 있잖아. 아빠랑 어쨋길래 ‘안돼!’라고 말했노? 챙피스러웠다. 알겠나?”

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기분 나쁘게 들렸다.

  하지만 아빠와 나랑 축구한 것이 좋았다. 다음에는 아빠와 엄마 대 언니와 나랑 편을 했으면 좋겠다. (2010년 7월 10일)


  수인이 글에는 한 일과 듣고 말한 것이 잘 드러나 있다.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잘 썼다. 덧붙이거나 뺄 만한 내용도 없었다. 주고받은 말도 깔끔하게 잘 넣었다. 수인이 말로는 자기가 쓴 글을 엄마가 봐주고 수인이가 다시 고쳐 썼다고 한다. 엄마와 함께 해서 더 좋은 글이 나온 것 같았다.

  또 한 편은 시현이가 쓴 글이다. 할머니 집에 가서 엄마, 동생과 축구 한 이야기다. 시현이는 엄마 도움 없이 혼자서 썼는데도 사실대로 잘 썼다.

   

배구공으로 축구하기

박시현


  금요일에 경주에 있는 할머니 집에 왔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다. 근데 아빠는 토요일에 왔다. 바빠서 토요일 날도 회사에 갔다 왔다. 토, 일요일은 가끔 가는데 이번 달은 바쁘다나 뭐라나.

  동생하고 축구하기로 했는데 엄마도 같이 하자고 했다. 그래서 저번에 마당에서 가지고 놀던 배구공을 찾았는데 어디 있는지 생각이 안 났다. 그런데 엄마가 창고 옆에 있는 헛간 같은데서 찾았다. 축구공, 농구공, 배구공을 한꺼번에 찾았다. 배구공은 있는 줄 알았는데 축구공, 농구공은 몰랐다.

  근데 축구공으로 하려니까 바람이 너무 빠져서 내가

  “이건 바람이 너무 빠져서 못 쓰겠다.”

고 했다. 농구공은 너무 무거워서 못했다. 할 수 없이 배구공으로 했다.

  우리는 할머니 집 마당에서 축구를 했다. 내가 골키퍼, 동생이 공격을 했다. 엄마는 공이 오면 받아서 패스만 했다.

  차고 있는데 열 번 중 여덟 번 정도 공이 할머니 밭으로 갔다. 내가 잘못 차서 그런지 계속 그 쪽으로 갔다. 땅에서 차면 그 쪽으로 가지 않았는데 들고 차면 ‘휘이잉~’하고 밭으로 갔다. 엄마가 나한테 말했다.

  “니는 왜 차면 그쪽으로 가냐? 조심성 있게 차라.”

  나는 “응.”이라고 했다.

  조금 희한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이렇게 두 시간 정도 했다. 엄마도 피곤해하고 너무 오래 해서 그만두었다. 재미있었다. (7월 11일 일요일)


  이 글은 시현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몇 군데 고친 글이다. 내가 읽어보고 퍼뜩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주로 물어보고 고쳤다. 시현이 글도 수인이 글처럼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잘 쓴 글이다.

  다음은 월요일에 함께 썼던 글이다. 숙제로 글 써오라고 하면 대개 절반도 안 해오지만 이렇게 함께 쓰니 모든 아이들의 글을 다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또 글 쓸 때는 무엇보다 조용한 분위기가 중요한데 교실에서는 내가 직접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 조용히 겪은 일을 잘 떠올려야 좋은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받아보니 예상대로 좋은 글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 네 편을 골라봤다.


국속의 벌레

손미경


  어제 저녁에 외식을 하러 가서 뼈다귀 탕과 밥을 먹었다. 뼈다귀 탕의 고기를 다 먹고 나서 국물을 밑에서부터 한 번 뒤집으니까 이상한 것이 나왔다. 자세히 보니 벌레였다. 내가 보기에는 노린재 같았다. 세 쌍의 다리와 더듬이가 있었다. 엄마한테 말하니까 웃으셨다.

  그런데 아빠가 국을 보고나서는 막 중얼중얼 거리셨다. 엄마가 아빠한테 혼을 내고 나서는 나보고

  “국물만 조금 더 줄까?”

라고 했다. 내가

  “응.”

하니까 엄마가 아줌마를 불러서

  “여기 벌레가 들어가 있더라구요. 국물 조금만 더 주세요.”

라고 말하셨다.

  국물이 나오는 동안 나는 엄마 국물을 먹었다. (2010년 7월 12일)


   미경이 글은 짧지만 다른 사람에게 들려줄 만한 경험을 군더더기 없이 잘 썼다. 과학 시간에 곤충에 관해서 배운 덕분에 엄마한테 ‘세 쌍의 다리와 더듬이가 있었다’고 설명한 부분이 재미있었다. 끝부분에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만하면 잘 썼다 싶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밑줄 친 내용은 미경이와 함께 다음과 같이 고쳐보았다.

 

  그런데 아빠가 국을 보고나서는

  “아, 이 집은 오지 말아야지. 나쁘네.”

라고 하셨다. 엄마가 아빠 말을 듣고

  “좀! 그만.”

이라고 혼을 내셨다. 그리고 나보고


  두 번째 글은 경민이가 쓴 글이다. 아침에 겪었던 속상했던 일을 썼다. 쓰기 직전에 겪은 일이어서 주고받은 말과 감정이 잘 느껴지는 글이다. 문장도 깔끔하게 잘 썼다. 줄 나누기 말고는 손대지 않았다.


아침 왕따

남경민


  아침에 학원 차에서 내려서 친구 유진이하고 손을 잡고 가려고 했는데 이경이가 손을 못 잡게 했다. 그래서 혼자 걸어가는 지언이하고 가려고 했는데 또 이경이가 같이 못 가게 했다. 할 수 없이 유진이하고 가려고 했다. 그런데 계속 이경이가 못 가게 해서 혼자 가려고 했는데 이경이가

  “너가 내 말을 잘 안 듣잖아.”

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내가 왜 니 말을 들어야 하는데?”

라고 물어보니까 이경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가고 있는데 유진이가

  “나 경민이 싫다.”

고 말했다.

  나는 왜 친구들에게 왕따 당할까 하고 생각하니까 이경이에게 이러고 싶었다.

  “야, 윤이경! 내가 왜 니 말을 들어야 돼? 니가 어른이야 대장이야? 키 크면 대장이가?”

  그런데 이 말을 못했다. 용기를 내면 되는데 이 바보 남경민이라고 내가 나에게 말하고 싶다. 내가 후회를 한다. 용기를 내어 말 못한 게. (2010년 7월 12일)


  다음 글을 쓴 태현이는 주고받은 말을 잘 살려 썼다. 처음 쓴 제목이 ‘아침의 정훈이’였는데 내 마음에는 들지 않지만 ‘아침에 만난 정훈이’라고 고쳤다. ‘여자가 되고 싶은 정훈이’로 하든지 ‘여자’라는 말을 넣자고 할 걸 그랬다. 글머리에 게임 이야기 했던 것을 네 줄 뺐다. 


아침에 만난 정훈이

김태현


  학교 가는 길에 정훈이를 만났다. 걸어가는데 정훈이가 게임에서 뭐가 어떻게 되어서 어떻게 되었다는 것을 계속 말했다. 정훈이는 겪은 일 쓰기보다 겪은 일 말하기를 더 잘한다고 생각했다.

  이야기 하면서 정훈이가 여자처럼 ‘오빠’라고 말했다. 정훈이는 여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왜냐고 물어보니 군대 안 가도 된다고 했다.

  “그럼 다시 태어나서 여자 될래?”

라고 했더니 정훈이가

  “응.”

이라고 했다. 그래서

  “여자 한 살 되렴.”

하니까 정훈이가

  “그건 싫어.”

라고 했다. 나는 한 살이 좋을 것 같은데. 왜냐하면 공부를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내가

  “여자 열 살?”

이라고 했더니 정훈이가 기쁜 목소리로

  “응.”

이라고 외쳤다.

  “그럼 성폭력 많이 당할 수도 있을 텐데.”

라고 했다. 왜냐하면 성폭력 하는 사람들이 여자 아이를 많이 해치기 때문이다. 김길태도 여자를 해치고 이번에 성폭력한 사람도 여자를 해쳤기 때문이다.

  정훈이가 여자처럼 안 했으면 좋겠다. (2010년 7월 12일)


  아래 글을 쓴 예진이는 마음이 여린 아이다. 무슨 일이든지 대충 생각하고 빨리 하려고 하지 않고 차근차근 할 일을 한다. 또 글 쓸 때도 가는 실을 한 올 한 올 엮어서 옷감을 만들듯 생각 조각을 하나하나 모아 담아 쓴다. 이 글도 마치 꿈속에서 겪었던 일을 쓴 것 같다. 글에서 ‘2명’을 ‘두 명’으로, ‘만질려고’를 ‘만지려고’로 고쳤다.


사람 엄마

문예진


  아침에 엄마가 창문을 열어서 차가운 바람이 들어왔다. 바람이 내보고

  “예진아, 일어나.”

라고 하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부탁하는 것 같아서 힘이 없어도 일어서서 화장실까지 가서 씻고 밥을 먹었다. 꼭 바람이 엄마 같아서 엄마가 두 명인 것 같다.    

  사람 엄마? 바람 엄마? 좀 이상하다. 바람 엄마를 만지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만져지지 않았다.

  사람 엄마를 만지려고 손을 내밀었는데 이번엔 만져졌다. 역시 사람 엄마가 좋다. (2010년 7월 12일)


  다른 글도 워드 작업이 끝나면 함께 보겠지만 우선 이 네 편을 보기 좋게 편집했다. 농사를 지으려면 씨앗이 필요하듯 앞으로 겪은 일 쓰기에 이 글들이 좋은 씨앗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