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3월 25일 - 컴퓨터 이사

늙은어린왕자 2011. 3. 28. 01:48

3월 25일 금요일 맑음

컴퓨터 이사

 

 

  컴퓨터는 수업 하고 일 보는데 없으면 안 되는 물건이다. 이제 하루라도 컴퓨터를 켜지 않으면 모든 게 마비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컴퓨터가 언제부턴가 아이들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버렸다. 컴퓨터로 해결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니 교실에 앉으면 늘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어서 그렇고 또 커다란 모니터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보니 가만히 있어도 앞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아이들과 나 사이에 떡 버티고 있는 녀석을 치우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제 오후에 오랜만에 시간이 여유로워서 이 일을 시작했다. 우선 컴퓨터를 TV 아래로 옮기기로 하고 선 정리를 하는데 겉보기와는 달리 일이 많았다. 컴퓨터와 모니터, 프린트기는 선 빼고 달랑 들어 옮기면 되는데 연결된 여러 가지 선들이 문제였다. 인터넷 선, 소리 선, 화면 선에다 전화선까지 묶이고 얽힌 기다란 선들을 바닥에서 뜯어내어 다시 묶고 정리하는데 자그마치 두 시간이나 걸렸다. 큰마음 먹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손등과 팔목 위에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깔끔하게 정리된 책상을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꺼림칙했던 일을 해낸 덕분에 오늘 아침에 학교 오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교실에 오자마자 정리된 책상 주위를 서성거리며 이리 보고 저리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아이들도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곤 했다.

  “선생님, 컴퓨터 왜 치웠어요?”

  “컴퓨터가 책상 위에 있으니까 앞이 안 보여서 말야. 너희들도 칠판이 잘 안보이잖아. 그래서 치웠지. 어때, 시원하지 않니?”

  “네, 좋아요.”

  책상 앞에 앉아서 보니 모니터가 버티고 서 있을 땐 숨바꼭질 하듯 잘 보이지 않던 3분단 아이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 쪽에 가서 보니 시커먼 모니터 대신 칠판이 시원하게 다가왔다. 이제 일할 때는 TV 밑으로, 아이들을 대할 때는 책상 앞에서 모두를 바라보며 눈도 맞추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컴퓨터 이사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