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실수
9월 24일 저녁, 아내와 함께 동네 빵집에 들어갔다. 아내 학교에서 먹을 빵을 사기 위해서다.
아파트에 이사간 뒤로 내내 그 빵집을 이용해서 우리는 '단골'이었다. 하지만 단골 치고는 아주머니와 대화가 너무 없었다. 빵을 사면 꼭 다른 것을 끼워주며 단골 대접을 하는 아주머니에게 무조건 고맙다는 말만 되풀이 했을 뿐.
빵집에 들어가는데 아주머니가 밖에 나와 있었다. 눈짓을 하니 그 아주머니가 힘겹게 달려왔다. 배가 불렀기 때문이었다. 임신한지 6개월은 족히 되어보였다.
아내가 먼저 들어가서 빵을 사는 동안 나는 밖에 있었다. 주변을 한동안 두리번거리다가 빵집을 보니 아직 계산도 안치르고 있었다. 계속 밖에서 서성거리기가 힘들어서 빵집에 들어갔다. 그제서야 아내는 빵을 고르고 계산대에 섰다.
아주머니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서 마주 인사를 건넸다. 순간 이 아주머니에게 말을 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빵에 관한 아주 초보적인 말들만 오갔지 생활에 가까운 대화는 없었잖은가. 게다가 아내와 함께 있으니 말문도 쉬이 열렸다.
"애기 언제 낳습니까?"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아주머니를 보며 말을 던졌다.
"예? 저...아기 낳은지 몇 달 됐는데 부기가 안빠져서..."
대답을 하는 아주머니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아차 싶었다. 갑자기 낯이 뜨거워졌다. 이런 말 실수를 하다니.
"그럼...아기 낳기 전에는 지금보다 더 날씬했단...아니, 아기를 갖고 있을 때는 배가 안불러..."
상황을 바꾸어보려고 했지만 내 말은 자꾸 헛바퀴를 돌았다. 앞 뒤가 안맞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내가 손을 끌어 얼른 이끌려 나왔다. 엉겹결에 나왔지만 얼굴은 여전히 화끈거렸다.
"여자들은 아기 낳고 몸매가 안돌아가는 것도 속상한데 남들한테 그런 소리를 들으면 죽고 싶어진다."
아내의 말을 듣고 나니 더욱 미안해졌다. 그렇게 자주 그 집에 갔는데도 아주머니가 아기를 낳은 사실조차 몰랐으니 얼마나 무심한가. 아, 이 실수를 어찌할까나. 앞으로 그 빵집에 다시 들어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다음날 빵을 사러 갔다온 아내의 말로는 그 아주머니가 평소에 입던 스타일의 옷 대신 몸매를 넓게 가리면서도 날씬하게 보이는 다른 옷을 입고 나왔다고 한다.
관계가 엉성하더라도 말이 없었더라면 오히려 나았을 것을, 인간의 예의에 대한 의무감에 던진 한마디가 몇 날 며칠을 심란케 한다.
2001년 9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