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 뒤늦게 만난 김탁구
9월 13일 월요일 뜨거운 햇살, 엷은 구름
뒤늦게 만난 김탁구
지난 주말과 휴일에 요즘 인기 있는 ‘제빵왕 김탁구’를 보느라 늦은 밤까지 시간 투자를 많이 했다. 드라마에 빠지기 싫어서 여태껏 한 번도 안 봤는데 시청률이 40%를 넘는다고 하고 밀양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까지 입만 열면 ‘누구든지 김탁구처럼 살아야 된다’고 말씀하시던 게 자극이 됐다. 어머니는 약을 먹으면 잠이 온다고 김탁구 방송하는 날이면 신경 약도 안 드실 정도다.
이틀 동안 여덟 편을 봤는데 듣던 대로 재미가 있었다. 특히 초반에 김탁구 배역으로 나온 까까머리 소년이 연기를 너무 잘 해서 드라마로 쏙 빨려 들어갔다. 우리가 쓰는 부산경남 말투에 깡다구가 느껴지는 어린 김탁구가 있어서 드라마가 뜬 게 아닐까 하고 생각될 정도였다. 남들이 인정할지 모르지만 외모만 봤을 때 어린 김탁구 모습이 내 어릴 때 모습이랑 거의 똑같아서 더 끌렸다.
드라마를 보다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지난 9월 4일에 있었던 2학기 봉사위원 선거 때 수인이가 이상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던 적이 있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수인이는 1등으로 당선됐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빠져도 꼬푸 없으면 못 마십니다. 쿵따라따 삐약’
노래가 하도 요상해서 수인이를 불러 다시 들어보니 30년 전에 들어본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이런 노래였다. 수인이가 참 독특하다고만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이게 이 드라마에서 나왔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그 때 못 맞춘 눈높이를 뒤늦게나마 맞추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 드라마 시청연령이 15세 이상 아닌가?)
아무튼 지난 이틀 동안 밤늦도록 드라마를 보고 아침에 멍하니 교실에 들어서니 모든 게 멍하게 다가왔다. 오늘 따라 아침 활동 안 한 아이가 유달리 많아 보이고, 생활일기나 학습일기장을 가져온 아이는 너무 적어 보였다. 교실이 어수선하고 수업이 뒤뚱거리는 게 오늘 내 모습을 빼닮았다.
인기 드라마를 보며 세상과 눈높이를 맞추는 것도 좋지만 이 때문에 한주일의 시작이 너무 무거워졌다. 이러면서도 아침활동 안 했다고, 숙제 안 했다고 아이들을 탓할 자격이 있을까 싶다. 어린 김탁구가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선생님예. 째째합니더. 선생님은 휴일 날 실컷 놀아놓고 아이들한테는 이거 해왔나 저거 해왔나 하면 안 되지예. 싸나이 답게 내일은 아이들 보고 팍 웃으뿌이소.”
*깡다구 : 악착같이 버티어 나가는 오기를 속되게 이르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