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9월 19일 - 피자와 김치전

늙은어린왕자 2011. 9. 20. 23:53

9월 19일 월요일 가을바람이 서늘하다.
피자와 김치전

 

 

  “0.7과 0.5를 더하면 피자가 한 판이 넘네?”
  수학 2단원 소수의 덧셈 첫 시간, 여느 때처럼 피자를 예로 들며 문제를 풀어나갔다.
  “여긴 일곱 조각, 이건 다섯 조각, 그러니까 모두 열두 조각. 그러면 어떻게 되나?”
  “한 판 하고 두 조각입니다.”
  “일점이(1.2)요.”
  아이들은 막힘없이 답했다. 2단원 시작할 때 소수 계산이 머리 아프다며  엄살 피울 때와는 전혀 딴 판이었다.
  “그렇지. 잘 했어. 근데 말야.”
  수업이 너무 쉽게 간 탓일까? 문득 엉뚱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날마다 피자만 얘기하니까 좀 지겹다. 뭐 다른 거 없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난번에 분수를 공부할 때도 그렇고 지금 하는 소수 공부도 그렇고 늘 피자만 예로 들었다. 피자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긴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음식도 자꾸 먹으면 질리기 마련인데 말이다. 아이들 표정을 보니 이미 질릴 대로 질렸고 관심은커녕 그저 숫자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파전 어때? 아니면 부추전?”
  지난 추석 때 먹었던 전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그제야 아이들도 말뜻을 알아차렸다.
  “김치전요.”
  “맞아요. 김치전 먹고 싶어요.”
  “김치! 김치! 김치!”
  시현이 의견에 아이들이 김치를 합창했다. 무덤덤하던 교실에 새콤하고 고소한 김치전 내음이 퍼져나갔다.
  이렇게 좋은 우리 음식이 많은데 왜 나는 여태껏 피자만 고집했을까? 피자와 김치전이라. 동그란 모양에 알록달록 때깔도 좋고 소리내기도 피자가 쉬워 보인다. 그렇다고 맛까지 뛰어난 건 아닌 모양이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말이다. 얘들이 음식을 제대로 안다.
  “불고기전 어때요?”
  뒤늦게 지상이가 의견을 내봤지만 김치전의 기세를 꺾지는 못했다.
  그래, 여태껏 무심하게 피자만 들이댄 걸 반성하고 이제부터는 맛있는 우리 음식도 칠판(철판 아님) 위에 좀 올려야겠다. 아니, 아이들은 먹는 걸 좋아하니 어떤 음식이든 한 번씩 바꿔가며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