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어린왕자 2011. 3. 10. 00:58

3월 8일 화요일 맑고 추움

진단평가   

 

  출근하는데 교문에서 어떤 어머니 한 사람이 '일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일제고사를 반대합니다' 고 쓴 알림판을 들고 꽃샘추위가 서성이는 교문에서 오돌오돌 떨며 서 있었다. 오늘 전국에서 진단평가를 치르는 날이라 나온 것 같았다. 

  지나가는 아이들이 힐끗 힐끗 쳐다보았지만 날씨가 추운 탓인지 모두들 종종걸음으로 지나가기 바빴다. 그래도 꿋꿋이 서 있는 모습이 대단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냥 들어가려다가 발걸음을 교문으로 옮겼다.  

  "추운데 고생 많으시네요. 근데 교육청 앞이 더 좋지 않습니까?"   

  "아뇨, 아이들 보라고 여기 있어요. 교육청에는 아이들이 없잖아요."   

  김해교육연대에서 나왔다는 그 분은 자기 자녀도 근처 초등학교에 다닌다며 시험에 반대하는 뜻을 말해주었다. 진단평가 같은 일제고사가 가진 문제점을 너무나도 잘 아는 터라 충분히 공감이 갔다. 

  그런데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라면 몰라도 아직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직접 이런 내용을 알리는게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이들이야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따를 뿐 무슨 주장이나 이념을 가지고 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시위는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만 지우는 어른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나 교육청 같은 곳이 더 좋을 것 같았다.    

  진단평가는 해마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보는 시험이다. 이전 학년에서 배운 내용을 평가해보고 아이들 수준에 맞게 가르치는 자료로 삼으려고 이런 시험을 치른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해마다 학교별로 또는 학급별로 평가를 해왔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것을 나라에서 관리한다고 하더니 이젠 전국 아이들이 같은 날에 똑같은 문제로 치르는 일제고사로 바뀌고 말았다. 과목도 국어, 수학만 해오던 것에 사회, 과학, 영어까지 넣어서 다섯 개로 늘어났다.    

  시험을 치르고 나면 각 문제마다 몇 명이 맞고 틀리는지, 학교나 지역별로 점수 높낮이가 어떻게 되는지 통계를 내라고 강요하는 통에 학년 초부터 온 나라의 학교가 몸살을 앓는다. 이런 시간에 새로 만난 아이들과 이야기 한 마디 더 나누거나 부모님들이 써준 기초조사서 한 구절이라도 더 보는 게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도움이 될텐데 말이다.  

  여하튼 오늘은 다섯 시간 동안 조용히 시험만 치르고 하루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