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9월 5일 - 한별이의 의문

늙은어린왕자 2011. 9. 5. 19:17

9월 5일 월요일 맑은 하늘 가끔 구름
한별이의 의문

 

  읽기 시간에 정진숙 시인이 쓴 ‘걱정 마’라는 동시를 읽었다. 다른 나라에서 시집 온 사람들을 걱정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는 마음이 느껴지는 시다. 이 시를 분위기를 살려 읽는 게 공부할 문제다.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아이들과 우리나라에 사는 외국인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들은 주로 5일 장날이나 큰 마트에서 외국인을 본 경험을 이야기하고 나는 고향에 시집 온 베트남 신부 이야기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외국인이 왜 우리나라에 시집오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는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농촌 사정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저 쪽 나라의 경제 사정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또 우리나라의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남아도는 남자 이야기도 했다.
  이야기를 마칠 즈음 골똘히 이야기를 듣던 한별이가 물었다.
  “여자들이 우리나라로 시집오면 그 나라 남자들은 어떻게 장가가요?”
  질문이 예리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문제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우리나라 노총각들 걱정만 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그 나라도 다른 나라에서 데려오면 되요.”
  “아프리카에서 데려오면 되잖아요.”
  내가 쉬이 대답하지 못하자 아이들이 나름대로 해답을 내놓았다. 교실은 웃음바다가 됐다. 하지만 이건 그냥 웃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게. 그 나라 사람들도 큰일이네. 근데 그 나라들은 우리 보다 자식을 굉장히 많이 낳아. 우리는 한두 명이지만 그 쪽은 대개 네댓 명이나 그 이상도 많거든.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좀 시집보내도 문제없지 않을까?”
  궁색한 대답이었다. 아무리 자식을 많이 낳아도 그 나라에서만 여자를 많이 낳는건 아니지 않은가. 갑자기 머릿속에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그 나라 남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불쑥 들었다.
  복잡한 내 머릿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질문도 잊은 듯 시계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벌써 쉬는 시간이 된 것이다. ‘분위기를 느끼며’ 함께 글을 읽고는 수업을 마쳤다.  
 


걱정 마
정진숙

 

눈이 크고 얼굴이 까만
나영이 엄마는
필리핀 사람이고,

 

알림장 못 읽는
준희 엄마는
베트남에서 왔고,

 

김치 못 먹어 쩔쩔매는
영호 아저씨 각시는
몽골에서 시집 와

 

길에서 마주쳐도
시장에서 만나도
말이 안 통해
그냥 웃고만 지나간다.

 

이러다가
우리 동네 사람들 속에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그래도 할머닌
걱정 말래.

 

아까시나무도
달맞이꽃도
개망초도
다 다른
먼 곳에서 왔지만
해마다 어울려 꽃피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