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일(2) - 그 아이
10월 20일 수요일 엷은 구름 조금
그 아이
중간고사 시험을 보다가 문득 어제 일이 생각나서 4학년 3반으로 팝업을 띄웠다.
‘선생님, 어제 저 때문에 힘들었죠? 죄송합니다. 그나저나 그 녀석 오늘 학교는 왔습니까? 별 일 없었습니까?’
잠시 뒤 답장이 왔다.
‘문제없었으니 걱정 마세요.’
별 문제가 없었다니 다행이기는 한데 왠지 그대로 믿어야 할 지 의심스러웠다. 내가 교직에 들어선 지 이십 년이 다 됐지만 그런 아이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일은 급식소에서 일어났다. 우리 반 앞에는 먼저 온 4학년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아이는 맨 뒤에 서 있었다.
문제가 일어나려고 그랬는지 하필이면 한별이가 우리 반 맨 앞에 서게 되었다. 한별이는 교통사고로 다친 다리를 치료하느라 유급이 되어 3학년이지만 원래는 4학년이다.
한별이가 오자 그 아이가 뒤돌아서더니 무슨 말을 건넸다. 한별이도 지난해까지 같은 학년이어서 서로 잘 알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가까이 다가가서 물었다.
“한별아, 너 얘 알어?”
“예, 친군데요.”
한별이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그 아이는 반응이 달랐다.
“친구 아닌데요. 3학년 주제에.”
아픈 곳을 찔린 한별이가 기분 나쁘다는 듯 그 아이 등을 툭 밀었다. 그 아이도 한별이를 툭툭 쳤다. 바로 옆에 내가 서 있는데도 거리낌이 없었다.
다툼을 보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한별이가 억울할 것 같아서 아이를 나무랐다.
“야, 너 한별이하고 키 좀 재보자. 내가 보기에 넌 2학년 키 밖에 안 되겠는데?”
이 소리가 매우 기분 나쁘게 들렸던지 아이의 행동이 갑자기 변했다. 씩씩거리더니 두 손으로 한별이 목을 조았다. 그래서 잡아떼었더니 자기를 때렸다고 소리를 지르며 바닥으로 벌렁 드러누웠다.
참 고집불통이구나 싶어서 달랑 들고 식당 밖으로 나갔다.
“너 자꾸 이럴래? 까불면 저 울타리에 던지고 간다!”
이때부터 그 아이는 정신을 잃은 듯 온 몸을 뒤틀며 고함을 질러댔다.
“놔라. 이 ×××아. 이 ×××야.”
“이 놈의 자식이 어디서 욕을 해대노!”
이판사판이었다. 몸부림치고 누르고 서로 소리치며 아수라장이 됐다. 들어서 던지는 시늉을 했더니 오히려 더 큰 소리를 쳤다.
“던져라. 이 ×××야.”
그제야 아이가 누군지 느낌이 왔다. 잘못 건드렸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어떻게든 달래서 식당 안으로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그만하고 이제 들어가서 밥 먹자.”
“싫어. 너는 내 때렸다고 경찰에 신고할 거야!”
들었던 몸을 바닥에 놓자 대뜸 휴대폰부터 집어 들었다. 휴대폰을 뺐었더니 신고하러 간다며 후다닥 화단으로 뛰어갔다. 잡으러 갔지만 저 멀리 달아났다.
뒤늦게 이 일을 알게 된 담임선생님은 밥을 뜨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반 아이들을 보내 녀석을 찾게 했다. 너무 미안했다.
아이는 급식이 끝난 뒤 그 반 아이들과 담임선생님이 나서서 찾아왔다. 아이들이 도망가는 녀석을 잡으러 다니는 모습을 보니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녀석이 억울하다며 소리치는 바람에 오후 수업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얼굴만 몰랐지 그 아이에 관한 이야기는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지난 해 맡았던 담임선생님은 녀석 때문에 눈물을 흘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그나마 올 해 담임은 중년의 남자분이라 눈물만 안 흘렸지 속 태우는 건 똑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말로만 듣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가진 아이였다. 증상을 보니 가벼운 ADHD는 아닌 듯 했다.
자기 행동을 조절할 힘이 없는 아이에게 내가 몹쓸 짓을 했구나 싶었다. 처음부터 그 아이인 줄 알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제 얼굴을 제대로 알았으니 다시 이런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증상이 깊어 보이는 아이를 보통 학급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공부시키는 게 옳은 지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 아이는 물론이고 함께 지내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좋은 영향 보다는 나쁜 영향이 더 클 것 같았다. 하루 빨리 그 아이에 맞는 치료와 교육을 시키는 게 모두를 위한 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