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 숫자 속에 숨은 비밀
3월 11일 금요일 맑음
숫자 속에 숨은 비밀
수학 시간에 열여섯 자리 수, 조 단위를 공부했다. 쉬는 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공부한 것을 확인할 겸 칠판에 다음과 같은 수를 하나 쓰고 읽어보자고 했다.
‘7008201051508805’
“칠천팔조이천십억오천백오십만팔천팔백오”
두 명에게 읽어보라고 했더니 정확하게 읽었다. 다르게 읽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보니 한 명도 없었다.
“오늘 공부 잘 했네요. 근데 이 숫자가 무엇을 나타낸 걸까요?”
“네?”
“무슨 뜻이 있어요?”
교과서 공부가 끝났다고 익힘책을 챙기던 아이들이 갑작스런 질문에 눈이 동그래졌다.
“이 숫자 속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어요. 뭘까요?”
아이들은 저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숫자의 비밀을 생각했다. 그 모습을 보니 은근히 재미있게 느껴졌다.
모두들 골똘히 생각에 빠진 가운데 만물박사처럼 아는 게 많은 성윤이가 먼저 손을 들었다.
“주민등록번호?”
“아닙니다. 이렇게 긴 주민등록번호 봤습니까?”
이번에는 민서가 말했다.
“선생님 나이?”
그러자 아이들이 웃었다.
“야! 선생님 나이가 몇 천조 살이란 말야?”
“선생님 엄청 할아버지네.”
아무래도 도움말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럼 힌트를 하나 주지. 작년에 선생님 반 했던 아이들은 좀 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숫자 뒷부분을 잘 세요. 어디선가 본 일이 있을 거예요.”
첫 번째 도움말을 들은 아이들이 또 다시 생각에 잠겼다. 수학 문제 풀 때 보다 더 눈빛이 진지해졌다.
“아하, 알겠어요.”
미경이가 마치 정답을 찾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뭔데 미경아?”
“작년에 우리가 쓴 글 편수?”
“뭐? 우리가 글을 이렇게 많이 썼다구?”
“아닌가?”
미경이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경이 말고는 지난해에 우리 반이었던 아이들의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이번에는 좀 더 확실한 도움말을 주려고 앞 다섯 자리인 ‘70082’을 가렸다. 이제 ‘01051508805’를 보고 정답을 맞히도록 했다.
“뭐지?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
하지만 아이들은 아무도 답을 맞히지 못했다.
“이거 전화번호인데, 보세요. 공일공오일오공팔팔공오. 엄청난 비밀이란 바로 선생님 전화번호가 숨어있었다는 거!”
그제야 여기저기서 아쉬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어디서 본 거 같더라니까.”
“왜 선생님 전화번호를 몰랐지?”
확인 문제로 뭘 해볼까 하다가 재미로 내 휴대전화 번호를 넣어서 수를 만들어 보았는데 아무도 비밀을 캐지 못해서 아쉬웠다. 앞자리 ‘700’은 국제전화 걸 때 쓰는 번호에서 따왔고 그 뒤에 국제전화에서 우리나라 식별번호 82를 가져와 붙였다. 비밀은 캐지 못했지만 조 단위 수 자체는 잘 읽었으니 이 시간 공부는 훌륭히 한 셈이다.
“와, 선생님 진짜 배신감 느끼겠다.”
지난해에 맡은 아이들이 한 명도 못 맞힌 것을 성윤이가 콕 꼬집어주는 소리를 들으며 수업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