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의 지름길 학습
어제 6학년 아무개 반 선생님이 공부시간에 학원문제집을 푼 아이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학교 수업시간에 학원문제집을 펴놓고 풀었으니 선생님은 속이 상했을테고, 학생은 그게 무슨 대수냐며 발뺌을 한 모양이다. 급기야 부모님이 학교에 오는 불상사가 터지고서야 문제는 해결되었다.
학교에서 학원문제집을 풀었다는 문제는 일면 단순하게 보일지 모르나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불러일으킨다.
지난 6일, 급한 일로 도 교육청에 다녀오느라 세 시간의 수업을 아이들에게 자율 학습으로 맡긴 적이 있다. 수학 공부를 하라고 일렀는데 갔다 와서 수업을 하려고 하니 한 단원의 공부를 자기들끼리 다 했다는 것이다. 그 단원은 [경우의 수] 단원이었다.
아이들 말은 학원에서 이미 다 배운 것이고, 그래서 풀어보니 쉬워서 다 해버렸다는 거다. 정말 몇 가지 물어보니 답을 척척 말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수업을 비켜갈 수 없는 일이라서 나는 처음부터 질문을 하는 척하며 공부를 해나갔다. 아이들은 공부한 걸 또 한다고 지겨워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문제는 푸는 과정에 대한 질문을 할 때 일어났다.
순서를 정하는 경우의 수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문제] 영이, 철수, 똘이, 훈이 이렇게 네 사람이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나란히 늘어서는 방법은 모두 몇 가지인가?
이런 문제의 해법은 영이를 맨 왼쪽에 세울 경우 피라미드 모양의 가지치기를 해 나가면 6가지가 나오므로 네 명이니까 24가지가 정답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가지치기를 생략한채 24가지라는 정답을 척척 말했다. 의심이 들어 물어보니 예상대로 학원에서 배운 '지름길' 해법을 이야기했다.
학원에서 순서를 정하는 문제가 나오면 4명일 경우 4Ⅹ3Ⅹ2Ⅹ1=24 가 된다고 미리 배웠다는 것이다. 다섯명이면 5Ⅹ4Ⅹ3Ⅹ2Ⅹ1=120 가지가 되겠지.
그러나 이런 공식은 초등학교 과정에서 배우는 해법이 아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면 왜 이렇게 되는지 배우고 공식을 이끌어내게 된다. 한마디로 교육의 월권을 행사한 것이다.
초등학교 단계에서 해야할 단계는 이런 문제가 나올 경우 수없이 피라미드형 가지를 그리는 것이다. 그게 경험이다.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단계 높은 원리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원주의 길이나 원의 넓이를 구할 때 쓰는 파이(π) 즉 3.14 도 초등학교 단계에서는 원통이나 접시를 갖다 놓고 수없이 지름을 재고 둘레를 재서 그 상관관계를 파악할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구태여 파이(π) 의 개념을 앞질러 가르칠 필요가 없다. 원의 둘레는 원 지름의 3.14배가 된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면 된다. 그게 중학교, 고등학교 가면 공부하는데 커다란 재산이 된다. 그러나 아이들은 미리 그 개념을 외우고 있다. 이런 예는 수없이 많다.
학원교육은 '보습'을 원칙으로 한다. 한마디로 보충 교육센터인 것이다. 대규모 학교 교육에서 빚어질 수밖에 없는 학습 결손을 보충하는 곳이 학원이 아닌가. 설사 미리 예습을 한다고 하더라도 순수한 예습에 머물러야지 초등학생들의 학습단계에도 맞지 않은 원리나 공식을 주입시킨다면 그것은 월권이요, 파행의 시작인 것이다. (2005.12.17)
최근의 우리나라 수학 실력이 초등학교 4학년 때 세계 1위였던 데 비해 4년 뒤인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는 세계 5위로 추락한다는 신문 보도가 있었다. 이것은 주입식 교육은 초기에는 빛을 보지만 장기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초를 튼튼히 하는 공부를 소홀히 하고 앞질러가는 연습만 하는 공부는 결국 뒤처진다는 것이다.
요즘 교실에서는 이러한 문제로 여러 가지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다. 앞으로 충분한 연구와 고민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