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 들통난 비밀 전화
2월 8일 화요일 겨울비가 촉촉이 내림
들통 난 비밀 전화
“선생님, 어제 우리 아빠한테 전화 왔죠?”
급식소에서 점심을 먹으며 윤재가 물었다.
“아니, 전화 안 왔는데?”
“거짓말 마세요. 아빠가 전화할 때 옆에 있었다구요. 용은이도 같이 있었어요!”
“저도 다 들었어요. 선생님 목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렸는지 아세요?”
용은이도 한 마디 거들었다.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시치미를 떼려고 했는데 말문이 콱 막혔다. 그래도 능청스럽게 반박했다.
“다른 사람과 전화했겠지. 내 목소리와 비슷한 사람하고 말야.”
“절대 그럴 리가 없어요. 아빠 전화에 선생님 이름이 크게 찍혔단 말이에요.”
“오호, 그래?”
증거를 하나하나 들이대며 이야기하는 바람에 더 능청을 부리기가 어려워졌다. 옆에서 함께 밥을 먹던 아이들이 무슨 얘기냐며 귀를 쫑긋 세웠다. 윤재와 용은이 말고 다른 아이들이 알 필요가 없는 일이어서 관심을 돌리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어제 윤재 아빠가 전화 온 건 맞아. 윤재 아빠가 나한테 이려셨어. 요즘 윤재하고 용은이가 만나면 싸운다고 말야. 근데 싸울 때마다 윤재가 용은이에게 장풍 공격을 한다는 거야. 근데 용은이는 장풍을 막으려고 방귀를 쏜다고 해. 윤재 아빠는 이런 두 아이를 보며 나한테 어쩌면 좋겠냐고 물어보셨던 거야.”
이야기를 듣고는 윤재와 용은이가 나를 보며 씩씩거렸다. 용은이는 자기가 언제 방귀를 쏘았냐며 내 팔에 주먹을 몇 대나 날렸다. 이야기 덕분에 아이들의 관심은 금세 다른 데로 가 버렸다.
사실 어제 오후에 윤재 아버지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곧 반 편성을 할 텐데 윤재하고 용은이를 같은 반에 넣어줄 수 있겠냐는 전화였다. 할머니 보살핌 속에서 자라고 있는 윤재가 사촌인 용은이하고 같은 반이 되면 아무래도 의지가 되어서 좋겠다는 의견도 주셨다. 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같은 반이 되도록 하겠다고 대답해 드렸다.
대개 형제자매나 가까운 친척이 같은 학년에 있으면 반 편성 할 때 떼어놓는다. 같은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다 보면 서로 안 좋은 모습도 볼 수 있고 이런 문제 때문에 남모르게 마음을 앓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일 년 동안 윤재와 용은이를 살펴보니 다행히 이런 문제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도와주려고 애쓰며 구김살 없이 지내는 모습을 보며 내년에도 같은 반이 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마침 윤재 아버지께서 전화를 주셔서 쉽게 대답해드렸던 것이다.
아이들을 보내고 급식소를 나서기 전에 3반 선생님과 반 편성 기준에 관해 잠깐 의견을 나누었다. 우선 학습 면에서 2학기 중간, 기말고사 성적으로 아이들을 나누고, 그 다음으로 친구 관계나 학교생활 모습, 그 외 특별한 사정을 생각해서 반을 고르게 나누기로 했다.
이제 한 해가 끝날 때가 오기는 온 모양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니까 말이다. 회사원이나 보통 사람들의 연말은 12월이지만 학교는 지금이 연말이다. 며칠만 있으면 섭섭하지만 서로 헤어져야 한다. 지난 일 년 동안 정들었던 교실을 떠나 새 학년, 새 교실을 맞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