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일 - 축구공
9월 3일 금요일 맑은 하늘에 흰 구름 조금
축구공
등교시간에 운동장에서 우리 반 남학생 몇 명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수민이, 시현이, 구완이 그리고 동협이였다. 시현이를 불렀다.
“공 어데서 가져왔노?”
“체육창고에서요.”
“이제 체육창고 공은 가져오지 마라고 했잖아.”
“…….”
시현이 옷 주머니에 체육창고 열쇠가 보였다.
“열쇠는 나한테 주고 당장 공 갖다 넣어라.”
“예.”
시현이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열쇠를 건네주었다. 화단을 지나가다가 공차는 아이들을 보았다. 얼굴은 물론이고 온 몸이 땀범벅이 된 채 공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얼마나 축구를 하고 싶었으면 아침부터 저렇게 열심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일도 있고 해서 냉정하게 가야 되는데 아이들을 보니 마음이 약해졌다.
발걸음을 돌려 수민이를 불렀다.
“이 열쇠 줄테니 다 차고 나면 공 잘 챙겨 넣어라. 그리고 열쇠는 교무실에 걸어놓고.”
수민이는 좋아하며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사실은 어제 수업이 끝나고 찬기와 동협이, 구완이가 체육창고 열쇠를 가지러 교무실에 갔다가 교감선생님한테 걸렸던 일이 있었다. 소식을 듣고 교무실로 갔더니 아이들이 있었다. 교감선생님이 아이들한테 몇 가지 충고를 하셨다.
“체육 창고에 있는 공은 체육수업에 쓰라고 사 놓은 거지 아무 때나 쓰라고 있는 게 아니야.”
안 그래도 아이들이 마음대로 공을 꺼내는 바람에 남은 공이 몇 개 없다고 체육선생님이 하소연 하는 소리를 나도 들었다. 교감선생님은 놀고 나서 공을 잘 챙겨놓기만 하면 얼마든지 괜찮은데 그렇지 않다고 아쉬워하셨다.
“오늘까지만 빌려주는데 내일부터는 집에 있는 공을 가지고 와서 해야 된다.”
이렇게 당부한 뒤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적고는 열쇠를 내주셨다. 공 넣고 열쇠 갖다 놓는 역할은 찬기에게 맡겼다. 마음이 곧은 분이라서 이럴 때 웬만하면 허락을 안 하시는 분인데 아이들을 믿고 열쇠를 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아이들이 약속을 어기긴 했지만 어제 일은 잘 넘어갔나 싶었다. 그런데 첫째 시간 공부를 시작할 무렵 팝업문자가 날아왔다.
‘3학년 2반 박찬기, 권구완, 김동협 학생 1교시 마친 즉시 교무실로 보내 주면 고맙겠군요. 교감 보냄.’
이름을 보니 어제 교무실에 체육창고 열쇠를 빌리러 갔던 아이들이었다. 당장 불러서 물었다.
“교감선생님이 너희들을 부르시는데 무슨 일 있었나?”
아이들이 우물쭈물 하며 말을 못했다.
“사실은요. 어제 축구 하고 나서 공을 잃어버렸어요.”
공을 챙기기로 했던 찬기가 대답했다.
“잃어버리다니. 열쇠도 가져가놓고 어떻게 잃어버려?”
동협이 말로는 축구를 다 하고 나서 옆에 있던 2학년 아이가 공을 빌려달라고 해서 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공도 없고 그 아이도 없었다고 했다.
“이러니까 교감선생님이 공을 안 빌려주시려고 하잖아. 안 되겠다. 어서 공을 찾아보자.”
우선 교감선생님께 공을 잃어버렸다고 말씀드리고 동협이와 찬기가 먼저 찾으러 나갔다. 하지만 없어진 공이 쉽게 나올 리가 없었다.
“운동장 세 바퀴 돌았는데 없어요.”
조금 있으니 둘 다 땀에 젖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들어왔다. 잠깐 쉬다가 수민이도 같이 찾아본다고 후다닥 뛰어나갔다.
그렇게 나간 아이들이 한참 있어도 오지 않아서 나가보니 땀을 뻘뻘 흘리며 학교 뒤뜰을 훑고 있었다. 고생을 사서 한다 싶었다. 더 놓아두었다간 이렇게 더운 날에 정말 큰 일이 날 것 같았다. 마침 며칠 전에 직원이 주워놓은 축구공이 뒤뜰 창고에 있던 게 생각났다. 내려가 보니 다행히 있었다. 그걸 들고 와서 아이들을 불렀다.
“너희들이 찼던 게 이런 공 맞지? 방금 내가 주웠다.”
아이들은 같은 공이라며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얼른 교무실로 가서 교감선생님께 보여드리라고 했더니 기쁜 한숨을 내쉬며 내려갔다.
축구공 때문에 생긴 일은 이렇게 얼렁뚱땅 해결됐다. 땀을 뻘뻘 흘린 대가로 약속, 책임 이런 게 뭔지 조금이라도 느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