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어린왕자 2014. 3. 29. 23:04

상윤이


  오전 내내 컴퓨터실에서 인터넷 연수한다고 교실을 둘러보지 못했다. 4교시까지 연수를 마치고 점심 시간이 되어 교실에 가니 상윤이가 점심을 먹지 않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왜 울어? 어서 점심 먹어야지.”
  그러나 상윤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찔끔찔끔 눈물만 닦아냈다.
  머리를 들어 눈을 보니 조금 운 것 같지 않았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아이들이 놀렸나 싶어 아이들에게 물어봐도 왜 우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상윤이를 골마루로 데리고 나왔다.
  “아이들이 쵸코 우유를 다 가져 갔어요.”
  한참을 물어 봐도 대답을 하지 않던 상윤이는 자기가 먹을 쵸코 우유가 없어서 운다고 했다.
  상윤이의 말을 듣는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이들이 또 상윤이에게 나쁜 짓을 했구나 싶어 아이들더러 야단을 쳤다.
  “너거들은 어디 먹을 게 없어서 상윤이 우유까지 다 가져가서 먹나!”
  그러나 아이들 말은 달랐다. 오늘따라 흰 우유와 쵸코 우유가 반반씩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 나와서 너도 나도 쵸코 우유를 먼저 가져 가는 바람에 행동이 느린 상윤이가 쵸코우유를 가져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우유통에는 흰 우유만 몇 개 남아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너희들 욕심만 채우면 되나. 상윤이한테 그것 하나 챙겨주지 못해!”
  야단은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이미 뱃 속으로 들어간 우유를 끄집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옆반에 가서 쵸코우유를 하나 빌려와 울고 있는 상윤이에게 주고 나왔다.
  교실을 나오면서도 가엾은 상윤이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오려 했다.
  6학년에서 단 하나뿐인 부진아 겸 지진아 상윤이. 특수반이 있다면 특수반에 편성되어야 할 아이지만 아직 여건이 따라주지 못해 일반 학급에서 외로운 길을 가고 있는 상윤이.
  툭 튀어나온 엉덩이, 아장아장 걷는 걸음걸이, 퉁퉁 부은 듯한 얼굴, 두툼하고 튀어나온 입술, 또렷하지 못한 목소리… 상윤이의 외모는 누가 봐도 어떤 아이인가를 한 번에 알아차리게 한다.
  상윤이는 모든 면에서 보통 아이들보다 뒤떨어진다. 글은 더듬 더듬 읽지만 쓰기가 잘 안되고, 사칙연산도 덧셈, 뺄셈만 조금 할줄 알 뿐 곱셈 나눗셈은 하나도 모른다. 6학년이라고 교실에 앉아는 있지만 상윤이에게는 지금 이 학교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 시간이 되어도 제가 좋아하는 책을 들여다 보거나 때때로 로봇 조립, 색종이 접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유난히 먹는 걸 좋아하는 상윤이는 언제나 배가 불룩하다. 볼 때마다 “제발 좀 적게 먹어라”고 말하면 대답만 “예”하고 시원하게 할 뿐, 실제로 약속을 지키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가끔 사탕이나 먹을 것이 생기면 “이것만 먹고, 다음부턴 절대 많이 먹으면 안된다.”고 하며 나눠주기도 한다.
  간혹 내 책상 위에 먹을 것이 있는데도 주지 않으면 살금 살금 다가와서 귓속말로 “저거요”하며 손으로 가리킨다. 그럼 안 줄 수가 없다. 상윤이는 먹을 것을 받아 바로 먹지 않고 자리에 가서 한참 아이들 눈치를 살피다가 먹곤 한다. 언젠가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제가 많이 먹는걸 아이들이 보고 놀릴까봐 그런다고 했다.
  이런 상윤이를 반 아이들은 단지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인상을 찌푸리기 일쑤다. 3월 초에 상윤이를 다른 아이들과 한 모둠을 이루어 앉혀 봤지만, 날마다 책상을 떼어 놓는 바람에 지금은 아예 내 자리 옆으로 고정시켜 버렸다.
  아이들이 상윤이를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더럽고 냄새 난다는 것이다.
  한 번은 상윤이가 용변을 보고 옷에 똥을 묻혀 온 적이 있었다. 그날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니 창문이 활짝 열려 있고, 안돌려도 되는 날씨인데도 선풍기 4대가 열심히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코를 막고 소리를 질러 댔다.
  상윤이도 제가 잘못해서 아이들이 야단인 줄 아는지 제 자리에 앉아서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물로 씻어도 냄새가 나길래 마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 말고도 상윤이는 자주 입 주위에 반찬 양념을 벌겋게 묻히고 와서 냄새를 피우곤 했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상윤이는 늘 혼자다. 체육 시간이 되어 아이들이 모두 운동장에 나가도 상윤이는 혼자 교실을 지킨다. 1학기엔 제법 줄도 서고, 아이들 속에서 활동을 했지만 지금은 아예 운동장에 나가려 하질 않는다.
  하지만 눈치가 빠른 상윤이는 공부시간이 되면 교과서와 전과를 펴 놓고 전과의 답을 용케도 찾아 교과서에 꼼꼼하게 써 넣는다. 무슨 내용인지도 잘 모르면서 열심히 써 넣고 있는 상윤이를 볼 때는 참 가슴이 아프다. 답답해 하면서도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이 더 가슴 아플 따름이다.
  상윤이는 순수하게도 지난 11월 말, 자기 생일 때 다른 아이가 생각하지도 못할 제안을 모든 6학년 선생님들한테 했다. 주말에 가족들과 같이 생일잔치를 뷔페에 가서 하는데, 선생님들 모두를 초청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안되면 담임인 나라도 꼭 오시라고 일주일 전부터 날마다 이야기를 했다.
  아직 때묻지 않은 상윤이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하지만 상윤이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된다.
  책과 도시락을 들고 남들과 같이 학교에 오면서도 남들과 같이 공부를 하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는 상윤이를 볼 때면 달리 손을 쓰지 못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럽다. 가끔 생활글을 써보게 하고 틀린 글자를 몇 자 고쳐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상윤이의 삶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초등학교를 이렇게 어정쩡하게 마치고 중학교에 올라 가면 지금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내 잘못이 얼마나 큰 벽으로 다가와서 상윤이의 앞길을 막을 것인가.
  외로운 길을 묵묵히 걸어나갈 상윤이. 그 과정에서 내가 저지른 잘못을 어떻게 용서받을까. (1998년)

 

 

…이 글은 지난해 만덕 민들레문화원의 백영현 선생님 지도로 나를 비롯한 양산의 몇몇 초등교사들이 함께한 글쓰기 공부를 할 때 쓴 것이다.
  상윤이는 졸업 당시 집에서 가까운 00중학교에 우선지원했으나 불행하게도 추첨으로 밀려 4Km가량 떨어진 00중학교로 배치를 받았다. 여러 모로 상윤이에게 불행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며칠 전(98. 9. 18) 운동회 때 상윤이 어머니를 학교에서 만났는데, 상윤이가 용케도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상윤이를 놀리거나 때려서 걱정을 했지만 상윤이가 착한 아이라는 것을 알게되면서 위해주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핑계같은 소리지만 상윤이같은 아이가 학교에 더러 있는 것이 현실인데 비해 제대로 돌볼 수 있는 여건은 많이 부족한 편이다. 지난해 우리반 아이가 47명이었고, 지금(4학년)은 53명이다. 정상적인 아이도 하나 하나 돌보기 힘든 형편이다.
  특별히 이런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특별반이 있다고 해도 전문적인 교사를 투입하지 못하는 학교여건상 믿을 구석이 넉넉하지 못하지만 이런 반이라도 없는 우리 학교에는 특별반을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