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6일 - 밥 먹을 자격
9월 26일 월요일 맑은 가을 하늘
밥 먹을 자격
도덕 시간에 ‘생활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실천 방법’을 찾아보았다. 학교에서는 누구나 한 가지씩 맡은 일을 하므로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럼 집에서는 어떤 실천을 하고 있을까?
“신발장 정리해요.”
“누나랑 음식물 쓰레기를 일주일씩 번갈아 버려요.”
“햄스터 돌봐요.”
“책 챙기기 해요.”
여러 가지 대답이 나왔다. 원래 자기 일이든 가족 공동 일이든 뭐라도 하나씩 한다니까 기특해보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일이 없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야기를 끌고 가려고 우리 집 예를 들었다.
“우리 집에는 3학년과 5학년 딸이 있는데 요즘 일주일에 한 번씩 집안일을 합니다. 큰 아이는 설거지를 하고 작은 아이는 청소를 하죠. 이불 개고 자기 방 치우는 건 당연히 하고.”
또래 아이 예를 들어주자 아이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만약 해야 할 일을 안 하면 이렇게 말해요. ‘너희들은 밥 먹을 자격 없다!’고.”
“설마?”
“진짜 밥 안 줘요?”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치 우리 집 식구가 아닌 것이 다행스럽다는 듯 숨을 고르는 아이도 있었다.
“열 살이나 열두 살이면 다 컸는데 식구로서 할 일을 안 하면 당연히 밥 먹을 자격 없지요. 여러분도 열한 살이면 집안일 한 가지씩 하고 밥값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고민에 빠진 듯했다.
“저는 일요일마다 거실을 치워요.”
“월요일마다 밀대로 거실 닦아요.”
유진이와 수지가 아까는 미처 생각해내지 못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러자 뭔가 밥값 하던 일이 없나 고민하던 수민이가 물었다.
“수저 놓기는 안 돼요?”
수민이는 밥 때마다 수저를 놓는다고 덧붙였다.
“야, 그게 일이가?”
“나도 한다. 그거는.”
아이들 반응으로 봐선 수민이는 아무래도 다른 일로 밥값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선생님, 저는요. 이불개요.”
처음에 햄스터를 돌본다고 했다가 아이들로부터 ‘니 햄스터니까 당연히 니가 돌봐야지.’라는 핀잔을 받은 (김)현민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자 아이들이 웃었다. 내가 물었다.
“이불 개는 거 당연한 거 아냐?”
“아니요, 제 이불 말고요. 엄마 아빠가 일찍 일 나가시잖아요. 그럼 제가 엄마 아빠 이불 개요.”
듣고 보니 그렇구나 싶었다. 떡집을 운영하시는 부모님이 새벽에 일 나가신다는 얘기는 나도 예전에 들었다.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돈 받고 일하는데요.”
누나랑 교대로 음식물 쓰레기 버린다던 현수가 ‘비리’를 스스로 알려오자 교실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아직 일이 없는 사람은 집에서 할 일을 한 가지씩 정해오도록 숙제를 내고 수업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