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10월 18일 - 현수의 눈물

늙은어린왕자 2011. 10. 19. 23:59

10월 18일 화요일 맑음
현수의 눈물

 

 

  어제 있었던 일이다. 오늘 치르는 중간고사를 앞두고 늘 해왔듯이 4~5교시에 모둠 대항 학습스피드퀴즈대회를 열었다. 퀴즈에 쓸 문제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의 시험 범위 내에서 고른 70개 낱말이다. 우승한다고 해서 별다른 보상이 없는데도 아이들은 모둠의 명예를 걸고 즐겁게 참여했다.
  추첨한 순서대로 일곱 모둠이 한 번씩 돌아가며 퀴즈를 풀었을 때 모둠별로 30점에서 80점까지 고르게 점수가 나뉘었다. 이 점수와 두 번째 게임에서 얻은 점수를 합해서 순위를 정한다. 아이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게임은 낱말 70개를 인쇄하여 각 모둠별로 나눠주고 어떻게 설명할 지 작전 짜는 시간을 준 뒤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1차 때는 없던 100점도 여럿 나오고 문제 푸는 시간도 많이 단축됐다. 몇 모둠이 ‘끊어진 지층’을 ‘지층이 끊어진 것’으로, ‘마주나기 잎’은 ‘잎이 마주난 것’으로 거의 정답을 알려주듯 설명하며 조금 시비가 있었지만 애교로 봐주고 넘어갔다.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을 무렵 7모둠이 나왔다. 7모둠은 1차 때 점수가 좋지 않았는데 눈빛을 보니 단단히 준비하고 나온 듯 했다. 설명은 현수가 맡았다.
  아니나 다를까 7모둠은 서너 문제를 가볍게 맞혔다. 속도도 빨랐다. 40초 안팎이면 10문제를 모두 풀 듯 보였다. 다음 문제는 ‘등대’였다.
  “바다에 있는 거.”
  현수는 작전(?)대로 자신 있게 설명했다. 같은 모둠인 (김)현민이와 현정이, 세진이도 자신 있게 대답했다.
  “염전!”
  “풍어제!”
  낱말 70개 가운데 바다와 관련 있는 낱말이 세 개 있었는데 묘하게도 ‘등대’ 빼고는 다 나왔다. 원하는 낱말 대신 엉뚱한 답이 나오자 현수가 당황한 듯 소리쳤다.
  “아니, 그거 말고. 아아!”
  현수는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문제를 푸는 아이들은 그것 말고 또 뭐가 있냐며 수군거렸다.
  “다시 설명해봐.”
  “바다에 있는 거 그거 말이야. 아아아!”
  현민이가 설명을 재촉해도 현수는 몸을 이리저리 흔들며 답답해하기만 했다. 아이들은 이런 현수를 보고 웃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똑딱똑딱 흘러갔다.
  “선생님, 현수 울어요.”
  현수가 사정없이 몸을 흔들 때 보니 정말 눈에 눈물을 짓고 있었다.
  “현수야, 그러지 말고 또박또박 설명해봐라.”
  내가 타이르자 현수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입을 열었다.
  “바다에서 그거, 불빛 비추는 거 말이야!”
  이 때 시간이 다 됐다는 신호가 나왔다. 결국 ‘등대’에 걸려 문제를 다 풀지 못하자 현수는 울먹이며 자리로 들어갔다.
  “내가 불빛 비추는 거라고 했잖아. 어어엉.”
  얼마나 분했던지 현수는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책상을 주먹으로 치며 소리쳐 울었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더 웃었다.
  현수가 바둑을 두거나 축구를 할 때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든 진지하게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늘처럼 쉽게 흥분하는 건 처음 보았다. 답답해했던 현수한테는 미안하지만 나와 아이들은 현수가 웃음을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