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8일 - 음식 만들기
9월 18일 토요일 아주 맑다
음식 만들기
생일잔치, 음식 만들기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학급활동이다. 우리 반은 생일잔치는 달마다 해왔지만 음식 만들기는 한 번도 못했다. 아이들도 이 점이 아쉬웠는지 2학기 들면서 하자고 조르는 횟수가 늘었다.
솔직히 음식 만들기는 내가 못 해서 피하고 싶은 분야다. 그래서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곤 했다. 게다가 3학년은 아직 음식을 만들기엔 어린 나이다.
며칠 전에 몇몇 아이들이 모여 라볶이를 만든다고 해서 물었다.
“정말 라볶이 만들 줄 아나?”
“알아요. 얼마나 간단한데요.”
너무나 쉽게 대답해서 설명해보라고 했더니 술술 풀어냈다.
“물을 붓고 고추장과 떡과 오뎅을 넣어서 오 분 정도 끓여주다가 라면을 넣고 또 삼 분 정도 끓이면 돼요.”
말대로 된다면 이 세상에 이루지 못할 게 있을까. 어떻든 소원도 풀어줄 겸 아이들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어제 수업 마치기 직전에 잠깐 시간을 내어 조를 짰다. 신청을 받아보니 라볶이에 네 조가 신청했고, 샌드위치와 김밥은 각각 한 조씩 신청했다. 얼마 전에 1반에서 라볶이 만들기를 한 것이 영향을 끼친 것 같았다.
경민이와 동협이 생일잔치를 마치고 TV로 김밥 만들기, 샌드위치 만들기 실습 장면을 함께 보았다. 라볶이 만들기는 동영상을 구하지 못했다.
만드는 방법도 공부했고, 준비물도 책상 위에 올려놓아서 이제 시작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라볶이 만드는 아이들이 조금 긴장하는 것 같았다.
“선생님, 실패하면 어떡해요?”
특히 민서네 조는 냄비가 없어서 더욱 불안해했다. 냄비는 민서어머니가 들고 오시기로 했다.
“조금 있으면 민서 어머니가 오실 거예요. 하다가 막히면 민서어머니께 여쭤보면 됩니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 라볶기 만들기 일인자가 누군지 알아요? 예. 바로 엄하늘 선생님입니다. 하다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엄하늘 선생님도 불러서 가르쳐주도록 할게요.”
이랬더니 몇몇 아이들이 간절한 눈빛으로 말했다.
“엄하늘 선생님과 담임 바꿔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더니 음식 못한다고 담임까지 바꾸려 들다니!
“알았다. 추석 지나고 엄하늘 선생님하고 내하고 교실 바꿀란다.”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다 보니 약속한 시간이 되었다. 마침 민서 어머니가 냄비도 가져오셨고, 1반 선생님과 미경이 어머니까지 아이들을 돕겠다고 오셨다. 담임이 음식 솜씨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아셨는지 참 고마웠다.
하다보니 물을 많이 부어서 떡볶이 목욕탕을 만든 조도 있고 고추장이 적어서 빌리러 다닌다고 바빴던 조도 있고 김밥 조처럼 준비가 탄탄해서 진행이 척척 잘된 조도 있었다. 맛이나 모양이야 어떻든 이런 모습이 모두 소중하게 느껴졌고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았다.
3학년들과 처음 음식 만들기를 해보니 준비를 제대로 못 시켜서 어려움이 많이 느껴졌다. 다음에 한다면 좀 더 짜임새 있게 준비해서 어머니들 도움 없이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아무 것도 안 될 것 같았던 음식 만들기가 여러 분들의 도움과 아이들의 노력으로 훌륭하게 끝났다. 끝날 무렵 떡볶이를 맛나게 한 냄비 해 오셔서 아이들의 입을 더욱 즐겁게 해준 수민이 어머니, 아이들에게 시원한 음료를 보내준 동협이 어머니께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