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12월 9일 - 이렇게 바쁘면

늙은어린왕자 2010. 12. 13. 00:42

12월 9일 목요일 쌀쌀함. 새벽에 내린 눈이 보일 듯 말듯 운동장 가장자리에 엷게 깔렸다.

이렇게 바쁘면


  연말과 방학을 앞두고 바쁜 날이 이어지고 있다. 해야 할 일은 밀물처럼 밀려드는데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손대야 할 지 모르고 허둥댄다. 이럴 때 아이들을 일보다 뒷전으로 물려야 하는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된다.

  특히 어제부터는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오후에는 회의와 문서정리, 밤에는 10시까지 교육청에서 야근, 오늘도 오후에는 출장, 저녁에는 교원단체 행사 참여, 내일 오후에도 출장이 잡혀 있는데다 밀려있는 공문처리도 여러 개다.

  시간은 없고 일은 밀리다 보니 수업 시간에도 틈틈이 컴퓨터 앞에 앉아야 했다. 국어 시간에 글 쓸 때, 수학 시간에 문제 풀 때, 미술 시간에 작품 만들 때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나는 나대로 따로 바빴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수업이나 아이들 보다 일을 앞세웠다.

  사실 지난해에는 올 해보다 일이 서너 배나 많았다. 수업이 많은 6학년 담임인데다 일이 많아서 교실은 거의 일 년 내내 어제와 오늘 우리 교실 모습이었다. 아이들과 나 모두가 참 불행한 한 해를 보내야 했다.

  작년 경험을 보약 삼아 올 해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학교일이나 공문처리 보다 수업과 아이들 돌보는 일을 먼저 하자고 굳게 마음먹었다. 설사 학교 관리자나 교육청에서 볼 때 전체 일을 소홀히 한다는 말을 듣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마음을 무난히 잘 지켜왔는데 연말과 방학을 앞두고 잠시 흐트러져버렸다.

  내일 박물관 체험학습도 있고 어머니회가 여는 바자회도 있는데 허둥대다가 알림장도 안 써주었다. 박물관 체험학습은 잠깐 둘러보고 오는 거라서 준비물이나 간식은 필요 없다. 그래도 알림장에 써주어야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이 마음으로나마 준비를 하게 된다. 바자회도 500원짜리 쿠폰은 모두에게 나눠줄 예정이지만 더 필요한 물건을 사려면 용돈을 준비하라고 해야 하는데 모두 잊어버렸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에게 큰 죄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