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9월 20일 - 문제아 네 명

늙은어린왕자 2011. 9. 20. 23:54

9월 20일 화요일 먹구름이 가득하고 바람은 서늘하다.
문제아 네 명

 

 

  넷째 시간, 내일 있을 논술대회를 안내할 때부터 슬슬 시비가 일어났다.
  “질문 있습니다.”
  성윤이가 꿋꿋하게 손을 들어 질문 기회를 잡으려 했다.
  “질문 하지 마.”
  무슨 질문이 나올 지 뻔히 예상되는 장면에서 섣불리 기회를 주기 싫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여파가 미치기 때문이다. 나도 꿋꿋이 내일 행사에 관해 안내했다.
  “논술에는 자기주장이 들어가야 합니다. 주장에는 근거가 있어야 남들을 잘 설득하겠죠? 근거로는 자기 경험 또는 책이나 신문, 방송에서 본 자료가 좋습니다. 자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오늘 집에 가서 초등학생 휴대폰 사용 문제에 관해서 자료를 꼭 찾아보세요.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쉽겠지요?”
  성윤이는 설명이 끝나도록 우뚝 세운 팔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더니 허락도 없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거 모두 다 해야 하나요?”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질문이 나왔다.
  “전부 다 할 필요는 없잖아요?”
  “아, 논술 진짜 쓰기 싫은데. 희망하는 사람만 하면 안 돼요?”
  지상이와 시현이까지 가세했다. 여기서 물러섰다간 봇물 터지듯 질문이 쏟아질 것이다. 너도 나도 안 하면 안 되겠냐고 말이다.
  “이건 학교 행사야. 전부 다 해야 돼. 그리고 힘든 걸 싫어하면 나중에 뭐가 되겠니? 힘든 걸 이겨내는 사람한테 기회가 오지 편안하게 지낸 사람한테 무얼 믿고 맡기겠니?”
  이렇게 잔소리가 시작됐다. 앞으로 자기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려면 자기소개글 부터 잘 써야 한다는 둥, 면접 볼 때 어떤 사회문제에 관해 질문하면 자기 의견을 논리 있게 밝혀야 한다는 둥 그래서 주장을 밝히는 글을 써봐야 한다는 둥 잔소리가 10분 가까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나도 멍, 아이들도 멍한 상태가 되어서야 이야기가 끝났다. 물론 결론은 내가 원하는 쪽으로 매듭지었다.
  수업을 마치고 급식소에 갈 때 보니 논술 불만 삼형제가 맨 뒤에 쪼로니 서 있었다. 녀석들은 언제 불만이 있었냐는 듯 배식구에 갈 때까지 조잘거리는 입을 멈추지 않았다. 얄밉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서 배식하시는 분들과 영양선생님 들으라고 크게 이야기했다.
  “우리 반에서 제일 문제아들 세 명 왔습니다."
  배식구에서 음식을 주던 분들이 아이들 얼굴을 힐끗 보더니 개구쟁이들 왔냐는 듯 웃었다. 이 때 성윤이가 역시 들으라는 듯 크게 말했다.
  “아니죠. 문제아는 네 명이죠. 선생님까지.”
  배식구는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됐다.
  “맞다. 우째 저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노.”
  “내가 보기엔 선생님이 더 문제아다.”
  영양선생님과 조리사님은 말을 하면서도 배를 잡고 웃었다. 성윤이 한 방에 완전히 케이오우(KO) 되는 느낌이 들었다.
  맞다. 불만 삼형제가 우리 반에서 문제아라면 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분명히 문제아다. 게다가 오늘은 논술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준비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으니 문제 행동 하나 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