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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글쓰기 교실(4)

늙은어린왕자 2014. 12. 24. 19:42

우리 집 글쓰기교실(4)

    

 

 

가끔 딸들이 쓰는 <우리 집 글쓰기 교실> 공책을 학교에 들고 갈 때가 있다. 글을 꼼꼼히 살펴보거나 컴퓨터로 입력하기 위해서다.

우와, 집에서 이런 일이 되나?”

대단하다. 역시 글쓰기 선생님에 그 딸이네.”

공책을 본 선생님들은 대개 부러운 눈으로 보거나 칭찬을 많이 한다. 하지만 약점을 콕 찌르는 분도 있다.

아이고, 딸들이 무슨 죄고. 애비 잘못 만나가지고 고생이네.”

우리 집 글쓰기 교실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이런 일을 일 년 가까이 끌고 온 것은 나 스스로 보기에도 놀라운 일이다. 아빠의 고집에 참고 견디며 따라와 준 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우리 집 글쓰기 교실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었다. 원래 계획은 2월까지이지만 1월까지만 쓴 뒤 작은 문집을 내려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 계획은 <우리 집 글쓰기 교실> 연재를 두 달 마다 한 번씩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동안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 번도 계획대로 실행하지 못했다. 다시 공책을 뒤져 보니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그냥 묻어두기엔 너무 아까워서 기억을 더듬어 한두 번 더 쓰려고 한다.

 

사춘기

큰 딸은 중학교 1학년답게 사춘기가 한창이다. 그런데 의외로 사춘기와 관련된 주제로 쓴 글은 두 편 밖에 없다. 남에게 내보이는 글이라 마음을 드러내기 싫었을까? 하지만 언니보다 더 지독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작은 딸은 한 편도 쓰지 않았다. 그러니 큰 딸이 두 번이나 마음을 드러낸 것을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추석 연휴가 지나고 무얼 쓸까 끙끙거리던 큰 딸이 글쓰기를 마쳤다며 수줍은 표정으로 공책을 내밀었다. 뭘 썼기에 이럴까? 다른 일에는 뻔뻔스럽게 들이밀면서 말이다.

<2의 사춘기>

저번 주에 있었던 시험 날, 드라마를 보고 나서 공부를 하려고 책상 앞에 앉았을 때였다. 아무 일도 없는데 이유도 없이 울렁거리고 슬펐다. 분명 그 감정은 시험이 긴장돼서 나오는 감정도 아니고, 속이 안 좋아서 그런 것도 아닌데 뭔가 이상했다.

차분히 생각을 해보니 남는 건 드라마 밖에 없었다. 내가 드라마 같은 걸로 절대 이러지 않았는데 갑자기 이렇게 되니 신기하고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얼른 감정을 접고 공부를 해야 하는데 쉽게 가시질 않았다. 드라마 장면이 계속 떠오르고 긴장(?)할 때처럼 딱 그랬다.

요즘 이상하게끔 드라마를 봐도 몰입이 잘되고 인터넷에서 슬픈 얘기를 보게 되면 계속 슬프다가 꿈에까지 나온다. 난 혹시 마음이 불안해서 그러는 게 아닐까 생각을 해 엄마에게 물어봤다.

엄마, 나 요즘 드마라를 보면 너무 몰입이 잘 되고 꿈에까지 나와. 왜 이렇지?”

사춘기라서 그래.”

왜 사춘기면 몰입이 잘 돼?”

감정이 쉽게쉽게 변하잖아.”

엄마는 내가 이러는 게 사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난 사춘기가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막상 사춘기 때문이라고 하니 요즘 이러는 게 사춘기와 연관이 되는 것 같기도 했다.

공부하다가 사회책을 보니 사춘기의 또 다른 말로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적혀있었다. ‘질풍노도가 무섭게 몰아치는 거센 소용돌이나 바람이라서 사춘기 때의 감정변화를 뜻하는 것 같았다.

난 내가 참 긍정적이고 명랑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나 보다. 1 초기에는 사소한 일로 화내니까 감정변화가 매우 심했는데 거의 끝쯤에 오니 몰입이 잘 되고 쉽게 감정이 변했다.

내년에는 중2인데 요즘은 중2들이 무서워서 2이라는 것도 있다고 들었다. 난 안 그러겠지만 혹시라도 그렇게 무섭게 변하면 아무도 못 건드릴 것 같다. (9.29)

딸은 내가 다 읽기도 전부터 반응을 물어댔다.

아빠, 어떻노, 잘 썼나? 왠지 쪽팔린다.”

뭐가 쪽팔리노? 이만하면 잘 썼다.”

진짜? ~!”

딸은 흥분한 사람처럼 거실을 서성이며 소리를 질렀다. 확실히 정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도 자기감정을 글로 써내려고 마음먹고 또 써냈으니 대견하게 보였다.

마음속으로 사춘기를 겪고 있는 큰 딸과 달리 작은 딸(나라)은 외모에 집착하는 거울 앞 사춘기를 겪고 있다. 작은 딸이 자기 이야기를 쓰지 않은 것은 아직 초등 5학년이라 마음 골이 성숙하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고, 감정이 생기면 툭툭 털어놓는 언니와 달리 문제가 있어도 마음속에 꼬깃꼬깃 간직하는 성격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작은 딸은 대신 언니나 엄마·아빠에 관해서는 많이 썼다.

 

<언니>

어제 저녁에 줄넘기를 마치고 집에 오니 항상 있던 언니는 없고 엄마만 있었다.

엄마, 언니야는 어디 갔어요?”

언니? 병원에서 링거 맞고 있다.”

으에?! 왜요?”

장염 걸렸대.”

나는 깜짝 놀랐다. 어제부터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던 언니가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장염에 걸릴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조금 있으니 언니는 아빠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장염 때문에 아무 것도 먹을 수 없게 된 언니는 엄마가 밥을 차릴 때 계속

배고파. 배고프다구.”

라며 배고파만 연발했다.

하필이면 엄마가 닭볶음탕을 해주셨는데 그 맛있는 닭볶음탕을 먹을 수 없는 언니를 생각하니 조금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가 밥을 먹고 있는데 침대가 있는 엄마 방 쪽에서 누군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굶주린 언니의 울음소리였다. 너무 배가 고팠던 언니는 닭볶음탕 냄새가 난다며 방문을 닫고 대성통곡을 했다.

너무나 서럽게 우는 언니를 보니 나 혼자 맛있게 닭볶음탕을 먹기가 미안해졌다. 하지만 닭볶음탕이 너무 맛있어서 조금만 먹을 수도 없었다. 항상 나를 괴롭히고 시비를 걸어대는 언니지만 배고파서 대성통곡을 해대니 조금 불쌍했다. (10/22)

 

언니는 사사건건 다투는 대상이기도 하고 또 없어서는 안 될 찰떡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렇게 동정하는 마음도 내보인다. 하지만 부모에게는 제법 냉정하다.

 

<휴대폰>

요즘 엄마, 아빠가 나한테 휴대폰에 관한 잔소리를 많이 하신다. 내가 집에 있을 때 잠시 시간이 나서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 엄마께서 한 소리 하신다.

"이나라! 또 휴대폰 만진다. 내가 볼 때 니는 조만간 휴대폰 뺏긴다."

내가 얼마나 이 소리를 많이 들었는지 이제는 다 외울 정도다. 그리고 또 내가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고 있으면 아빠가 와서 한 소리 하신다.

"나라! 안 되겠다. 나라 휴대폰 뺏어야겠다. 빨리 휴대폰 TV 앞에다 내!"

이렇게 휴대폰은 조금만 보아도 나는 혼이 난다. 나도 내가 휴대폰을 좀 많이 만진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휴대폰을 하루에 두 시간 정도는 봐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첫째, 휴대폰을 통해 친구와 더 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카톡이나 카카오스토리로 친구와 대화하면 친구와 더 친해질 수 있고, 그 친구를 통해서 또 다른 친구와도 친해질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휴대폰을 통해 웹툰을 보면서 힐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있는 네이버 웹툰은 마음의 소리, 야매요리 등 재미있는 웹툰이 많은데, 그런 웹툰들을 통해서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나 피로를 풀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는 휴대폰을 통해 쉽고 빠른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휴대폰이 없었다면 우리는 말을 통해 전달하거나 컴퓨터로 검색을 해서 느린 정보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휴대폰에 있는 기능인 인터넷, 카카오스토리, 카톡을 통해서 쉽고 빠른 정보를 알 수 있다.

이렇게 휴대폰에는 좋은 점이 많다. 그러니 휴대폰을 두 시간은 만지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5.26)

 

작은 딸의 이 이 소원은 결국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가을에는 한 달 동안 빼앗기기도 했다. 언젠가 이 문제는 진지하게 토론을 해서라도 해결 할 계획이다.

짐작컨대 작은 딸도 6학년이나 중학생이 되면 언니처럼 사춘기가 마음속으로 파고 들 것이다. 서서히 왔다가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는 언니와 달리 급하고 빠르게 와서 걱정인데, 언니처럼 부드럽게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병아리 키우기

집에서 글쓰기를 하면서 부딪치는 가장 어려운 점은 바로 글감 찾기다. 이 문제는 일 년이 다 되어가도 늘 어렵다. 딸들이 글감이 없다고 투덜거릴 때마다 작은 일상에 눈 돌려라, 엄마나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쓰라며 이런 저런 처방을 내리지만 단조로운 생활 때문에 쉽지 않다.

추석 날 아침, 보일러가 고장 나는 바람에 어머니가 가마솥에 물을 끓였다. 식구들 모두 마당에서 가마솥 물로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는데 이 일이 큰 딸에게는 남다르게 다가갔던 모양이다.

 

<시골에서 머리감기>

추석 당일 날, 나와 동생은 전 날 감지 못한 머리를 감으려고 마당으로 나왔다. 원래라면 할머니집 안에 있는 화장실에서 감았어야 되는데 하필 보일러가 고장 나서 어쩔 수 없이 가마솥에서 데운 물로 머리를 감아야 했다. 난 감기도 걸려있고 시골이라 아침엔 추워서 아주 따뜻한 물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드디어! 솥에 있는 물이 따뜻해졌다. 세숫대야 같은 대야를 가져와서 물을 붓고 머리를 담갔다. ! 나는 물도 아끼고 시간도 아낄 겸 두피(?)에 닿지 않은 머리카락 들은 찬물로 먼저 헹궜다.

이제 머리를 다 적시고 샴푸를 머리에 묻히니 머리가 시원했다. 아마 물에 적신 부분이 시골의 찬 공기에 의해 식어서 그랬을 것이다. 샴푸도 헹구고 린스까지 끝내 머리가 너무 상쾌했다.

집에서도 따뜻한 물로 머리를 감지만 끝나고 나면 화장실에 습기가 차서 항상 더웠다. 그런데 시골에 오니 시원해서 앞으로도 계속 마당에서 머리를 감고 싶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세수를 하기위해 물을 갈고 있을 때 아빠가 어릴 때 얘기를 해주셨다.

아빠가 어릴 때는 할머니집 안에 화장실이 없었거든. 그래서 항상 마당에서 감았는데 겨울에는 워낙 춥다보니까 머리를 감고나면 머리에 얼음이 생겼어.”

나로서는 절대 못 믿을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에 있는 만화책 엄마는 단짝 친구에서 주인공 자두라는 아이가 마당에서 머리를 감고 학교로 가면 항상 머리에 고드름이 있었다고 했다. 얼마나 추웠으면 머리에 얼음이랑 고드름이 맺힐까? 난 도시에 태어난 걸 감사하게 생각해야겠다. 만약 시골에 태어났으면 사계절 내내 감기를 끌어안고 살았을 것 이다.

그래도 14년 동안 이런 경험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경험이 된 것 같다. 추석 날 아침부터 머리가 상쾌해서 기분이 정말 날아 갈 것 같았다. 겨울엔 말고 여름이나 봄에 한 번 더 마당에서 감아봐야겠다. (9.22)

 

하지만 늘 이런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이런 일을 자주 체험하도록 시간 만들기도 어려워서 글감 찾기는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그러던 중에 시골에서 닭 키우기를 좋아하는 우리 학교 교장선생님이 부화기와 알을 구해오셨다. 교장선생님은 학교에서 부화시키기가 쉽지 않다며 내게 부화를 부탁했다. 나는 우리 딸들한테 좋은 기회가 되겠다 싶어서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집으로 가져왔다.

 

<병아리 이야기>

한 달 전, 아빠가 학교에서 알 세 개와 부화기를 들고 오셨다. 부화기를 설치하고 알을 넣은 뒤 물을 넣었다.

사실 난 아빠가 알을 부화시키는 데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부화기를 설치해도 그냥 눈으로 힐끔 보기만 했지 그렇게 구경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부화기에서 한 시간 만에 한두 번 알이 돌아가면서 지이이잉 소리가 나서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20일 후, 내가 학원을 마치고 왔을 때였다. 피곤해서 옷을 갈아입고 바로 소파에 않아 있었는데 갑자기 --”하는 소리가 났다. 처음엔 밖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고 별로 신경을 안 썼는데 문득 병아리가 떠올라서 부화기 앞으로 달려갔다.

역시 부화기 안에서 첫 번째 병아리가 태어나려고 알을 깨고 있었다. 순간은 신기하다고 생각됐는데 갑자기 겁이 나서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나는 아빠한테 병아리가 알을 깨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어봤더니 아빠는 기뻐하면서 가만히 놔두라고 하셨다.

그래서 알이 깨질 때까지 가만히 보고 있었는데 한 30분 쯤 뒤에 알이 확 깨지면서 병아리가 태어났다. 털이 다 젖고 눈도 제대로 못 뜬 병아리를 보긴 처음이어서 신기했다. 그런데 항상 사진으로 노오란 병아리만 보다가 안에 털이 다 보이는 병아리를 보니 약간 꺼려졌다.

계속 관찰하고 있다가 또 한 시간 뒤쯤 두 번째 알이 깨지고 있었다. 알이 깨지고 있을 때쯤 10분 간격으로 엄마, 동생, 아빠가 들어왔다. 가족들이 들어올 때마다 난 큰 목소리로 병아리 태어났어!”라고 소리쳤다.

아빠가 들어오고 10분 쯤 뒤 두 번째 병아리도 태어났다. 좁은 부화기 안에 병아리 두 마리가 태어나서 밖의 뚜껑을 쪼아댔다. 태어난 지 몇 시간도 안 돼서 그런지 발에 힘이 많이 없었다.

아빠, , 동생이 신기하게 병아리들을 쳐다보고 있을 때쯤 저녁을 준비하던 엄마가 병아리들을 보고 후다닥 도망가셨다. 원래부터 엄마는 동물을 싫어하셨는데 갓 태어난 병아리들이라 그런지 몰골이 초췌해서 징그러워 보이셨나 보다.

 

병아리가 태어나고 일주일 쯤 뒤, 아빠가 만들어준 상자 안에서 병아리들이 잘 뛰어다녔다. , 그리고 부화기에서 안 태어났던 병아리도 태어나서 나머지 두 마리들과 잘 어울렸다.

아직 병아리들이 아기라 그런지 플라스틱 창문에다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울기도 했고, 나와 동생이 안 쓰는 천 필통에다가 솜 같은 걸 넣어주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면서 보고 쪼아보더니 적응이 됐는지 세 마리가 꼭 붙어서 잠을 잤다.

며칠 뒤 한창 식욕이 왕성할 때 먹고 싸고 먹고 싸고를 반복해서 신문지를 깔아야 할 때가 왔다. 그래서 거실을 따뜻하게 하고 병아리들을 밖에 있는 신문지에다가 놓아주었다. 난 혹시나 온도에 민감한 병아리들이 죽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한편으론 큰 거실에서 이렇게 작은 생명체가 걸어 다니는 게 신기했다.

먹이를 주니 멀리 있던 병아리도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뛰어와 잽싸게 자리를 잡고 먹었다. 예전에는 먹이를 주면 한 2일 정도 돼서야 다 먹는데 요즘엔 5~10분 사이에 먹이를 다 해치운다. 거실에서 먹이를 다 먹고 적응이 안 되는지 세 마리가 똑같이 울어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상자 안에 다시 넣고 밖에서 지켜보았다.

그런데 아빠가 그 날 중대발표를 했다. 병아리들을 다음 주에 학교로 데리고 간다는 것이다. 난 아직 병아리들이 다 안 컸는데 데리고 간다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빠한테 조금만 더 커서 데려가면 안 되냐고 물어봤지만 안 된다고 하셨다. 아쉬워도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네.’하고 생각하기로 했다. 병아리들은 날이 갈수록 식욕이 많아지고 호기심도 많아졌다.

집에 오면 일상인 게 병아리 밥 주기인데 내가 먹이를 주는지 어떻게 알고 봉지 소리가 나면 꾸벅꾸벅 졸고 있던 애들도 달려온다. 가끔은 너무 세게 달려와서 창문에 부리를 박기도 했다.

이런 귀여운 병아리들을 결국 아빠가 학교에 데리고 가버렸다. 병아리 때까지 만이라도 키우고 싶었는데 아쉽고 허무했다.

내가 태어나서 동물을 키워본 건 처음인데 이번에 정말 좋은 경험을 한 것 같다. 다음엔 무슨 동물을 키워볼지 생각해봐야겠다. (11.17)

 

역시 병아리는 효과가 있었다. 생명이 탄생하고 자라는 것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교육 자료라고 여겼는데, 글쓰기 하는데도 도움이 됐다. 적어도 글감 하나는 확실히 보장된 것이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빠, 이거 쓸래요.” 하면서 먼저 제안이 들어왔다. 위 글을 쓴 큰 딸 뿐만 아니라 작은 딸에게도 병아리 키우기는 좋은 글쓰기 재료가 됐다.

 

<우리 집의 또 다른 생명체>

한 달 전쯤, 아빠가 학교에서 부화기와 달걀 세 개를 가져오셨다. 21일이 지난 6일 전의 일이었다. 줄넘기를 마치고 집에 와 보니 부화기 안에는 달걀 껍질을 깨고 나온 두 마리의 병아리가 있었다. 병아리의 털 색깔은 한 마리는 완전 노란색이고 또 다른 한 마리는 노란색이기는 한데 약간 어두운 빛이 돌았다. 아빠는 병아리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전구를 사서 집에 오셨다. 박스로 집을 만든 다음 지붕에 전구를 매달아 온도가 따뜻해지게 한 후 병아리들을 박으 안에 넣어줬다. 병아리들은 처음에는 가만히 앉아있더니 시간이 조금 지나자 박스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돌아다녔다. 그런데 병아리의 발가락이 원래 발가락 수인 세 개보다 두 개 더 많았다. 나는 혹시 병아리가 기형이 아닐까 생각하며 전화기로 병아리에 대해서 검색해 보았다. 검색해보니 이 병아리들은 그냥 병아리가 아니라 오골계였다. 종류는 실키오골계인데 몸에 털이 실크처럼 보송보송하게 나며 발가락이 다섯 개인 게 특징이라고 적혀있었다. 글 밑에는 다 큰 실키오골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있었는데 털이 정말 새털같이 나 있지 않고 실크처럼 나 있었다. 지금은 시끄럽게 삐약거리며 뛰어다니는 오골계들이 커서 사진처럼 된다고 생각하니 기대됐다. 조금 있으면 아빠 학교로 데러가서 크는 과정을 볼 수는 없지만 오골계들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한다. (11.17)

 

사실 생명체를 가까이 하거나 집에서 한 번도 길러본 적이 없는 딸들은 부화기를 설치하고 며칠 동안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또 기계 안에서 정해진 시간마다 알이 구르는 것만 보여주는 부화과정에서는 관찰할 것도 없고 쓸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부화기간이 끝나고 알이 깨지는 순간부터 딸들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 셈이다. 작은 딸은 이 다음 주에도 병아리를 소재로 글을 썼다.

 

<병아리 관찰일기>

며칠 전, 21일 동안 알에 있던 병아리들이 깨어났다. 깨어난 병아리는 모두 세 마리였다. 처음엔 두 마리가 늦게 태어난 한 마리의 발, 머리를 쪼며 공격하고 따돌렸다. 걱정이 돼서 두꺼운 종이로 벽을 만들어 격리시켜놓았는데 병아리는 격리시켜놓으면 사이가 더 나빠질거라는 친구의 말에 칸막이를 떼고 세 마리를 같이 놔둬보았다. 병아리들은 조금 따돌리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나자 잘 어울려 놀아서 안심이 되었다.

병아리들은 식탐이 엄청났다. 가만히 앉아 있다가 또는 꾸벅꾸벅 졸다가도 먹이가 들어있는 비닐봉지 소리만 들리면 삐약삐약 거리며 밥그릇 앞에 옹기종기 모였다.

먹이를 먹고 나면 그 다음 하는 일은 똥 싸기였다. 똥을 쌀 때는 기지개를 펴듯 팔(날개)과 다리를 쭉 펴면서 쏙- 하고 쌌다. 그렇게 싼 똥은 냄새가 고약했다. 온 거실에 병아리의 똥 냄새가 퍼지면 인상을 찌푸리며 향균제 페브리즈를 뿌릴 정도였다.

며칠 전 언니가 조금 식은 핫 팩을 병아리 집에 넣어준 적이 있었다. 나중에 보니 병아리 한 마리가 핫 팩 위에서 어린아이가 자는 것처럼 엎어져 큰 대자로 누워 자고 있었다.

또 어떤 날엔 병아리 세 마리가 구석에 모여 다 같이 자고 있었는데 소리가 나자 병아리 한 마리가 화들짝 놀라면서 뒷발질을 하였다. 그 발에 얼굴을 맞은 다른 병아리도 깨자 끝까지 자고 있던 병아리도 깨어 다 같이 뛰어다녔다.

병아리를 키우면서 냄새도 났지만 여러 가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던 것 같다. 병아리들이 아빠 학교에서 괴롭힘 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잘 자라줬으면 좋겠다. 특히 늦게 태어난 아이는 조금 비실해서 많이 걱정했는데 병치레 없이 쑥쑥 컸으면 하는 바람이다. (11.24)

 

일 년 내내 글감 문제로 고민했던 나와 딸들에게 병아리 키우기는 좋은 힌트를 주었다. 글감은 짜내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나오는 것이라는 걸 일깨워주었다고 할까. 저절로 나오려면 뭔가가 들어가야 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아이들의 오감을 일깨우는 체험이나 경험이 아닐까 싶다. 내가 우리 아이들한테 좋은 글쓰기 선생이 되려면 아빠로서 딸들이 좋은 체험을 많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또 좋은 경험을 떠올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소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일상들

20대 때 위장이 나빠 고생을 많이 했던 나는 음식에 대해 민감한 편이다. 특히 통닭이나 튀김 같은 기름진 음식을 싫어하고, 조미료가 많이 들어간 음식은 멀리 한다. 채식 위주의 전통식을 좋아하는데 고기를 안 먹을 수는 없어서 굽거나 튀긴 것 보다는 삶을 것을 주로 먹는다.

6~7년 전만 해도 이런 내 취향을 식구들한테 이야기하며 음식단속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위장이 좋아져서 예전처럼 단속하지 않고 때로는 내가 나서서 그런 음식도 먹어보자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식구들은 예전에 나 때문에 겪었던 아픔(?) 때문인지 여전히 내가 음식단속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제 나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데도 식구들이 피부로 느끼기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음식 싸움>

저녁을 먹을 때, 아빠가 어떤 기사를 보고 말씀하셨다.

음식습관을 바꾸면 성적이 올라간데!”

난 그 말을 듣고 또 아빠가 고기먹지 말라고 하시겠지?’ 라고 생각해 그걸 바로 말했다. 그랬더니 아빠가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나보고 항상 그런 것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고 하셨다.

아빠는 우리들을 생각해서 그런 기사를 까먹지 않고 우리에게 알려준 건데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그렇게 말하니 속상하신 것 같았다.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아빠와 말싸움을 하게 되어버렸다.

난 분명히 아빠의 생각과 의도를 알고 있었는데 괜히 말이 헛 나오고 튀어나갔다. 그래도 난 아빠가 계속 기사에 대해서 설명해 주실 줄 알았는데 내가 계속 아빠 말에 꼬투리를 잡고 말대답을 해 아빠가 너희 알아서 먹으라며 대화를 끊으셨다.

소파에 앉으니 내가 아빠한테 너무 심하게 말했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아빠가 상처를 입었을 것 같았다. 난 안 좋은 일이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그 일이 해결될 때까지 계속 머리에 남아 생각이 나는 편이다. 그래서 바이올린 연습을 하고 있어도 설거지 하는 아빠가 화가 나 수저와 밥그릇을 세게 놓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아빠는 원래 설거지를 할 때 세게 놓는 편이다. 하지만 기분 탓인 것처럼 그렇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아빠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었다. 난 아빠가 나를 위해서 보여준 기사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말로 아빠를 쏘아댔으니 그건 100% 내가 잘못한 일이다. 또 난 아빠 말을 끝까지 들었어야 되는데 아빠말도 끊으면서 내 주장이 확고하다고 고집피운 것도 잘못이다. 처음엔 이럴 마음이 없었는데 나도 왜 이렇게 된 건지 몰랐다.

그래도 아빠와 영원히 말은 안할 수 없는 것 같아서 20분쯤 뒤에 아빠!” 하고 불렀더니 아빠가 ?” 이라고 대답해주셨다. 난 아빠가 화가 풀린 줄 알고 아빠에게 계속 말을 걸고 이걸로 아빠와 나의 싸움이 끝이 났다.

아빠와 다시 친해져서 다행이라고 여겼지만 아빠랑 싸운 게 계속 생각났다. 또 아빠가 이런 좋은 정보를 가르쳐 주신다면 그 때는 놓치지 않고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0.13)

 

내가 기사를 소개한 것은 사실 작은 딸의 편식 습관 때문이었다. 작은 딸이 채소를 잘 먹지 않아서 걱정하고 있는데 마침 편식 습관을 고쳐야 두뇌활동이 활발해진다는 기사를 보고 알려준 것이다. 그런데 정작 들어야 할 작은 딸은 반응이 없고 큰 딸한테 불똥이 튀어버렸다. 큰 딸은 예전 기억을 되살려 아빠가 또 고기를 멀리하라고 말하려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나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 적이 없다며 억울해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은 잠깐 뜸을 들이고 끝났지만 이 문제는 우리 집에 가끔 불씨가 되곤 한다.

 

<머피의 법칙>

점심시간이었다. 별밤음악회 팸플릿 사진을 찍게 돼서 드라이 맡겨둔 단복을 찾기 위해 세탁소로 갔다. 단복을 찾은 후 집에 들러 갈아입고 있는데 내 단복치마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세탁소에서 까먹고 안 갖다 줬나?'

'설마 내가 가져오다가 떨어뜨리고 온 건 아니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며칠 전 드라이를 맡길 때 치마는 깨끗해서 맡기지 않았던 일이 떠올랐다. 치마가 분명 우리 방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나는 옷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우리 방, 베란다에 있는 세 개의 옷장을 이 잡듯이 뒤지고 설마 있을까 했던 겨울잠바가 있는 수납장까지 모두 뒤졌지만 치마는 나오지 않았다. 다급해진 나는 서둘러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 단복 치마가 안보여요."

"니 치마 드라이 안 맡겼나?"

". 어떡하지요?"

"그러면 옷을 하나하나 던져봐라. 나중에 정리하면 되니까 옷을 던지면서 구석구석 살펴봐. 일단 끊자."

나는 엄마 말대로 옷을 하나하나 던지면서 살펴보았다. 세 개의 옷장을 다 살펴보는 동안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수업시작 시간은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옷장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 때 내 눈에 무언가가 보였다. 바로 정리하기 어려울까봐 그냥 두었던 양말 통이었다.

나는 정말 설마 혹시 하는 마음으로 양말 통을 살펴보았다. 양말 통 속에는 치마가 곱게 개어져 있었다. 양말들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치마를 보니 정말 헛웃음이 나왔다. 집 안을 다 초토화로 만들어놓고 제일 마지막으로 살펴본 곳에 치마가 있다니... 정말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괜히 생겨난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 이 일을 아빠한테 말했더니 아빠는 웃으시면서

"그게 바로 '머피의 법칙'이라는 거야."

라고 하셨다.

"머피의 법칙이 뭐에요?"

내가 물어보니 아빠는 휴대폰으로 머피의 법칙을 찾아 보여주었다. 인터넷 어학사전에는 머피의 법칙이 '하려는 일이 항상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현상을 이른 말'이라고 나와 있었다. 나는 뜻풀이를 보는 순간 오늘 내가 겪었던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절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치마가 나왔기 때문이다.

아빠는 예전에 '머피의 법칙'이라는 노래도 있었다며 가사를 보여주었다. 가사 내용은 이랬다.

'오랜만에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우리 동네 목욕탕을 찾은 날은 한 달에 두 번 있는 정기휴일이 왜 꼭 걸리는 거야'

'내가 맘에 들어 하는 여자들은 꼭 내 친구 여자 친구이거나 우리 형 애인, 형 친구 애인 아니면 꼭 동성동본'

이 가사를 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을 겪었으면 노래까지 만들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낮에 이런 겪고 난 참 운이 없는 아이구나 생각했는데 꼭 나에게만 생기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안심이 되기도 하였다. (10.27)

 

하루는 딸들 방이 폭탄을 맞은 것처럼 어질러져 있기에 물어보니 작은 딸이 낮에 있었던 일을 줄줄 이야기했다. 들어보니 정말 실감나는 이야기였다. 특히 작은 딸 자신에게는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긴장되는 일이었겠나. <머피의 법칙>은 그래서 선뜻 쓰게 된 글이다.

요즘은 내가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이런 일을 겪어도 자주 겪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데 예전에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는가 하는 문제로 운명론까지 들먹일 때가 있었다. 내가 1층 승강기 앞에 서면 방금 출발한 승강기가 25층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고, 내가 신호등 가까이 가면 꼭 빨간불로 바뀌고, …‥.

이런 일이 많다고 느낄 때는 내 마음이 바빴던 때가 아닌가 싶다. 요즘이라고 이런 일이 적다고 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작은 딸도 이런 일을 겪고 글로 쓰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테니 적어도 이 일은 글쓰기 효과를 톡톡히 본 셈이다. (201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