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0 교실일기

12월 21일 - 방학생활계획표

늙은어린왕자 2010. 12. 22. 23:31
 

12월 21일 화요일 구름 많음→구름 조금. 개기월식을 볼 수 있으려나.

방학생활계획표


  둘째 시간에 어제 나눠준 방학생활계획표를 살펴보았다. 실천할 수 있도록 짰는지, 부족한 내용은 없는지, 빼야 할 내용이 있는지 살펴보고 다시 정리하기 위해서다. 하나하나 살펴보았더니 꼼꼼하게 시간을 나눠서 할 일을 적어 넣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엉뚱한 계획을 세워서 웃음을 주는 아이도 있었다.

  정훈이 계획표는 유달리 노는 시간이 많이 보였다.

  “정훈아, 놀기 세 시간에 TV 보기 네 시간, 컴퓨터 세 시간이면 하루에 몇 시간이나 노는 거냐?”

  자기가 봐도 머쓱했는지 정훈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밑도 끝도 없는 계획을 세워왔지만 정훈이가 이렇게라도 해온 게 대견했다.

  혜민이 계획표에는 유달리 잠자는 시간이 많았다. 밤에 열 시간 잡아 놓은 것도 많아 보이는데 특이하게 낮잠도 두 시간 반이나 넣었다.

  “혜민이는 잠이 많은가봐? 낮잠을 이렇게 많이 자?”

  “예, 낮잠 꼭 자야 돼요.”

  “그래도 하루에 열두 시간 반이면 너무 많이 자는 거 아냐?”

  “전 잠이 많아요.”

  평소에도 혜민이는 눈두덩이 조금 부은 듯 보였는데 잠자는 시간을 보니 이해가 됐다.

  량희는 저녁 시간에 ‘우리 아빠 기다리기’를 두 시간이나 잡아놓은 게 눈에 띄었다. 아빠를 생각하는 량희 마음이 느껴졌다.

  이 밖에 수인이가 9시 뉴스 보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둔 게 특이했고, 오후에 ‘우유 한 잔’ 먹는 시간을 한 시간 마련해둔 경민이 계획서도 재미있었다.

  계획표를 전부 살펴본 뒤 새 계획표를 나눠주었다. 부족한 건 넣고 필요 없는 내용은 빼되 하루에 책 읽는 시간을 반드시 두 시간 넣도록 했다. 이렇게 한 사람한테는 비타민 사탕을 두 개 준다고 했더니 불만 없이 열심히 짰다.

  잠시 뒤 새 계획서를 살펴보려는데 정훈이가 후다닥 나오더니 사탕을 네 개 달라고 했다. 자세히 봤더니 책읽기를 무려 네 시간이나 넣어놓았다.

  “하루에 네 시간 동안 책 읽겠나? 정훈아!”

  “읽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사탕 네 개 주세요.”

  책읽기 두 시간에 두 개면 네 시간이니까 네 개라는 말이다. 제사에는 관심 없고 음식에만 관심 갖는다더니 정훈이가 꼭 그 모양이었다. 안 된다고 했더니 입을 삐죽이며 들어갔다.

  찬기는 책 읽는 시간을 0시부터 새벽 2시까지로 잡아놓아서 놀랐다. 고쳐오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아침 6시부터 8시까지로 잡아왔다. 찬기 말로는 어느 시간이든 잠 안 잘 때가 많아서 지킬 수 있다고 한다. 역시 깊은 밤에도 일하는 경찰 아들다웠다.

  성진이는 한 술 더 떠서 책 읽는 시간을 무려 6시간 반이나 넣었다. 그러면서 저녁밥 먹는 시간은 달랑 30분으로 잡아놓았다. 누가 보면 대학 시험 공부하는 수험생 것으로 오해받기 좋게 짰다.

  어쨌든 개구쟁이 남학생 몇 명 빼고는 모두 잘 짰다. 약속대로 사탕을 두 개씩 나눠주었다. 물론 개구쟁이 남학생들에게도.

  계획서는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이다. 지금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똑바로 지키며 생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모두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