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앞두고
시험을 앞두고
학기말 평가를 앞두고 학교가 어수선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시험 준비하느라 이 문제집 저 문제집 풀며 공부하기 바쁘고,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시험 진도 맞추느라 밀린 수업 몰아서 한다고 정신이 없다.
이 맘 때면 늘 겪는 것이지만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이라는 게 참 어설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2학기 들어서 운동회 연습한다고 거의 한 달을 보내고, 학예회 준비한다고 또 며칠 보내고, 소풍이나 학부모 공개수업 같은 행사는 좀 많은가. 이러다 보면 제대로 수업할 시간이 부족한데도 학기말이 되면 어김없이 정상 진도에 맞춰 평가를 해야 하니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선생님들의 교육성과가 이런 평가를 통해서 모두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을 하고 평가하는 것이니 만큼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 진도를 제 때 못 맞춘 건 모두 내 책임이 된 느낌이다.
"시험 안 쳐봐라. 애들 공부하는 줄 아나? 시험을 쳐야 공부가 되는기라."
연세 지긋하신 선생님들은 숙련된 경험 탓인지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평가를 바라보신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내 능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런 말 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일부 선생님들의 반칙행위이다. 우리 학교는 학기말 평가 문제를 교사들이 과목을 나눠 출제한다. 모두 같은 내용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지만 수업을 하다 보면 선생님들마다 생각하는 핵심 지도내용이 다를 수 있다.
만약 그런 부분이 시험문제로 나오면 아이들이 안 배웠다는 소리를 하지 않고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수업 시간에 사전 지도를 하라는 뜻에서 전 과목의 시험지 복사본을 한 부씩 나눠준다. 문제는 이 때부터 일어난다. 실수로 빠뜨렸거나 지도가 모자랐던 부분을 보충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선생님들이 많다는 것이다.
지난 1학기말 평가를 마치고 놀란 것은 반별 편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었다. 전과목 평균점수가 20점이나 차이가 나기도 했다. 물론 우리 반은 피해(?)를 본 축에 낀다.
음악이나 체육, 미술, 실과 같은 예체능 과목의 경우 우리 반이 평균 65~75점 대의 분포를 보인 반면 성적이 높은 반은 85~90점 대였고, 심지어 어떤 반은 한 과목 평균이 98점인 경우도 있었다. 반 평균이 98점이라면 전설 속에서만 전해온다는 '완전학습'에 해당되는 점수다.
자기 반 아이들이 좋은 점수를 받는 걸 싫어하는 선생님은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진도 나갈 시간도 없는데 평가는 해야 한다고 하니 비교육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다른 반 보다 점수가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심정 또한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먹이가 있는 곳을 가르쳐주는 차원을 넘어서 먹이를 입에 물려주며 까지 점수를 올리는 방식은 동의하기 어렵다. 그 아이들은 앞으로 시험 때만 되면 노력하지 않고 문제가 흘러나올 선생님들의 입만 바라보게 되지 않을까?
여름 방학을 앞두고 반 어머니 몇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어느 분이 느닷없이 학기말 평가 결과를 물어보시는 것이었다.
"선생님, 우리 반이 이번 시험 점수가 낮다고 하던데 참말입니꺼?"
사실은 그러했지만 그렇다고 말하기가 참 껄끄러웠다.
"아닙니다. 우리 반 아이들 공부 잘 합니다. 국어나 수학 점수를 보면 오히려 상위권입니다."
이 말도 사실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더 자세히 말하기가 뭣해서 예체능 과목은 실기 위주로 평가를 하니까 이번 시험은 참고자료로만 활용한다고 얼버무렸다.
과정이야 어쨌든 내 아이가 전 과목에서 높은 점수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도 선생님들의 반칙 행위를 부추기는 원인이 될 것 같았다.
"선생님도 문제지 보면서 아이들한테 힌트 좀 주세요."
음악 전담 선생님은 시험 때문에 기분 나빠하는 내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한 마디 던졌다.
“따로 시간을 내려니까 시간도 없고 또 시험은 시험 아닙니까. 전부 다 점수가 높을 시험은 칠 필요가 없잖아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반 아이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다. 1학기에도 시험을 치른 뒤 다른 반 아이들과 점수 비교를 하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일제 시험을 치르고 반별 학년별 통계를 요구하는 학교측의 운영 방식도 문제가 많다. 사실 통계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선생님들은 다른 반을 의식해서 의도적으로 점수를 올리려는 마음을 먹지 않고 평가 결과를 순수한 지도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20대는 그렇다 치고 우리 30대 이상은 그냥 자연스런 결과가 나오도록 해 보입시더.”
별로 돈(?)이 안될 듯한 내 제안에 방금 40줄을 넘긴 한 여 선생님은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하자는 뜻인지 말자는 뜻인지 아니면 알아서 하자는 뜻인지 구분하기 힘든 웃음이었다.
시험은 아이들의 속만 태우는 것이 아니라 출제하고 감독하는 교사들의 마음도 씁쓸하고 무겁게 만든다. 차가워진 12월의 공기 무게만큼이나…. (2004.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