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7월 2일 - 기말고사 뒷이야기

늙은어린왕자 2011. 7. 4. 17:58

 

7월 2일 토요일
기말고사 뒷이야기

 

✐하나 : 왜 틀렸을까?
  첫 시간에 어제 치른 시험지를 나눠주고 각자 틀린 문제를 다시 살펴보도록 했다. 어려워서 틀렸는지, 알면서도 틀렸는지, 어이없는 실수로 틀렸는지 꼼꼼하게 점검해보고 메모하도록 했다.
  아이들이 정리한 내용을 살펴보니 대체로 내용이 비슷했다. 어려워서 틀린 문제는 공부를 안 했거나 했는데 잘 몰라서, 알면서 틀린 문제는 문제를 잘못 읽었거나 풀이과정이 잘못된 경우가 많았다. 또 실수로 틀린 문제는 잘 풀어놓고 엉뚱한 답을 썼거나 고쳐서 많이 틀렸다. 아이들이 메모해놓은 것 가운데 몇 개 골라보았다.

 

 ❉어려워서 틀린 문제
  국어 5번 : 공부를 못 했다.
  수학 13번 : 공부를 하긴 했는데 잘 못한다.
  사회 18번 : 글이 이해가 잘 안 되어서 찍었다.
  도덕 2번 : 시험에 안 나올 줄 알고 공부를 안 했다.

 

 ❉알면서도 틀린 문제
  국어 2번 : ㄱ~ㄹ까지 있는데 ㄱ~ㄷ까지만 봐서
  수학 14번 : 계산이 틀렸다.
  음악 2번 : 갑자기 기억이 안 나서
  과학 7번 : 글자를 잘못 봐서

 

 ❉실수로 틀린 문제
  수학 18번 : >, < 표시를 잘못 했다.
  사회 4번 : 생각은 평등선거인데 글은 보통선거로 써서
  체육 8번 : 처음에는 4번으로 썼는데 2번으로 고쳤다.
  미술 10번 : 나무를 그리는데 냄새를 맡는 게 말이 돼?

 

  다음 시험에는 이런 문제가 줄어들 수 있을까? 아니, 줄어들 것이다. 모르고 틀린 문제는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알면서 틀리거나 실수로 어이 없이 틀리는 건 충분히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 

 

 

✐둘 : 말이 됩니까?
  틀린 문제를 점검할 때 성윤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미술 10번에요, 나무를 그릴 때 꼭 나뭇잎의 냄새를 맡아봐야 합니까?”
  성윤이는 이 문제를 틀려 90점을 받았다. 메모지를 보니‘실수로 틀린 문제’에 넣어놓고는‘나무를 그리는데 냄새를 맡는 게 말이 돼?’라고 써놓았다.
  “나무를 그리기 전에 안아보고 표면의 촉감을 느껴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아보면 나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꺾어본다는 건 진짜 말이 안 되잖니?”
  이렇게 말하긴 했는데 문득 성윤이 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문] 나무를 그릴 때 방법으로 적당하지 않은 것은 어느 것입니까?
 ① 나뭇가지를 꺾어 본다.
 ② 나무를 두 팔로 안아본다.
 ③ 나뭇잎의 냄새를 맡아본다.

 ④ 나무줄기를 손으로 만져본다.
 ⑤ 나무 표면의 촉감을 느껴본다.

 

  이 문제는 열에 아홉 정도는 ①번을 선택하게 되어 있다. 나무를 그리는 데 나뭇가지를 꺾어본다는 건 누가 봐도 알맞지 않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윤이 말처럼 ③번도 애매하기는 하다.
  “꺾으면 안 되지만 나뭇잎의 냄새는 안 맡아도 그릴 수 있지 않습니까?”
  교과서에는 나무를 그릴 때 해볼 만한 활동으로 두 팔로 안아보기, 나무줄기를 손으로 만져보기, 나무 표면의 촉감 느껴보기 이렇게 세 가지가 나온다. 여기에 보기를 하나 더 넣는다는 게 나뭇잎 냄새 맡아보기가 된 것이다. 이 문제는 선생님들이 주로 활용하는 누리집에 나온 것을 참고해서 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나뭇잎의 모양 살펴보기’처럼 알기 쉬운 보기를 내놓을 걸 그랬다. 
  확인해보니 이 문제를 틀린 아이가 세 명인데 모두 성윤이와 똑같은 고민을 하다가 틀렸다.

 

 

✐셋 : 이건 말이 되니?
  도덕 시험에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나온다. 설명에 해당하는 인물을 찾는 문제다.

 

  [문] 다음과 같이 자주적인 생활을 실천한 위인은 누구입니까?

  한국의 훌륭한 어머니
  나는 참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글씨 공부, 그림 공부, 책 읽기 등 힘들어도 스스로 노력하면서 조금씩 배워나가 마침내 높은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쉽게 주저앉지 말고 끈기 있게 노력하십시오.

 

  ① 이순신   ② 최영   ③ 신사임당   ④ 유관순   ⑤ 세종대왕

 

  시험지를 펼쳐든 아이들이 물었다.
  “최영이 누굽니까?”
  “유관순은 누구입니까?”
  “신사임당은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보기에 나온 사람들은 누구나 알 만한 우리나라의 위인들이인데 이들을 모른다니…. 

  도덕은 평소 때 수업을 알차게 하지 못한데다 이번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복습을 시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잠깐 보기에 나온 사람들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이순신은 조선시대에 일본 사람들이 쳐들어 왔을 때 바다에서 일본군을 무지른 장군이고, 최영은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던 고려시대 장군이다. 신사임당은 조선시대 이율곡 선생의 어머니이고, 유관순은 약 90년 전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했을 때 독립만세운동을 하다가 16살 때 죽은 분이다. 그리고 세종대왕은 조선 4대 임금으로 한글을 만드신 분이었지.”
  이 정도면 거의 답을 가르쳐 준 거나 다름없다. 설명 가운데 어머니는 한 분 밖에 없으니까. 답을 못 쓰던 아이들이 이 설명을 듣고 답을 썼다.
  채점해보니 대부분 답을 잘 찾았는데 최영 장군을 쓴 아이가 한 명, 유관순을 쓴 아이가 두 명 있었다. 유관순을 찍은 아이는 그래도 이해가 됐다. 유관순 열사도 여성이니까 말이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은 세종대왕을 찍은 아이가 무려 세 명이나 됐다는 사실이다. 휴~ 세종대왕을 여성으로 착각하다니, 이건 말이 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