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10월 13일 - 선행학습 ②

늙은어린왕자 2010. 10. 13. 19:46

10월 13일 수요일 구름 조금

선행 학습 ②


  어제 저녁에 아내랑 이웃에 사는 한 선생님과 선행학습에 관해 잠깐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모두들 학교에서 겪는 일이라 이야기가 잘 통했다. 이웃 선생님은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했다.

  “선행학습을 해 오는 아이들 신경 쓰지 않고 계획대로 수업합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잘 하는 아이, 못 하는 아이가 있어도 맨바닥에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수업해요. 잘 하는 아이들은 놔두고 안 되는 아이들에게 일대일로 지도하거나 보충하니까 대부분 잘 따라오던데요.”

  아내는 미리 공부한 아이들 중에는 수업 시간에 안 듣거나 빨리 해놓고 딴 짓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특별히 지도한다고 덧붙였다. 나도 그런 아이를 많이 보아 와서 공감이 갔다.

  인터넷에서 ‘선행학습’이라고 치고 검색해보니 관련 자료가 많았다. 그 중에 「꼴찌도 행복한 교실」이라는 책을 쓴 박성숙 님의 이야기가 눈에 띄었다.

  독일에서는 아이가 선행학습을 많이 하여 같은 반 또래 아이들 보다 학습 진도가 월등히 앞서면 ‘월반’을 권한다고 한다. 선행학습을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의 수업권을 침해한다는 게 그 까닭이라고 한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한글을 줄줄 읽고 쓰고 수학 계산을 척척 해내면 초등학교 2학년으로 보내버린다는 말이다. 아울러 교사는 미리 공부하고 온 아이들이 지겹고 재미없어 해도 모르는 아이들에 맞추어 수업을 진행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도나도 선행학습을 하는 바람에 모두가 힘든 상황이다. 아이들은 공부할 게 많아서 힘들고, 가르치는 교사는 어느 수준에 초점을 맞춰 수업해야 할지 몰라 힘들고, 부모는 뒷바라지 하느라 힘들다. 만약 독일처럼 한다면 선행학습은 특별히 공부 잘 하는 아이들만 원해서 하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학원이나 공부방, 과외로 미리 수학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은 단 세 명뿐이었다. 대부분 선행학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가 독일이라면 우리 반 아이들 가운데 실력이 괜찮은 절반 정도는 4학년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어제 나눈 이야기와 독일 교육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학교 수업이 어떠해야 할 지 뚜렷해졌다. 설사 모두가 선행학습을 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학교에서는 단계에 따라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수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