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어린왕자 2014. 12. 24. 21:14

내일(12월 5일) 학교 시험을 앞두고 아이들의 눈빛이 범상치 않다.
이번 시험은 정규 수행평가 항목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어느 문제지 취급업소로부터 전달받은 문제지로 그동안 공부한 내용을 지필 평가해보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담임에 따라 시험 결과의 극히 일부분을 수행평가에 포함시켜도 좋다는 계원의 이야기는 있었지만 가볍게 치를 정도의 시험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그만 아연질색할 뻔했다. 모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말을 빌자면 지난 토요일날 이번 시험을 대비하여 밤 10시까지 공부를 했다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도 평일날 대개 10시까지 공부했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들은 이 문제지 저 문제지들을 들고 시험 대비를 한다고 야단들이다. 요약집을 들고 외우고 있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아예 공부시간에도 수업을 제쳐 두고 문제를 풀고 있다. 이런 분위기 탓인지 모 반에서는 수업을 모두 시험 공부로 대신하는 등 하룻 동안 엄청난 '파동'을 겪었다.

모르긴 해도 학부모들은 학원의 이러한 방식에 심정적으로 동의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녀가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공부를 하고 오는 모습을 보고 일면 흐뭇한 생각마저 했을 것이다.

물론 시험을 통해 자녀의 성적을 알아보고자 하는 부모님들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또한 원생의 성적에 따라 학원의 사활이 걸려 있기 때문에 보다 성적을 높이고자 하는 사설교육기관의 의도도 이해는 한다. 게다가 최근의 학교교육 경향이 되도록 시험을 줄이고 개인의 특성과 소질을 감안한 교육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수량화된 자녀의 성적이 궁금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모두들 교육의 결과는 점수 하나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하는 듯해 씁쓸한 느낌이 든다. 여기서 하나 유의해야 할 것은 점수가 높다는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급하게 먹은 밥이 체한다는 말처럼 급하게 준비하여 단기간에 성적을 올려도 그것은 아침 햇살에 사라지는 안개처럼 대단한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기이고 의욕이다. 장차 길러야 할 것은 단기적인 처방에 의한 점수높이기가 아니라 보다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 이러한 동기와 의욕이 일어날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을 해주는 것이다. 그것을 하자면 어른들의 노력이 지금보다 배가되어야 할 것이다. 부모와 자녀, 교사와 자녀간에 신뢰를 형성하기 위해 끊임없는 대화를 해야 할 것이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최근 학교 교육의 흐름은 단지 점수화된 성적 뿐 아니라 어떤 과제에 대한 해결 능력, 성취하고자 하는 의욕, 생활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교육하고 평가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있다. 그것은 대학수학능력평가의 출제방향과도 일치하고 각 대학에서 학생들을 선발하는 기준의 다변화 정책과도 일맥상통한다. 이것은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의 판별기준이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 담장을 벗어나면 왜 이런 시각이 철저히 파괴되는 것일까? 오히려 입시위주의 공부가 아이들을 더욱 옥죄고 있고, 부모님들 역시 과거의 악습을 자녀들에게 더욱 강하게 주입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학교의 잘못된 교육관행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끊임 없이 각종 행사에 시달려야 하고, 교사들에게도 '교육'이 중심이 되는 직무수행 보다는 '행정'이 중심이 되다 보니 각종 잡무처리로 차분하게 교육할 분위기가 되지 못한 것이다. 과밀 학급이 되다 보니 교사가 꼼꼼하게 아이들을 챙기지 못하는 면도 있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이런 학교 교육의 맹점에 불신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녀에 대한 어른들의 소신이 확립되는 것이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부모가 목표로 하는 관문에 자녀를 통과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교육을 대한다면 교육은 허트러지고 아이는 망가질 것이다. 반면 서로의 신뢰 속에 차분히 장래를 함께 준비해 나간다면 비록 목표로 하는 관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더라도 교육은 바로 서고 아이도 바로 설 것이다.

이번 시험 '파동'을 대하면서 우리 교육의 현실은 아직 암담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직 '간판'이 인간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어찌 보면 가장 쉬운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을 해야 하는 부모의 입장도 한편으론 이해가 갔다.

하지만 사회는 변하고 있다. 점수 위주의 교육 아성은 점차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과연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길이냐는 것인데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혼선이 생기는 것같다.

교사로서 이번 시험 '파동'을 대하면서 장차 학교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고 그 노정에 나는 어떤 노력을 해야할 지 고민이 된다.
(200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