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6월 7일 - 혜민이의 눈물

늙은어린왕자 2011. 6. 8. 02:03

6월 7일 화요일 구름 조금
혜민이의 눈물

 

  3교시 마치고 쉬는 시간에 여학생 다섯 명이 교실 뒤에서 내일 수련회 때 보여줄 춤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늘 함께 연습하던 혜민이가 빠지고 채미가 들어가 있었다. 까닭을 물었더니 아이들은 우물쭈물 거리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뭔가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우선 혜민이를 불렀다. 어찌된 일이냐는 물음에 혜민이는 대답 대신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러다 잠시 뒤 울먹이며 말했다.
  “애들이 저보고 빠지래요. 흑.”
  함께 춤 연습을 하던 진하를 불러서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혜민이 말이 사실이라고 했다. 진하 말로는 연습할 때 ‘박자선생님’ 역할을 하던 채미가 같이 춤추고 싶다고 해서 넣어주었는데 다섯 명이 한 조라서 할 수 없이 혜민이를 빼게 되었다고 했다. 혜민이가 스스로 안 하겠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뺐다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내일 공연 없는 걸로 하자. 혜민이가 몸이 아파서 못하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너희들 다섯 명은 기분 좋게 할지 모르지만 한 사람이 이렇게 기분 나쁘게 되었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게 더 낫겠다.”
  텁텁한 교실에 갑자기 찬바람이 일었다. 춤 연습하던 아이들은 물론 이를 지켜보던 아이들도 멀뚱멀뚱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래도 여태까지 연습했는데 우리 반만 안 하면 어떻게 해요?”
  누군가가 안타까운 목소리로 서먹한 분위기를 깨며 말했다. 
  “장기자랑은 재미로 하는 건데 기분 나쁘게 할 필요는 없잖니? 그래 좋아. 그러면 의견을 내봐라.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노?”
  아이들은 저마다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손이 올라갔다.
  “여섯 명이 다 하면 어떨까요?”
  “아예 하지 말지요?”
  “원래대로 해요.”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다. 아이들도 이 일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동협이가 손을 들었다.
  “한 번은 채미가 들어간 공연을 하고 또 한 번은 혜민이가 들어간 공연을 하면 되잖아요.”
  “같은 공연을 두 번 잇달아 하면 다른 반 아이들이 좋아하겠니?”
  “예!”
  동협이 대답에 아이들이 웃었다.
  “그럼 선생님 의견은 뭔데요?”
  한 아이가 물었다.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보려는 마음이 묻어있는 질문이었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혜민이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뺀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해. 인정할 수 있어?”
  함께 연습하던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혜민이한테 사과하고 원래대로 하면 좋겠어. 채미는 계속 ‘박자선생님’을 하면 되잖아. 무대 위에 서는 것도 좋지만 무대 아래에서 도와주는 것도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해.”
  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문제를 모두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그제야 혜민이도 이를 지켜보던 아이들도 모두 표정이 밝아졌다. 함께 나온 진하가 혜민이를 데리고 자리고 가고 수업에 들어갔다. 


  [덧붙임] 나중에 들어보니 모든 게 잘 풀렸다고 한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춤 연습하는 아이들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을 가져왔다. 우리 반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순간의 실수 때문에 모든 걸 없던 일로 했으면 우리 모두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됐을까.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다시 원래 모습을 되찾게 해준 ‘춤꾼’ 아이들 그리고 문제를 풀어보려고 좋은 의견 내준 여러 아이들 덕분에 내일 공연이 더 빛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