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 민경이
11월 4일 금요일 여름이 다시 오려나?
민경이
“선생님, 어제 민경이 옷 벗었어요. 아세요?”
아침에 교실에 갔더니 난데없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들리는 걸로 봐서 헛소문은 아닌 것 같았다.
몇몇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소문은 사실이었다. 어제 오후에 민경이와 몇몇 아이들이 모여 학예회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민경이가 참여하지 않고 이야기만 한다며 한 아이가 벌칙으로 옷을 벗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민경이는 별다른 저항 없이 겉옷을 벗고는 점퍼를 덮어 몸을 가렸다고 한다.
학예회 연습을 같이 했던 아이들을 연구실로 데리고 가서 사실을 좀 더 알아보았다. 옷을 벗으라고 한 아이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실제로 민경이가 하는지 테스트 하는 마음으로 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민경이가 진짜로 옷을 벗어서 놀랐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테스트’ 하듯 했다는 걸 문제 삼았다. 상대가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테스트’ 할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옆에서 구경한 아이들도 똑같은 잘못이 있다고 분명히 일러주었다. 아이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민경이는 따로 불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경이는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앞으로 누가 뭘 시켜도 들어주지 않아도 될 일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타일렀다. 민경이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일은 잘 마무리된 것 같은데 사실 걱정이 앞선다. 다른 아이들의 제안이나 부탁을 거절 못하는 민경이의 성품 때문이다. 민경이는 성격이 온순해서 남들 말에 잘 휩쓸린다. 그러다 보니 민경이를 쉽게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다.
물론 걱정만 있는 건 아니다. 민경이의 이런 성품이 오히려 장점이 될 때도 있다. 힘든 부탁도 싫은 소리 하지 않고 들어주기 때문에 아이들은 대부분 민경이를 좋아한다. 민경이가 2학기 봉사위원 선거에서 무난하게 당선된 것도 아이들이 민경이의 장점을 봐주었기 때문이다.
오늘 야단맞은 아이들도 평소 때는 민경이와 잘 노는 아이들이다. 가끔 이들끼리 편이 갈리면 서로 민경이를 데려가려고 싸울 만큼 민경이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오히려 관심이 지나쳐서 문제일 때가 많다.
앞으로 민경이가 어제 같은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당당해져야 한다. 그리고 친구들도 민경이가 여리다고 해서 절대로 함부로 대하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쭉 지켜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