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가꾸는글쓰기/2013 교육일기
성 바꾼 아이
늙은어린왕자
2014. 12. 24. 20:57
아침에 6학년 3반 선생이 자기 반에 성을 바꾼 아이가 있다며 생활기록부 정정신청 기안 결재를 부탁했다. 20년 교직생활 동안에 이름을 바꾼 아이는 많이 봤지만 성을 바꾼 경우는 처음이라 유심히 살펴보니 내가 2년 연속 담임했던 아이였다. 어쩌다가 성을 바꾸게 되었을까?
언제나 명랑하고 운동도 잘 하는 이 아이는 재작년 1학기 중간에 느닷없이 의령으로 전학간다고 해서 나와 아이들을 놀라게 했다. 엄마가 학교에 들러 이 사실을 이야기할 때 나는 매우 안타깝다는 말을 전했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이 아이는 우리 반의 분위기 메이커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미 일 년 동안 담임을 해서 정도 많이 들었던 터였다. 그런데 이 아이가 2학기 개학 하는 날 우리 반에 나타나서 또 한 번 우리를 놀라게 했는데, 사정이야 어찌됐던 나는 매우 반가워했던 기억이 난다.
남이 성을 바꾸는데 뭔 상관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나도 이 아이처럼 성을 바꿔본 경험이 있어서 동병상련이랄까 이런 감정이 느껴져서 이야기를 조금 할까 한다.
나는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5학년 1학기 때까지 '김정호'였다. 그래서 별명이 '대동여지도'로 불리곤 했다. 본관은 김해 김씨, 김수로왕의 여러 후손들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학기부터 김정호는 하루아침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어버렸다.
사연은 길지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이렇다. 경주 이씨 집안의 6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우리 아버지는 젖먹이 때 어머니(나에게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마침 아들이 없었던 이웃 마을 김씨 집안에 양자로 가게 됐다. 거기서 나를 비롯해 5남매를 낳고 40년 가량 살았는데, 느닷없이 둘째 할머니가 낳은 아들이 집안의 대를 잇겠다며 들어오는 바람에 아버지는 다시 경주 이씨 집안으로 복귀했고, 이 때 성을 바꾸게 된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5학년 1학기 때까지 '김정호'였다. 그래서 별명이 '대동여지도'로 불리곤 했다. 본관은 김해 김씨, 김수로왕의 여러 후손들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2학기부터 김정호는 하루아침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어버렸다.
사연은 길지만 간단히 얘기하자면 이렇다. 경주 이씨 집안의 6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난 우리 아버지는 젖먹이 때 어머니(나에게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마침 아들이 없었던 이웃 마을 김씨 집안에 양자로 가게 됐다. 거기서 나를 비롯해 5남매를 낳고 40년 가량 살았는데, 느닷없이 둘째 할머니가 낳은 아들이 집안의 대를 잇겠다며 들어오는 바람에 아버지는 다시 경주 이씨 집안으로 복귀했고, 이 때 성을 바꾸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 집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사람들이 들락날락 했고 사랑방에서 싸우는 소리도 잦았다.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가 중학교 1학년 봄에 아버지 친형제들이 모여 사는 마을로 이사를 가야 했다. 어른들 일을 잘 모르던 나는 이 일의 영향을 덜 받았지만 빈털터리가 되어 그 집안을 나와야 했던 어머니는 그 때 생긴 화병으로 요즘도 늘 신경약을 복용하고 계신다.
성을 바꾼다는 6학년 3반 아이는 나와는 경우가 많이 다르다. 가족 관계의 변화 없이 일을 겪었던 우리와 달리 이 아이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짐작컨대 마음 속에 생채기가 많을 것이다. 게다가 사춘기와 겹쳐서 그 사연의 깊이는 여느 또래 아이들 보다 훨씬 크고 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주의하며 지켜봐야 하리라.
그런데 수업 시간이나 길거리에서 이 아이를 만나도 별로 그런 낌새가 안 느껴지는 건 어찌된 일일까? 정말 그렇다면 무척 다행이겠다. 성이 바뀐다는 사실을 학예회 행사가 끝나고 아이가 직접 한다고 하고, 6학년 3반 선생도 그 때까지 이야기를 안 하겠다고 약속했다니 입이 간질간질한 나도 이렇게만 밝히고 아이들한테는 공표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많은 변화를 감내했을 이 아이가 여느 때처럼 명랑한 분위기메이커로 살아가면 좋겠다. (201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