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 - 탈출 공원
3월 28일 월요일 맑지만 탁한 하늘
탈출 공원
듣기말하기 시간에 ‘설명하는 말을 듣고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는 방법’에 관해 공부했다. 눈으로 글을 보며 중요한 내용을 찾는 것도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귀로 듣고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는 공부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교과서에 나와 있으니 같이 해보기로 했다.
이 공부를 제대로 하려면 들려주는 말에서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 알아야 하고 또 중요한 내용을 정리하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는 교과서에 제시해 놓아서 정리하는 방법에 관해 좀 더 설명했다.
“들을 때 기록하세요. 기록할 때는 들은 내용을 다 쓰려 하지 말고 중요한 낱말이나 낱말 첫 글자만 쓰면서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이어서 나오는 내용을 놓치지 않아요. 그리고 기록하면서 이야기 내용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나중에 정리할 때 떠올리기 좋아요.”
들려줄 것은 ‘안동국제탈춤페스벌’이라는 행사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길지는 않지만 아이들에게는 생소한 내용이다.
2번 축제는 경상북도 안동에서 열리는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입니다. 이 축제는 다양한 문화가 온전히 전승되어 온 안동 문화를 통하여 우리 문화의 고유함과 탈춤의 신명을 알리기 위하여 열리고 있습니다. 안동 국제 탈춤 페스티벌은 해마다 9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10일간 안동 시내, 탈춤 공원, 하회 마을 등에서 열립니다. 그리고 축제 기간 동안에는 국내 탈춤 공연과 외국 공연단의 공연, 선유줄불 놀이, 전통 혼례 등의 다채로운 문화 행사도 열립니다.
TV에서 소리가 흘러나오자 아이들은 저마다 귀를 세우고 내용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선생님, 설명이 너무 빨리 지나가요.”
아이들은 한 글자 적으려 하면 다음 내용이 물 흐르듯 줄줄 지나가버린다며 몇 번이고 다시 들려달라고 애원했다. 그 때마다 잠깐 멈추어주기도 하고 다시 들려주기도 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펴보니 중요한 낱말을 짧게 메모하며 듣는 아이는 예닐곱 명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앞 내용을 메모하다가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놓쳐버리거나 무엇을 메모해야 할 지 몰라 아예 손 놓고 있었다.
본보기로 보여주려고 나도 칠판에 메모를 해보았다. 아이들 말대로 말이 정말 빨리 지나갔다. 그래서 최대한 짧게 첫 글자 또는 중요한 글자 한두 개씩만 썼더니 암호 같은 메모가 됐다.
‘9 마 금 10, 시 탈 하, 고유 신명, 탈 외국 혼’
‘9 마 금 10’이란 행사가 열리는 시기로 ‘9월 마지막 주 금요일부터 10일 간’이라는 뜻이고, ‘시 탈 하’는 행사 장소로 ‘안동 시내, 탈춤 공원, 하회마을’의 머리글자다. ‘고유, 신명’은 행사를 하는 까닭인 ‘문화의 고유함과 탈춤의 신명을 알리기 위해’를 뜻하고, ‘탈 외국 혼’은 ‘탈춤 공연과 외국공연단 공연, 전통혼례’를 나타낸다. 선유줄불 놀이는 빼먹었다.
이제 각자 기록한 것을 보고 내용을 축제가 열리는 때와 장소, 축제를 하는 까닭, 행사 내용 이렇게 세 가지로 정리해야 한다. 아이들은 끙끙거리며 암호를 다시 말로 짜 맞추었다. 기록을 제대로 못한 아이들에게는 내가 써 놓은 것을 참고하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정리해놓은 글을 살펴보니 내가 써 놓은 메모도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같다.
먼저, 첫 번째 질문 ‘언제 어디에서 열리나요?’에 써 놓은 아이들 글을 살펴보았더니 ‘9월 마지막 금요일부터 10일간, 경상북도 안동 시내, 탈춤 공원, 하회마을’(안유진)이라고 잘 정리한 아이가 있는 반면 많은 아이들이 엉뚱하게 기록해놓았다.
안동시내는 대부분 바로 썼는데 안동시해(1명), 시네(1명), 안동시네(2명)로 쓰거나 마을회관(1명)으로 쓴 아이도 있었다. 하회마을은 화애마을(1명), 하예마을(1명), 화외마을(1명), 화회마을(1명), 하해마을(2명), 하내마을(3명), 하외마을(4명)으로 다양하게 썼다. 재미있는 것은 탈춤공원을 ‘탈출공원’으로 쓴 아이가 네 명이나 있다는 사실이다. 탈춤에 관해 설명한 것인 줄 몰랐을까?
두 번째 질문 ‘축제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에는 우리 문화의 고유함과 신명함을 알리기 위해(양현정), 우리 고유의 신명을 알리기 위해서(장희지)라고 쓴 게 그럭저럭 괜찮았다. 여기서도 여러 가지 표현이 나왔는데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나라의 고유와 신명을 알리기 위해’, ‘우리 문화의 고유함과 실례를 알리기 위해서’, ‘우리 문화의 고유함과 신경함을 알리기 위해’, ‘우리 문화에 고요한 실례를 알리기 위하여’, ‘우리 문화에 교요한과 탁을 알리려고’, ‘우리 문화를 멀리 알리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고요염을 알리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고요연을 알리기 위해서’, ‘우리 문화의 고요함과 신명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 이 밖에 ‘함평 나비축제는 자연의 아름다움고 소중함을 알리기 위하여 열립니다’는 내용도 있었다.
세 번째 질문 ‘어떤 행사가 열리나요?’에는 많은 아이들이 ‘탈춤’, ‘외국공연단 공연’, ‘전통혼례’라고 써 놓았다. 여기서 ‘선유줄불놀이’라는 게 빠졌는데 이것을 많은 아이들은 쥐불놀이(11명), 지불놀이(4명)로 써놓았다. 그래도 이것은 아이들이 나 보다 낫다. 나는 아예 메모에 쓰지도 못했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정리해놓은 내용을 살펴보니 예상대로 한 시간 동안 힘든 공부를 했구나 싶었다. 메모하며 듣는 연습이 부족한데다 내용이 생소하고 말도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더했다. 하지만 어쩌랴. 힘들어도 이렇게 해보는 게 공부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