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11월 3일 - 남녀축구

늙은어린왕자 2011. 11. 12. 10:57

11월 3일 목요일 덥다
남녀축구

 

  첫째 시간은 체육이었다. 아이들은 일찌감치 운동장으로 나가고 나는 교실에서 체육 교과서를 들여다보며 고민에 빠져있었다. 지난 시간까지 했던 농구가 끝나고 하키를 해야 되는데 하키 도구가 학교에 없기 때문이었다. 담당선생님은 곧 하키 도구가 들어온다고 했지만 자꾸 늦어지는 걸 보니 무슨 사정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할지 한참 동안 고민한 끝에 오늘은 편하게 경기를 하면서 즐기기로 했다. 종목은 축구, 팀은 남녀로 갈라서 경기를 벌이기로 했다. 우리 반은 남자가 11명, 여자가 16명이어서 여학생들이 실력은 달려도 숫자로는 해볼 만하다. 그래도 실력차는 어쩔 수 없으니 나와 체육강사님이 여학생 편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균형이 맞을 것 같았다.
  계획을 이야기했더니 아이들도 대찬성이었다. 축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여학생들도 나와 체육강사님이 들어간다니까 좋아하며 받아들였다.
  남학생들은 평소에 하던 대로 각각 위치를 잡았다. 여학생들은 수비-가운데-공격 숫자를 6-5-5로 나눴다. 그리고 체육강사님이 문지기를, 나는 가운데에서 수비와 공격을 맡기로 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거의 남학생들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특히 날쌘 수민이와 세진이, 은준이 삼각편대의 공격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박지성-루니-호날두를 떠올릴 만큼 날카로웠다. 현수와 지상이의 침투도 매서웠다. 아마 체육강사님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공격을 몸으로 막지 않았으면 골을 무더기로 먹었을 것이다.
  여학생들도 보통 때와 달리 열심히 뛰어주었지만 예상대로 실력차가 컸다. 그래도 유진이와 경은이, 성정이가 활약한 수비는 일품이었다. 남학생들의 공격이 번번이 수비에게 막혔다. 공격에서는 민지와 진하가 돋보였다. 민지는 공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다. 특히 몸을 360도 돌리며 공을 빼돌리는 기술은 보통 남학생들도 잘 하지 못하는 건데 쉽게 해서 놀랐다. 진하는 공을 따라 뛰는 속도가 빨랐다. 
  치열한 공방전 끝에 경기는 2대 2로 비겼다. 물론 여학생 점수는 내가 한 골, 체육강사님이 한 골 넣은 것이다. 남학생들은 뛰는 사람 숫자가 11대 18로 불리했는데도 매서운 공격력을 살려 두 골이나 넣었다. 남학생들은 더 넣지 못한 게 억울하겠지만 어른 둘의 방어를 뚫고 넣었으니 잘한 셈이다.
  오랜만에 이렇게 모두 함께 축구를 해보니 재미가 있었다. 다음에 또 시간이 되면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문제는 체력! 아무리 뛰어도 지치지 않는 아이들과 달리 나는 체력이 많이 달렸다. 사실 연속으로는 5분도 뛰기 힘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뛰려면 체력을 열심히 길러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덧붙임]
  체육담당 선생님 말로는 열흘 안에 하키 도구가 온답니다. 그 동안 우리는 집에서 만든 하키채로 경기를 하고 있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