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6일 - 선거와 아이들
9월 6일 화요일 바람이 시원하다.
선거와 아이들
“지금부터 2학기 봉사위원 선거가 있겠습니다. 후보에 나올 사람은 일어서 주십시오.”
3교시 체육시간, 1학기 봉사위원이었던 지상이의 진행으로 2학기 봉사위원 선거가 시작됐다. 역시 1학기에 봉사위원을 했던 현수도 후보 이름을 칠판에 쓰며 진행을 도왔다.
“제가 봉사위원이 되면 우리 반을 깨끗한 반으로 만들겠습니다.”
“저는 시끄러운 반을 없애고 조용한 반으로 만들겠습니다.”
후보들은 나름대로 준비한 공약을 내세우며 지지를 부탁했다. 지켜보는 아이들 표정도 진지했다. 누구에게 한 표를 던질까 고민하며 또록또록한 눈망울을 깜빡였다.
선거는 물 흐르듯 부드럽게 진행됐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지상이의 진행솜씨였다. 부드러운 목소리와 재치 있는 말재주로 아이들을 사로잡았다. 한 후보가 짧게 공약을 말하고 들어가자
“1분이 안 됐어요. 말을 잘할수록 표를 많이 받습니다.”
하고 충고를 하기도 하고, 후보가 늦게 나올 때는
“빨리 안 나오면 탈락입니다.”
하며 은근히 압박도 했다. 실제로 탈락시킬 권한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런 지상이를 보며 아이들은 만점이라고 칭찬하기도 하고 크림스파게티처럼 느끼하고 어설프다며 샘내기도 했다. 내가 보기엔 거의 완벽했다.
개표는 1학기 봉사위원이었던 미경이, 희지, 현정이가 맡아서 진행했다. 서로 역할을 나눠 표 골라주고 이름 부르고 칠판에 기록하는 일을 척척 해나갔다.
오늘 선거에서 내가 한 일이라곤 칠판에 행사 이름 쓰고 투표용지 인쇄해준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여행 온 사람 마냥 사진기 들고 다니며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만 했다.
선거에 익숙한 이런 아이들을 보며 새삼 내 어릴 적 모습을 떠올렸다. 전교생 100명 남짓의 작은 시골 초등학교(그 때는 초등학교)에 다녔던 나는 5학년 때까지 선거를 해본 적이 없었다. 반장은 내가 도맡아 했지만 한 번도 선거로 뽑히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정해주는 대로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6학년 때 처음으로 선거를 하게 되었는데 나는 반장선거와 전교회장 선거에 모두 나갔다. 물론 선생님한테 떠밀려서 나가게 됐다. 선거 결과 반장, 회장이 모두 여학생이 됐고 나는 부반장과 부회장에 당선되었다.
우스운 것은 소견발표 할 때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한 마디도 못하고 서 있었는데 후보가 많이 없으니 저절로 당선되었던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도 그렇고 요즘 아이들이 선거에 출마해서 당당히 자기 생각을 밝히는 걸 보면 그 때 내 모습은 부끄럽기까지 하다. 아무리 선거를 처음 치러서 뭘 몰랐다고 하지만 말이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여러 진행자 덕분에 2학기 봉사위원 선거가 잘 끝났다. 당선된 아이들에게는 축하를, 낙선된 아이들에게는 위로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