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10월 5일 - 정훈이 많이 컸네

늙은어린왕자 2010. 10. 6. 10:19

10월 5일 화요일 구름 조금

정훈이 많이 컸네


  수업 마치고 교실에 앉아 있는데 정훈이가 교실에 들렀다. 나를 보더니 능청맞게 한마디 했다.

  “선생님이 계셨구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요즘 들어 이 녀석이 한다는 소리가 죄다 이렇다. 지난 1학기 때만 해도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녀석이 많이 컸구나 싶었다. 나가려는 녀석을 잡았다.

  “정훈아.”

  “왜요?”

  “어디가노?”

  “통뻐 가야 돼요.”

  “통뻐가 뭐꼬?”

  “통학 버스 타야 된단 말이에요.”

  또 웃음이 나왔다. 이런 말들을 어디서 배웠을까? 예전에는 한 마디 하려고 손만 잡아도 몸을 움찔하면서 눈물을 글썽였는데 지금은 완전 딴 아이가 됐다.

  요즘 정훈이를 보면서 이렇게 웃는 일이 많다. 한 학기가 지났을 뿐인데 너무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숙제를 안 해오거나 수업 시간에 떠들 때 정훈이에게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정훈아, 너 진짜 아빠한테 일러준다.”

  1학기 때였으면 ‘아빠’란 말만 나와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일러 주이소.”

  이러며 아무 일 없다는 듯 앉아있다.

  심지어 아침에 내가 교실에 들어서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이정호 오네. 아, 이정호 나쁘네.”

  도대체 이런 엄청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를 정도다.

  그러나 한편으론 예전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오늘 체육 시간에 여학생들과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데 정훈이가 축구를 하다가 뛰어왔다.

  “선생님, 저 수민이 공 뺐었어요.”

  얼굴에는 자신감이 묻어있었다. 우리 반에서 축구를 가장 잘 하는 수민이 공을 빼앗아서 기쁨이 컸던 모양이었다. 잘 했다고 칭찬해주었더니 싱글벙글하며 다시 뛰어갔다.

  정훈이에게 찾아온 또 다른 변화는 살이 많이 쪘다는 점이다. 옆에서 보면 배가 나와서 티셔츠 아래가 살짝 들릴 정도다. 몸도 마음도 부쩍 큰 정훈이를 보며 아이들은 하루하루 무섭게 커가는구나 하는 걸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