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10월 25일 - 현장학습 버스 자리

늙은어린왕자 2011. 11. 1. 10:03

10월 25일 화요일 맑고 쌀쌀하다.
현장학습 버스 자리

 

  점심시간에 함께 밥 먹던 아이들과 금요일에 있을 현장학습에 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눴다. 가는 곳의 이름이 뭔지, 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멀미를 어떻게 대비할건지 이야기 거리가 많았다. 아이들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것은 역시 버스 자리 문제였다. 민지와 경희가 물었다.
  “현장학습 때 자리 어떻게 하실 거예요?”
  “우리 다 정해놨어요.”
  둘의 마음은 이미 버스를 타고 있는 듯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설마 짝지끼리 앉는 건 아니겠죠?”
  옆에 앉은 민서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선수를 쳤다. 이경이도 은근히 원하는 사람끼리 앉기를 바라는 눈치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다.
  “당연히 짝지끼리 앉아야지.”
  아이들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이번 달에 남녀로 짝지를 앉았기 때문이다.
  “안돼요.”
  “멀미가 더 심해질 거예요.”
  “그럼 성윤이랑 같이 앉아야 된단 말이에요. 지옥이에요 지옥.”
  짝인 성윤이와 날마다 티격태격 하는 민서는 특히 거부감이 심했다. 
  “남녀 짝으로 가면 얼마나 좋아? 여행이 아름답지 않겠니? 만약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앉으려면 조건이 있어. 편식도 안 하고 수업 시간에도 조용히 하면 남남여여로 해주지.”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을까? 아이들은 찬물을 끼얹은 듯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나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능청스럽게 밥을 먹었다.
  내일부터 6학년들이 2박 3일 동안 서울로 수학여행을 간다. 6학년 선생님들의 말을 빌리면 아이들이 한 달 전부터 들떠 있어서 수업이 잘 안 된다고 한다. 가까운 곳에 현장학습 하루 가는 데도 벌써부터 아우성인데 먼 곳에 2박 3일로 가는 여행이라면 오죽하겠나 싶었다.
  아이들은 교실을 벗어나는 것을 좋아하고 학교를 벗어나면 행복해한다. 금요일 현장학습 때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 원하는 대로 자리를 앉혀줄 참이다. 여태껏 한 번도 남녀로 짝을 지어 간 적이 없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너무 떨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