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12월 18일 - 만화 보는 날

늙은어린왕자 2010. 12. 20. 01:32

 

12월 18일 토요일 맑음

만화 보는 날


  올 해를 통틀어서 마지막 토요일인 오늘, 만화책을 보는 날이다. 굳이 이런 날을 정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만화를 많이 보기는 하지만 읽기 7단원에 만화로 공부하는 내용이 나오는 것을 구실 삼아 한 번 정해보았다. 그리고 일 년에 하루쯤은 이렇게 만화 보는 날이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책상 위에는 가져온 만화책들이 널려 있었다. 어떤 아이는 너무 욕심을 부려 가방이 미어터질 정도였다. 준비물(만화책)을 얼마나 가져왔는지 조사해보니 놀랍게도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다 가져왔다. 지난 일 년 동안 한 번도 이루지 못했던 꿈이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그래도 여러분들이 내 꿈을 이루어주었네요. 준비물을 이렇게 많이 챙겨줘서 고맙습니다.”

  꿈이란 올 해가 가기 전에 한 번이라도 준비물이나 숙제를 해오는 아이가 스무 명을 넘기는 것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열 명 중에 여덟 명 정도 된다. 작은 꿈이었지만 정말 이루기가 힘들었다.  심지어 토요일 날 자기가 먹을 간식 가져오는 것으로도 이루지 못했던 꿈을 방학을 며칠 앞두고 이루었다. 마치 축구에서 추가시간에 한 골 넣은 기분이라고 할까?

  “이제 이렇게 해냈으니 내년에는 올 해보다 준비물도 더 잘 챙기고 숙제도 잊지 말고 해오세요.”

  하지만 내 말에는 아랑 곳 않고 아이들의 눈은 벌써 만화책으로 쏠렸다. 몇몇 아이들 입에서는 메마른 대답만 들려왔다.

  “네~ 네.

  “노력해볼게요.”

  어쨌거나 계획한대로 각자 가져온 만화책을 두 시간 동안 보고, 다음 두 시간은 꿈을 이룬 기념으로 미경이가 가져온 만화영화 DVD를 간식을 먹으며 보았다.


[덧붙임] 아이들 덕분에 저도 만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수인이 어머니께서 <간판스타>라는 만화책을 보내셨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이희재’라는 작가 만화여서 더욱 기분이 좋았습니다. 언제나 아이들과 함께 하라는 뜻으로 알고 잘 읽겠습니다.

  청소 시간에 교무실에 일이 있어서 내려갔다 왔더니 교실이 아주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우렁이각시가 왔다 갔나 하고 생각했는데 규리 어머니께서 규리를 데리러 오셨다가 청소까지 도와주셨지 뭡니까? 그래서 오늘은 아이들 준비물 준비도 최고, 청소도 최고인 날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