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 - 연필 깎기 서비스
3월 21일 월요일 하루 종일 구름
연필 깎기 서비스
수학 단원 평가 시험지를 푸는데 (김)현민이가 부러진 연필만 두 자루 들고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필통은 보이지 않았다.
“미리 미리 깎아둬야지!”
어쩔 줄 모르고 머리만 긁적이고 있는 녀석이 미련스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얼른 연필을 칼로 깎았다. 미우나 고우나 시험지는 풀도록 해야 할 게 아닌가.
“옛다. 서비스다.”
이렇게 말하며 깎은 연필을 건네주었더니 녀석이 받아들고는 곧장 시험지로 손을 돌렸다. 그런데 이걸 본 아이들이 저마다 소리치기 시작했다.
“저도 서비스 해주세요.”
“저도요.”
예닐곱 명이 손을 들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모두 남학생들뿐이었다.
“뭔 서비스를 해달란 말이고?”
“현민이한테는 했잖아요.”
정말 준비성 없는 아이들, 아니 남학생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은 아이나 어른이나 왜 이렇게 준비성이 없을까? 물론 같은 남자인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연필 깎는 게 힘든 일은 아니다. 오른손으로 칼을 잡고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힘 조절 하며 칼등을 슬금슬금 밀면 보통 10초 정도에 한 자루 깎는다.
그런데 교실 뒤에 연필깎이가 버젓이 두 대나 있고, 집에 가면 또 있을 텐데 미리 깎아놓지 않으니 한심할 수밖에. 어쩔 수 없이 시현이 연필부터 한 자루 깎았다.
“다음은 누구?”
이번엔 동협이가 손을 내미는데 새 연필, 몽당연필 합쳐서 모두 다섯 자루나 되었다.
“야, 이거 너무한 거 아이가?”
“몰라요. 그렇게 됐네요.”
스스로도 무안했는지 동협이는 허연 이를 드러내며 실실 웃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들도 따라 웃었다.
“야, 근데 이거 그냥 해줘도 되는 거야?”
“서비스잖아요.”
“내가 만든 것도 아닌데 뭔 서비스야. 아무래도 뭘 받아야겠는데…‥.”
개수가 많은 데다 몽당연필이 너무 짧아서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다 보니 이번엔 시간이 좀 걸렸다. 한참 끙끙거리며 깎고 있는데 동협이가 솔깃한 제안을 했다.
“안마해드릴게요.”
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거 좋네. 그럼 한 자루에 10분씩 할까?”
“10분은 너무 길어요. 2분씩 할게요.”
“좋아. 그러면 동협이는 10분이다.”
괜찮은 제안을 받아서일까? 깎는 손놀림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자, 다음 사람?”
이번에는 성윤이가 손을 불쑥 내밀었다.
“저는 좀 많은데요.”
“얼마나 많은데? 허억!”
놀랍게도 성윤이가 내민 연필은 모두 일곱 자루였다. 마치 유물 캐내듯 몇 달 째 필통에서 잠자던 연필이 다 나온 것 같았다.
“사람 잡을 일 있나?”
“죄송합니다. 히히 히히.”
녀석도 장난스럽게 웃기만 했다.
“성윤이는 14분이네.”
“우와, 최고다.”
성윤이 때문에 조용하던 교실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이어서 (정)현민이 연필 두 자루와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것들까지 깎고는 모두 모아놓고 사진을 한 장 찍었다.
“자, 배달 간다.”
“우와, 배달까지?”
“서비스가 이 정도는 돼야지 않겠니?”
“짱이에요.”
깎은 연필을 아이들에게 모두 나눠주고는 연필 깎기 서비스를 모두 마쳤다. 아이들은 다시 시험지를 부지런히 풀어나갔다.
그나저나 녀석들이 깎을 때는 안마해준다고 해놓고 뒤에 가서 딴 소리 하지나 않을까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