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1 교실일기

11월 11일 - 희지의 밀레니엄(?) 선물

늙은어린왕자 2011. 11. 12. 11:15

11월 11일 금요일 구름 조금
희지의 밀레니엄(?) 선물

 

  6교시, 아이들은 미술을 하느라 쑥대밭이 된 교실을 정리하고 학예회 연습을 잠깐 한 뒤 제 갈 길을 갔다. 방과 후 수업을 하는 몇몇 아이들 빼고 다 교실을 빠져나갔을 무렵 희지가 다가와서 수줍게 손을 내밀었다. 희지가 내민 것은 짙은 파란색 포장지로 포장한 작은 선물이었다.
  “이게 뭐야?”
  희지는 살짝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교실에 남아 있는 아이들 눈길을 의식하는 듯 했다.
  선물을 살펴보니 길쭉한 모양새가 언뜻 보기에 ‘빼빼로’로 보였다. 손으로 만져 봐도 길고 딱딱한 게 ‘빼빼로’가 확실했다.
  어제 ‘빼빼로’를 가져오지 말라고 엄포를 단단히 놓았는데 이런 선물을 받아도 될까? 아무리 그래도 학교 마칠 때까지 참고 있다가 내민 선물을 거부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잠깐 이런 생각을 하다가 손부끄럽게 서 있는 희지가 무안할까봐 일단 받았다. 그리고 남아있는 아이들 눈을 피해서 얼른 전화기 옆에 놓았다.
  교실에 남아있던 아이들이 뭔 일인가 싶어 힐끗힐끗 고개를 돌렸다. 나는 죄의식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만약 물어보면 오늘은 안 먹는다고 말해야지 하는 계산도 해두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희지 몸에 가려서 선물을 못 봤는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사실 아까부터 희지가 집에 가지 않고 내 눈치, 주위 아이들 눈치를 살피던 까닭이 궁금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가보다 생각했는데 이제야 의문이 시원하게 풀렸다.
  목표(?)를 이룬 준 희지는 빠른 걸음으로 교실 문을 나섰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희지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고 있는 희지한테 살짝 물었다.
  “희지야, 저거 빼빼로 맞제?”
  이제 안전지대로 나왔다고 생각한 건지 희지가 입을 열었다.
  “풀어보시면 알아요.”
  희지는 이렇게 답하고는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희지의 뜨뜻미지근한 대답을 듣고 나니 선물이 더욱 궁금해졌다. 그래서 얼른 교실로 들어가 선물을 풀었다.
  포장지 속에서 빼빼로 대신 엄청난 선물이 나왔다. 속에는 연필 두 자루와 나무젓가락 두 개가 들어있었다. 일(1)자가 여섯 개나 겹치는 날, 천 년에 한 번 밖에 없다는 오늘을 나타내는 ‘밀레니엄’ 선물이었다.
  연필 두 자루와 젓가락 두 개를 포장지 위에 나란히 놓고 보니 111111이 완벽하게 만들어졌다. 재미있어서 휴대폰으로 ‘인증샷’도 찍었다. 그리고 몇몇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냈다. 친구들은 ‘연필이 빼빼로를 대신할 수 있구나!’ 하며 놀라워했다.
  이렇게 멋진 선물인 줄도 모르고 ‘빼빼로’로 착각하며 머리를 굴렸던 내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재미와 웃음을 준 희지가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