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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전화로 세상과 소통하기

늙은어린왕자 2014. 3. 29. 21:47

똑똑전화로 세상과 소통하기

 

먼저 '똑똑()전화'의 뜻을 밝혀야겠다. '똑똑()전화'는 요즘 많이 쓰는 '스마트폰'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립국어원에서 운영하는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 누리집에서 누리꾼의 투표로 정했다고 한다. 가운데의 ''을 빼고 '똑똑전화'로 부르기도 한단다. 손바닥 보다 작은 이 기계 하나만 있으면 인터넷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정보도 찾아볼 수 있고 사진이나 문서도 주고받을 수 있으며 원하는 일이라면 거의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니 똑똑이라는 말이 어울릴만하다. 아직 입에 익지는 않았지만 쓰다 보면 익혀지리라 보고 이제부터 스마트폰을 똑똑전화라 부르려고 한다.

내가 처음 똑똑전화를 쓰기 시작한 게 201010월 무렵이니 벌써 2년이 조금 넘었다. 여러 가지 쓰임이 많아서 좋긴 했지만 처음에는 요금이 많이 나와서 마음고생도 했다. 그러나 열린장터(앱스토어)에서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받아 써보기도 하고, 간단한 기록이나 글쓰기도 하면서 '본전생각'이 많이 누그러졌다. 무엇보다 똑똑전화가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누리소통망(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댓글나눔터(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트위터)에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부터다. 간단하게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언제 어디서나 글이든 사진이든 생각과 정보를 여러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여러 댓글나눔터 가운데 나는 '페이스북'을 가장 많이 쓴다. 살아가며 겪는 일은 모두 나누는 재료가 된다. 글만 쓸 때도 있고 눈길 가는 장면은 사진을 찍어서 글과 함께 올리기도 한다. 그러면 친구 맺은 사람들이 보고 이러쿵저러쿵 댓글을 달기도 하고 그냥 엄지손가락을 들어주고 가기도 한다. 물론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한다. 이렇게 하며 그때그때 사람들과 소통한다.

어디에 발표하는 것도 아니고 기간이나 양을 정해서 쓰는 것도 아니라서 전혀 부담이 없다는 게 페이스북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렇게 쓴 것을 글이라거나 글쓰기 했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지만 연필과 종이를 대신할 때가 많으니 최대한 정성껏 쓰려고 노력한다.

그 동안 올린 글 가운데 이런 느낌으로 쓴 글을 몇 편 골라보았다. 이해를 도우려고 글마다 설명을 조금 덧붙였다. 최근에 썼던 글부터 소개한다.

 

(1) 즐겨보던 드라마 '메이퀸'이 끝났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장도현 회장이 자살하고, 그를 몰아낸 '젊은 피' 혜주, 창희, 강산의 '해피엔딩'이다. 불행하고 어두운 시대를 살아온 장도현 회장은 이 땅의 50~60세대를 떠올리게 한다. 마찬가지로 기술과 정정당당함으로 똘똘 뭉친 세 젊은이들은 20~30을 연상시킨다.

사실 지금 대한민국은 불행한 시대를 겪었던 기성세대가 (경제든 민주화든) 열정 하나만으로 일구어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 존재하는 어두운 그림자(예컨대 불의와 양극화, 분단과 이념대결)를 걷어내고 선진국으로 향하려면 기술과 창의로 똘똘 뭉친 젊은 피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 눌려 모두 기가 죽어있다. 젊은이들을 경쟁 속으로만 몰아넣고 기죽게 해서는 미래가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강산이가 혜주에게 '우리 아이 많이 낳자'고 할 때 차라리 절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도 마음대로 못 낳는 이 땅의 젊은이들이 누군가. 모두가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 아닌가. 그래서 더욱 뼈아프게 느껴졌다.

자살 장면만 빼면 이 드라마는 참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기성세대의 열정과 젊은 세대의 창의가 조화되는 세상, 언제쯤 가능할까? 젊은 피들 힘내라. (12. 23)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상실감에 젖어있을 무렵 드라마가 끝났다. 드라마 내용과 선거를 직접 연관시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50-60 세대가 지지한 후보가 20-30 세대가 지지한 후보를 이겼다는 뉴스가 나오는 마당에 이 드라마를 비롯한 세상의 감성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이 강한 글에는 댓글 보다는 엄지손가락만 많이 올라온다.

 

 

(2) 출근길에 보니 나이 드신 경비아저씨의 주름이 유난히 활짝 펴져있다. 그는 누구를 지지했을까. 방송뉴스를 끊고 살았던 지난 5, 다시 이런 세월이 반복되겠거니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러나 어쩌겠노. 내 할 일 열심히 하며 사는 수밖에. ! 학교에 오니 교장선생님 얼굴도 싱글벙글이다. 어쨌든 누군가는 행복한 날이다. (12. 20)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해서 삶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불통으로 꽉 막힌 현 정부가 너무 싫어서 교체되길 바랐다. 문 후보가 적임자로 보였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선거 이튿날 축 처진 내 마음과 달리 박 후보를 지지했을 법한 사람들의 얼굴은 밝아보였다. 결과가 달랐으면 표정도 달랐겠지?

 

(3) 정치에 관한 소신이 있지만 남에게 이렇네 저렇네 잘 이야기하지 않는 편인데 오늘 신문을 보니 할 말은 해야겠다. 어제 처음으로 TV토론 재미있게 잘 봤는데, 오늘 아침 학교로 배달된 동아일보에 ", 전교조와 손잡아" 이걸 1면 머리에 올려놓았다. 수많은 토론 주제 중에 눈에 띄는 게 이것밖에 없던가? 선거를 색깔론으로 몰겠다는 건가. 그리고 전교조가 어떻다는 건가. 전교조가 뿔난 도깨비 단체라도 된단 말인가? 평조합원으로써 분노가 느껴진다. 박후보에게 일말의 동정심이 있었는데 신문이 하는 짓을 보니 그것마저 사라진다. 박후보가 이런 검은 세력의 들러리라는 확신이 팍 밀려온다. (12. 17)

 

*대통령 후보자들의 방송토론이 세 번 있었는데 나는 마지막편만 보았다. 지지여부를 떠나 두 후보가 공방을 주고받는 모습이 좋았다. 예민한 문제를 두고 설전을 벌이기도 하고 여러 가지 정책에 관해 각자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보수 신문이 후보자 토론을 보도한답시고 이런 장난을 친 것이다. 정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신문사가 보기에 전날 토론 주제 가운데 후보의 어떤 정책이 현실과 맞지 않다든지, 많은 사람들에게 이롭지 않다든지 최소한 이런 제목을 뽑아서 독자가 판단하도록 해야 하지 않나? 그럴만한 주제가 없었으면 아예 작게 다루어서 뒤로 빼면 될 일이지 주제와 관련도 없는 내용을 1면 머리기사로 대문짝만하게 써놓은 것을 보고 화가 치밀었다. 저들과 무슨 대화를 한단 말인가.

 

(4) "~눈이다!"

겨우내 눈 구경 한 번 하기 힘든 김해아이들. 어제 어느 선생님이 천안 갔다가 눈을 뒤집어쓰고 왔다. 등교하던 아이들이 차 위에 얹힌 눈을 만지며 즐거워한다. 다른 데는 함박눈이 와서 눈사람도 만들고 도로가 빙판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여긴 안 와도 너무 안 온다. 부디 이 아이들한테 이 눈이 처음이자 마지막 눈이 되지 않기를……. (12. 6)

 

*지난해 겨울에는 김해에 눈이 딱 한 번 왔다. 그것도 바닥에 살짝 깔리다가 그쳤다. 눈 내린다고 딸과 밖에 나갔다가 기분만 내고 들어 왔던 생각이 난다. 그 만큼 이 지역은 눈이 귀하다.

아이들의 소원을 하늘이 들어주었을까? 이 날 이후 김해에 큰 눈이 두 번 왔다. 눈이 내리면 강아지하고 아이들이 제일 좋아한다는데 올 겨울은 김해 아이들과 강아지들에게 남부럽지 않은 겨울이 될 것 같다.

 

(5) 내가 보는 일간신문 113일자 토요판은 24면 중 기업(상품)광고가 달랑 세 개다. 1면부터 6면까지는 기사만 나오다가 7면에서야 첫 광고가 등장한다. 광고만 잔뜩 있고 기사는 양념처럼 들어가 있는 부자신문들 보다 읽을거리는 많지만 좋은 기사를 생산하려면 결국 돈이 필요할 텐데 보기가 참 안쓰럽다. (11. 5)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이 신문을 말하는지 금방 눈치 챌 것이다. 이 날은 마치 공익광고만 몇 개 있는 대학신문을 보는 듯 지면이 온통 기사로 채워져 있었다. 신문사 사정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 이 회사에서 내는 신문과 주간지를 모두 받아보고 있는데 새 해부터는 주간지는 빼고 월간지를 신청해 놓았다. 이미 비슷한 사정을 가진 다른 주간지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쯤이면 이들의 어깨가 가벼워질까?

 

(6) "선생님, 재현이가 슈퍼스타케이에 나온 거 아십니까?"

12년 전 우리 반 한 어머니와 통화하던 중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케이팝은 빼놓지 않고 봤는데 '슈스케'는 안 보니 알 수 있나.

"톱 텐에는 들어갔는데 아깝게 떨어졌다 아입니꺼."

미리 알았더라면 응원이라도 했을 텐데 아쉬웠다.

집에 와서 슈스케를 즐겨보는 딸들에게 물어보니 '잘생긴' 재현이를 잘 알고 있었다. DDRPUMP를 귀신같이 하였고, 연예인이 되어 여의도 SM빌딩에 연습실을 두겠다던 왕자병 소년 배재현, 꼭 성공해라. (11.11)

 

*나중에 이 아이, 아니 이 청년이 '톱 세븐'까지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연예인이 특별히 대단한 건 아니지만 재현이가 어릴 때부터 이루고 싶은 꿈이었으니 꼭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그 뒤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벌이는 경연에 초대되어 한 번씩 나오는 걸 보니 TV에 한 번도 나오지 못한 나 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7) "선생님 화가세요?"

"~미대출신!"

수업시간에 여러 도구들 그림을 칠판에 직접 그렸더니 아이들 반응이 뜨겁다. 미술 전공자가 보면 웃겠지만 말이다. 이 수업을 세 학급 연속 하다 보니 그리고 지우기를 세 번 반복했는데, 과학실무 선생님이 지우기 아깝다고 격려(!)해서 사진도 한 장 남겼다. 평소에도 수업 중에 늘 그림을 그려서 이야기하곤 하는데, 잘 그리든 못 그리든 TV영상보다는 확실히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방법인 것 같다. 아날로그 방식이 보다 인간의 감성과 가깝다는 뜻이겠지.(11. 2)

 

*6학년 과학 시간에 지레의 원리가 들어있는 여러 도구들을 칠판에 그렸을 때 아이들이 보인 반응을 보고 흥분하여 올린 글이다. 이 날은 유달리 그림이 잘 됐다. 그렇다고 날마다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다. 컴퓨터로 사진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판단되면 상황에 맞게 바꾸어서 한다. 하지만 컴퓨터 보다는 그림이 에너지 소비도 적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방법임에는 틀림없다.

 

(8) 내일 있을 학부모공개수업 준비하러 학교에 왔더니 학교 앞 문화의 거리에서 작은 공연이 열리고 있다. 안치환의 귀뚜라미’, 노찾사의 일요일이 다가는 소리’,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그리운 노래들에 정신 팔려 공개수업준비는 뒷전이다. 노래 참 잘하는데 관객이 너무 적다. (10. 7)

 

*학교가 문화의 거리에 있다 보니 이런 풍경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런데 문화의 거리가 인적 드문 박물관 근처에 있어서 공연이 벌어져도 보는 사람들이 적다. 문화는 결국 사람들의 것인데 말이다. 덕분에 나는 공연을 잘 봤다. 전화기로 공연장면을 녹화해 두었는데 요즘도 가끔 꺼내 본다.

 

(9) "이정호 개XX. 어쩌라고?"

"뭐라카노 이놈이! 이리 안 올래?"

"안 갈란다. X발 개XX! , 신고해뿐다."

"오냐, 이놈. 신고해라. 얼른 교육청에 가서 신고하고 와!"

오늘 수업했던 6학년 한 아이와 나눴던 대화(?). 녀석은 화를 못 참고 소화기를 던지고 나는 녀석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뒷 장면은 상상에 맡긴다.) 결국 육박전 끝에 고함소리를 듣고 다가온 여러 선생님들 덕분에 상황은 진정됐다.

연휴가 너무 길었을까? 안 그래도 상태가 안 좋았는데 오늘은 녀석이 하루 종일 갈피를 못 잡고 헤맸다.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 이런 어려운 이름이 녀석의 상태를 정확하게 대변하는 말인지는 몰라도 그런 아이를 품 안으로 끌어들이지 못한 내 잘못도 크다.

연휴, ~ 너무 길면 안 돼. 흐트러져도 너~무 흐트러져.(10. 5)

 

*우리 학교에서 이 아이(양준혁)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준혁이를 법무부 소속 교정직 공무원으로 18년 근무한 경력이 있는 남자 선생님이 2년 째 담임하시는데 늘 힘겨워할 만큼 보통 아이가 아니다. 준혁이의 반 아이들도 스트레스를 엄청 받는다.

나는 올 해 과학전담이라서 일주일에 한 번은 준혁이를 본다.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한 학기 동안 큰 문제없이 잘 넘어갔는데 이 날은 서로 운수가 안 좋았는지 부딪히게 됐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준혁이와 부딪힌 일이 한 번 더 있다. 지난 92, 준혁이가 있는 6학년 1반으로 잠깐 보결수업을 들어갔다. 짧은 시간에 해볼 만한 걸 찾다가 초성퀴즈를 하게 됐는데, 학교소식으로 ㅎㅈㅅㄱㅅ(화장실공사), ㅂㅎㄱㄹㄱ(벽화그리기) 같은 문제도 내고, 선생님 이름으로 ㅈㄷㅇ(조대욱), ㅇㅈㅎ(이정호) 라는 문제도 내며 맞히기를 했다. 어려운 문제로는 ㅇㅈㅎㅇㄹㅇㅈ(이정호어린왕자)를 내기도 했다. 아무튼 이때까지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는데, 다음 퀴즈에서 일이 터졌다.

ㅇㅈㅎㅅㄱㅁㅊ

이정호어린왕자로 재미를 본 나는 내 어릴 적 별명을 섞어서 이정호사고뭉치를 문제로 냈는데 아이들이 쉬이 맞히지 못했다.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한 아이가 폭탄(!) 같은 답을 냈다.

'양준혁 사고뭉치'

순간 아이들의 긴장된 눈길이 준혁이에게로 쏠렸다. 그러자 이때까지 퀴즈에 잘 참여하던 준혁이가 책상을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X, 선생님은 나만 갖고 그래요?"

준혁이는 이렇게 소리치더니 교실을 뛰쳐나갔다.

"아냐, 준혁아. 이거 이정호사고뭉치란 뜻이야. 니가 사고뭉치란 말이 아냐. 내 고등학교 때 별명이 사고뭉치에서 '뭉치'였거든. 진짜야 동창들한테 물어봐줄까?"

준혁이는 내 설명을 들은 체 만 체 하며 나가버렸다. 복도에서 소리쳐도 준혁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잠시 뒤 준혁이가 담임선생님 손에 녀석이 붙들려 들어왔다. 선생님한테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주고 준혁이에는 절대 오해 말라고 말해두고 교실을 나왔다. 하지만 녀석은 끝내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준혁이와 내 이름의 첫 글자가 같아서 생긴 일이었다.

아무튼 105일 날 올린 글에 수십 명이 댓글을 달았다. 아마 내가 페이스북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리지 않았나 싶다. 걱정을 해준 사람도 있었고 도움말을 준 사람도 있었으며 함께 한숨 쉬는 선생님들도 많았다. 여러 가지 댓글을 읽고 도움 받은 덕분에 이 뒤로는 한 번도 준혁이와 싸우지 않았다.

 

(10) 4학년 과학수업 시간에 구리, , , , 나무, 플라스틱 같은 물질 이름을 써놓고 기준을 세워 분류하라고 했더니, 한 녀석이 모두 한 곳에 몰아놓고는 은만 떼어놓았다. 까닭인즉 은은 비싸고 다른 건 싸구려라나. 수업 핵심인 열전도야 어떻든 물질의 가치를 돈으로 볼 줄 아는 녀석 때문에 한바탕 웃었다. 명박스런 놈 같으니라고! (10. 18)

 

*아이들과 수업하다 보면 늘 이렇게 재미가 있다. 어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기발하게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웃다가도 결국은 올바른 답을 생각해낸다. 그래서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글의 좋은 재료가 된다.

 

(11) 며칠 전 달이 동그란 보름이었을 때 서양 사람들은 '블루문'이 나타났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들은 보름달이 뜨면 불길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하는데, 서양 시간으로 81일과 31, 두 번이나 보름달이 떴으니 8월 한 달이 얼마나 불안해했을까. 또 두 번째 보름달을 '블루문'이라고 이름 붙이고 매우 불안해한다 한다. 우리 시간으로는 91일과 30일이 보름인데, 서양식으로 생각하면 30일에 뜨는 추석 보름달이 블루문이 되는 셈이다. 서양 사람들에게 가장 으스스한 날이 우리에게는 가장 풍성하고 복된 날이라니.(9. 6)

 

*‘이 날의 천체사진이라는 이름으로 날마다 중요한 천체사진을 한 장씩 올리는 외국 누리집이 있다. 별을 좋아하다 보니 나는 취미삼아 이 곳에 들어가곤 한다. 어느 날 보름달 사진을 한 장 올려놓았기에 뭔가 싶어서 보니 블루문이라는 거다. 영어가 짧아서 해석은 잘 못하지만 대략 훑어보니 다른 보름달과 달리 색깔이 검다는 둥 표면에 푸른색이 끼어있다는 둥 호들갑을 떨어놓았다. 이걸 보고 외국인들이 보름달, 특히 블루문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었다. 가끔 이런 지식도 나눈다.

 

(12) 충격이다. 학교화단에서 발견한 새 집을 살펴보았더니 재료의 절반 가까이가 노끈, 보온용 비닐필름, 플라스틱 빗자루살이다. 요즘은 새들도 손쉬운 화학물질로 집을 짓는가? 아이들한테 새 집을 보여주고 왜 이럴까 물었더니 "튼튼하게 집을 지으려고요" 한다. (9. 3)

*아무리 재료가 부족한 도시라고 해도 화학물질로 지은 새 집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화학물질들은 모두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아닌가. 새들이 영악해진 건지 아니면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환경을 오염시킨 결과인지 아리송하기만 하다. 새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이 날은 새 집 보고 충격 먹고 아이들 대답 듣고 충격 먹고, 충격을 두 번 먹은 날이다. 이런 글에는 사진을 붙여놓는다.

 

(13) 어제 그제 시청에서 해반천 풀베기를 한 모양이다. 물가 주변에 살고 있던 식물들이 하나도 남김없이 쓰러졌다. 출근길에 싱그럽게 걷고 싶은 느낌을 주던 녀석들이었는데 안타까웠다. 정비하는 건 좋은데 천 양쪽 길가의 잡풀 위주로 하면 좋겠다. 오늘 아침은 땡볕에 노출된 물속을 노니는 물고기들조차 삭막해 보인다. (6. 21)

 

*해반천은 도시에 살면서 자연을 느끼기에 참 좋은 곳이다. 물소리를 들으며 바람이 일렁이는 싱그러운 갈대숲을 보면 걷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어느 날 하루아침에 물길만 남고 모두 사라져버렸다. 이튿날 생각을 다듬어서 김해시청 누리집에 민원을 올렸더니 곧 장마철이라 정비를 하게 됐다는 답이 왔다. 그러면서도 이후 수풀을 제거할 때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는 말도 덧붙여 놓았다.

 

(14) 진주 처가 옆방에 베트남 부부와 여자의 동생 이렇게 세 명이 세 들었는데, 그 동생과 내가 마당에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위층에 세든 우리나라 사람이 나오더니 조용히 하라고 엄포를 놓는다. 베트남 사람끼리 얘기 나누는 줄 알고 나왔던 듯하다.

내가 본집 사위라고 하자 딸이 공부하는데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 같아 나왔다고 한풀 죽여 말한다.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시비를 당하는 것 같아 기분이 안 좋다. 만약 내가 없었으면 위층 사람은 외국인들을 벌레처럼 취급하며 소리치지 않았을까?

위층 사람이 들어간 뒤 그 베트남 사람은 나를 위층 사람 보듯 경계하더니 일주일에 한번만, 그것도 주말에만 친구가 온다며 이해를 구한다. 내가 괜찮다고 하니 피던 담배를 마저 피고 말없이 들어간다.

어떤 한국인! 참 야박하고 약자에게 비겁하다는 생각이 든다.(5. 5)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가 참 많다. 내가 사는 김해에는 특히 외국인들이 많다. 주말에 김해재래시장 근처에 가 보면 여기가 외국인가 할 정도로 외국인들이 바글바글하다. 외국인 노동자 이백만 시대라고 하는데 국적은 달라도 그들은 이제 우리나라 사람이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무시하는 얄팍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내가 부끄러워진다.

 

(15) 진주 상평탕은 이 동네 터줏대감들의 사교장이다. 탕에서 나오니 한 사람이 타블로이드판 중앙일간지에 난 김용민 관련기사를 들어 보이며 그를 씹고 있었다. 글마 지독하제. 끝까지 사퇴안하데. 그런 놈 놔두는 민주당도 독하제. 갸는 찬송가도 개사해서 불렀다메? 지가 목사 아들 돼지라 카데. , 글마예? 안됐기에 망정이지 됐으면 국회에서 패악질할 놈 아입니꺼. 개새끼. 미국이 북한에서 사람 죽였다꼬?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며 우리가 남이가?’ 정신을 실천하고 있었다. 나는 김용민을 잘 모른다. 우리 교감선생님도 재미있어서(!) 즐겨듣는 나꼼수를 한 편도 듣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한겨레나 경향 같은 진보신문이 정책검증을 하고 있을 때 조중동이 8년 전 김용민이 한 말을 씹어 돌리며 오로지 이기기 위한 패악질을 일삼았다는 점은 분명히 알고 있다.(4. 15)

 

*상평탕에 가면 늘 나는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든다. 주위에 숙박시설이 거의 없는 동네 목욕탕이다 보니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형님’, ‘동생이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고 힐끗힐끗 곁눈질을 받으면서 내 할 일만 하다가 나온다. 그 옆에 있는 송림탕도 마찬가지다. 무리에서 떨어지면 죽는 야생의 동물들처럼 그들은 함께 어울려 살고 있었다. 이방인인 내가 없었으면 그들이 저렇게 목소리를 높였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16) 목욕탕 가는 길에 만난 누런 강아지 한 마리. 지나가는 아줌마가 노숙자라고 소개한 이 똥강아지는 아줌마한테는 온갖 교태를 부리더니 나한테는 끝내 오지 않는다. 자기도 이 상황이 지겨운지 하품을 해대면서도 결국 마음을 열지 않는다. 내 인상이 그렇게 험악하니? 정말 안 오네 이 똥강아지. (4. 15)

 

* 목욕탕 가는 길에 강아지를 한 마리 만났다. 태어난 지 4~5개월 정도 되어 보이는 녀석은 담벼락 아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살피고 있었다. 너무 귀여워서 다가갔더니 슬금슬금 물러나기만 할 뿐 나에게 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웃에서 아주머니 한 사람이 나오자 꼬리를 잘래잘래 흔들며 가더니 바닥에 드러눕고 온갖 애교를 떨었다. 아주머니는 주인이 아닌데도 자기만 보면 이런다며 혀를 찼다. 아주머니는 집도 없는 떠돌이 노숙자라고 했다. 아주머니가 가고 난 뒤 다시 내가 다가갔지만 이 놈은 15분이 넘도록 한 번도 나에게 오지 않았다. 녀석에게도 나는 이방인이었다.

 

2012년 12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