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 연필과 샤프
10월 25일 월요일 맑은 가운데 엷고 흰 구름 조금
연필과 샤프
한자 시간에 아이들이 어떤 필기도구를 쓰는 지 살펴보았다. 연필로 쓰는 아이가 열여섯 명, 샤프로 쓰는 아이가 열 명이었다. 샤프로 쓰는 아이가 더 많을 줄 알았는데 연필이 더 많았다. 연필을 많이 쓰는 나로서는 무척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샤프만 쓰는 아이가 네 명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연필을 아예 안 쓰거나 많아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잡는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이 네 명이나 되어서 놀랐다.
이런 조사를 해본 까닭은 아이들이 한자 글씨 때문이다. 남학생들은 큼직하게는 쓰지만 균형이 맞지 않고 여학생들은 예쁘고 모양새는 나지만 크기가 너무 작은 느낌이 들었다.
한자는 획의 높낮이와 셈여림이 아주 뚜렷한 글자이다. 그래서 한자를 쓸 때는 샤프 보다는 연필이 낫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연필은 심이 굵어서 힘을 조금 세게 주어도 되고 샤프처럼 미끄러짐도 적어서 한자 쓰기에는 좋을 것 같아서다.
이런 생각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연필이 좋나, 샤프가 좋나’를 주제로 잠시 즉석 토론을 벌여보았다.
먼저, ‘샤프가 좋다’는 쪽 의견이다.
“샤프는 간편합니다.” (태현)
“샤프는 느낌이 가벼운데 연필은 무겁습니다.” (민석)
“연필로 쓰면 손이 힘들지만 샤프는 쉽습니다.” (은서, 찬기)
“심이 닳았을 때 연필은 깎아야 하지만 샤프는 누르기만 하면 나옵니다.” (시현, 가연)
“연필은 검은 심이 손에 잘 묻지만 샤프는 안 묻습니다.” (미경)
‘연필이 좋다’는 쪽도 만만치 않았다.
“연필은 돈이 많이 안 들지만 샤프는 돈이 많이 듭니다.” (현수)
“샤프는 고장 나기 쉽지만 연필은 고장 나지 않습니다.” (구완)
“샤프는 힘이 없어서 잘 부러지지만 연필은 잘 부러지지 않습니다.” (수지, 정훈)
“연필은 조금 불편해도 쓸만한데 샤프는 오래 못 씁니다.” (수인)
한자를 쓰는 데는 연필이 낫다는 게 내 생각이지만 의견을 들어보니 꼭 연필만 고집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연필 때문에 불편을 느끼는 아이에게 연필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꼬불꼬불한 영어는 샤프로 쓰고 셈여림이 있는 한글이나 한자는 연필로 쓰는 게 좋다고 하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문제는 샤프만 쓰는 것과 연필을 깎을 때 연필깎이만 쓰는 것이다. 아이들도 말했듯이 샤프는 힘을 조절하며 획을 그을 수 없다. 손놀림 하나하나가 두뇌발달과 연결되어 있다는데 셈여림을 조절할 수 없는 샤프만 쓰는 건 고쳐야겠다.
또 연필 깎을 때 칼을 쓰면 손의 근육이 움직이면서 뇌를 자극해 두뇌가 발달한다고 하니 연필깎이만 고집하지 않으면 좋겠다. 뭐든지 불편한 게 사람에게는 좋다는 말이 되겠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을 빼면 오로지 연필만 썼다. 요즘도 교실에서 주로 쓰는 건 연필이다. 메모할 때도 쓰고 책 읽다가 밑줄 그을 때도 쓴다. 연필은 손가락으로 힘을 조절해서 쓸 수 있어서 글씨도 잘 나오고 종이에 닿을 때 사각거리는 느낌도 좋다. 물론 깎을 땐 반드시 칼을 사용한다.
주말에 시간이 되면 ‘연필 깎기 대회’를 열자고 했더니 아이들이 좋다고 했다. 대회가 열리면 예쁘게 깎은 사람에게도 상을 주고 못났지만 쓸모 있게 깎은 사람에게도 상을 준다고 했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연필을 좀 더 친근하게 대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임) 인터넷을 뒤져보니 샤프쓰기를 주장하는 글이 있었다. ‘샤프가 연필보다 좋은 세 가지 이유’라는 글인데 재미있어서 소개해본다.
첫째, 손톱에 아름다운 때가 끼었을 때 샤프를 이용하면 아주 깔끔하게 제거된다. 연필로 파지마라. 손톱이 더 더러워진다.
두 번째, 머리 가려울 때 샤프로 긁으면 미치도록 시원해진다. 다 긁고 샤프심 누르면 비듬이랑 같이 나온다.
세 번째, 귀가 가려울 때 연필로 파내면 엄청 시원해진다. 기분도 날아갈 듯 상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