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이야기 들려주기
무서운 이야기 들려주기
올 해 나는 교과전담을 맡았다. 맡은 과목은 과학이다.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모두 열 개 반을 가르쳤다. 담임 하면서 교실일기를 열심히 쓰고 싶었는데 교무부장을 맡아야 하는 운명(!)인지라 어쩔 수 없이 전담을 하게 되었다.
변명이지만 전담을 하다 보니 교실일기를 제대로 못 썼다. 그래서 최근에 과학실에서 있었던 일을 한 가지 쓴다.
교과 진도가 거의 끝나갈 무렵, 눅눅한 장마와 무더위가 이어지자 아이들은 영화를 보거나 밖에 나가 놀자고 아우성이었다. 더위에 지친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을까? 안 그래도 뭔가 변화를 주고 싶었는데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태연히 남은 공부를 했다.
“영화는 무슨! 학교에서 영화 보는 거 모두 불법이야.”
아이들은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아이들의 눈빛이 절망스럽게 바뀔 무렵 넌지시 입을 뗐다.
“무서운 이야기 해줄까?”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동작 빠른 아이들은 창가로 달려가 블라인드를 내렸다. 교실이 컴컴해지자 분위기가 으스스해졌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아이들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처음부터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으면 영화나 보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이 제법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혀 반대 방향으로 가다가 툭 던져 준 미끼를 아이들은 이게 웬 떡이냐, 아니 이게 웬 아이스크림이냐 하며 덥석 물었다.
“영화나 보지요?”
“밖에 나가 놀지요?”
더러 이런 용감한(?)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야기를 기다리는 대다수 아이들의 힘에 눌려 곧 사그라졌다. 3학년에서 5학년까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6학년들은 진도가 늦은데다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이야기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무서운 이야기는 주로 어릴 때나 그 뒤에 겪은 일에 살을 덧붙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너덧 가지 된다. 초등학교 때, 마을 산기슭에 있는 애기무덤에서 들려오던 아기 울음소리에 얽힌 이야기, 중학교 때 이사 갔던 집에서 군복을 입고 나타나 아버지와 가족들을 공격하던 군인 귀신 이야기, 첫 발령 받았을 때 자정에 어느 교실에서 들려오던 오르간 소리에 얽힌 이야기, 무덤을 이장하고 지은 신설학교에서 일할 때 보았던 할아버지 귀신 이야기 등이다. 이 밖에도 아직 살은 못 붙였지만 제법 쓸 만한 경험도 몇 가지 있는데 그 때 그 때 상황에 맞게 활용한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똑같은 이야기인데도 지난해에 했던 것과 올 해 하는 내용이 다르다. 등장인물이 달라질 때도 있고 심지어 사건 자체가 달라지기도 한다. 또 전담을 하면서 들려주어 보니 반마다 달라지기도 했다. 그러니 모두 허무맹랑하고 고무줄 같은 이야기이다.
해마다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터득(!)한 것이지만 사실 아이들에게 이야기 줄거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엉성한 줄거리일지라도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서 들려주곤 한다.
올 해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나 지어서 3학년들에게 들려주었다. 어느 날 집에서 일하다가 새벽 2시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밖으로 담배 피우러 나갈 때 느낀 경험을 소재로 삼아 살을 덧붙인 것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집에서 한참 자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어. 이게 무슨 소리야 하고 일어나보니 글쎄 새벽 두 시야. 전화를 받았더니 밀양 큰 집에서 전화가 왔네? 큰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거야.(큰 아버지는 몇 년 전에 세상을 뜨셨다.)
얼른 옷을 입고 문을 나섰어. 엘리베이터 앞에 갔는데 평소에는 잘 켜지던 조명등이 켜지지 않는 거야. (불은 한 번도 안 켜진 적이 없었다.) 무서웠지만 별 수 있나.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수밖에.
우리 아파트는 25층이라 엘리베이터가 엄청 빨리 움직여. 12층 우리 집까지는 금방 올라와.
그런데……(이럴 때 숨을 죽인다.)
이날따라 엘리베이터가 너무 천천히 움직여.
2층……
3층……
엘리베이터는 너무 늦게 올라왔어.
게다가 평소에는 나지 않던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어.
뜨득 뚝……
뜨득 뚝……
나는 평소에는 캄캄한 밤중이나 새벽에도 산 속에 있는 무덤 위에서 별 사진을 찍곤 해. 그만큼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인데(사실은 무서움을 엄청 탄다.) 이 날은 엘리베이터에서 나는 소리가 너무 무서웠어.
그런데……
엘리베이터가 5층에 다다르자 ‘띵똥’…… 하면서 서는 거야.
“5층입니다.……문을 닫습니다.”
안내 멘트가 나오더니 문이 스르르 닫혔어. 그리고 ‘뜨득 뚝’ 소리를 내며 다시 올라왔어.
이 때였어.
“흐흐으흐윽”……
“흐흐으흐윽”……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람 울음소리가 약하게 들려왔어. 남자 목소리 같기도 하고 여자 목소리 같기도 했어.
잘못 들었겠지. 이 시간에 사람이 탔을까 싶었어.
엘리베이터는 계속 올라왔어.
7층……
8층……
9층에 다다르자 다시 ‘띵똥’ 하면서 엘리베이터가 멈췄어.
“9층입니다.……문을 닫습니다.”
역시 안내 멘트가 들리더니 문 닫는 소리가 스르르 울렸어.
다시 엘리베이터가 올라오는데
“흐흐으흐윽”……
울음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왔어.
10층……
11층……
이제 곧 내가 서 있는 12층에 설 차례가 됐어.
“흐흐으흐윽”……
울음소리가 바로 앞에까지 왔어.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발이 움직이지 않았어. 너희들도 무서운 꿈꾸면 몸이 움직이지 않잖아?
“띵똥”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도착했어. 심장이 빨리 뛰고 가슴이 조마조마했어.
그리고……
문이 열렸어.
“아악~!”……
여기서 내가 큰 소리를 내며 탁자를 치면 아이들은 거의 실신상태가 된다. 귀를 막으려고 손가락으로 귀를 눌러대는 아이도 있고 여기저기서 비명소리를 내며 울기도 한다. 실제로 중학년은 많이 울었다. 우는 아이들은 달래주고 놀란 아이들은 괜찮다며 위로해주어야 한다.
“어떻게 됐어요? 선생님.”
호기심 많은 남학생들은 분위기가 잡히자 말자 이렇게 묻는다.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글쎄, 문이 열리자 말자 사람 다리가 내 앞에
툭!……
떨어지는 거야.
구두가 신겨 있고 양말도 신겨 있어.
기절할 뻔 했지.
그래도 내가 얼마나 용감한 사람이니?
고개를 들어 엘리베이터 안쪽을 봤지.
그런데……
내가 고개를 드는 순간 또 다리 하나가 툭! 떨어지는 거야.
완전 기절할 뻔 했지.
이번 다리에는 양말도 구두도 없고 발바닥에 붉그스름한 피얼룩 같은 것도 묻어있었어.
내가 용감한 사람인 건 아까 얘기했지?
나는 고개를 들었어.
그런데... 그런데...
바닥에 그 다리가 벌떡 일어서는 거야!
놀라서 넘어질 뻔 했지.
그래도 내가 얼마나 용감한 사람이니?
고개를 들어서 엘리베이터 안을 들여다 봤지.
그런데 다리 뒤에는 세상에, 세상에
그 다리의 주인이 벌러덩 누워 있는거야.
“흐흐으흐윽”……
이런 울음소리를 내며 말야.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눈치 빠른 아이들이 묻는다.
“에이, 술 취한 아저씨 아니에요?”
나는 아닌 척 하다가 답한다.
“입에 거품도 물고 있었어.”
“그러니까 술 취한 아저씨네요.”
“음… 맞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니?”
분석이 끝난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는 반면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비난을 퍼붓는다.
“뭐에요? 선생님 때문에 울었잖아요!”
“장난 하시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는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아이들과 이야기의 앞뒤를 끼워 맞춘다.
“그 아저씨가 왜 울음소리를 낸 거에요?”
“술을 너무 많이 먹었나봐. 괴로워서 울고 있더라구.”
“그럼 엘리베이터가 왜 중간에 섰어요?”
“아마 그 아저씨가 자기 집 찾다가 막 눌렀나봐.”
“엘리베이터에서 소리가 난 건 뭐예요?”
“원래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릴 때 소리가 나. 근데 낮에는 주변에 다른 소리가 많으니까 안 들리지. 밤에 주위가 조용하면 그 소리가 크게 들려.”
“맞다. 우리 아파트에도 소리가 났어요.”
이렇게 묻고 답하고 거들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아이들은 다시 밝은 표정으로 교실로 돌아간다.
3학년들은 이 이야기 하나로 마무리 지었고, 4학년은 애기무덤에서 들려오는 아기울음소리 이야기를, 5학년은 한밤중에 어느 교실에서 들려오던 오르간 소리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이들의 만족도를 조사해보지는 않았지만 교문에서, 운동장에서, 복도에서 만나는 아이들마다 다음 과학 시간에도 이야기해달라고 조르는 걸 보면 꽤나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절대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닌데 반응이 나쁘지 않아서 기분이 좋다.
전담은 아이들과 잠깐 잠깐 만나기 때문에 관계 맺기가 참 어렵다. 그런데 이번에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며 아이들과 많이 가까워 진 느낌이다. 한 가지 조심할 점은 심장 약한 아이들에게는 반드시 사전에 주의를 주어야 한다는 거다. (2012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