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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집어>와 함께하는 교육혁신

늙은어린왕자 2015. 12. 17. 20:12

 

 

 

 

 

 

<다집어>와 함께하는 교육혁신

 

한 해를 마무리하며 돌이켜보니 올 해 우리 교실을 가장 혁신(?)한 것은 특이하게도 <다집어>라는 다용도 집게다. 밥집에서 신발 정리하는 도구로 쓰는 물건으로, 고속도로 휴게소에 있는 만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걸 지난 초가을에 전남 강진에 갔다 오다가 어느 휴게소에서 샀다.

 

처음에는 교실에 가져올 생각이 없었다. 별 보러 야외에 나갈 때 가지고 다니며 뱀 잡으려고 샀다. 뱀이 나오면 집게를 악어 입처럼 벌려서 대가리나 몸통을 콕 집기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뱀을 엄청 싫어하고 무서워한다.

 

이런 생각으로 사기는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 뒤로는 뱀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무시무시한 도구를 들고 온다는 걸 알아차린 탓일까? 어쨌든 뱀 잡을 일이 없으니 들고 다니기가 짐스러워서 차 안에 모셔두었다. 그러다가 휴지라도 주우려고 학교에 들고 왔다. 그런데 이게 대박을 쳤다.

 

알다시피 학교에 쓰레기가 얼마나 많은가. 교실, 골마루, 화장실, 계단, 운동장, ... 아이들이 거쳐 가는 곳마다 쓰레기가 함께 한다. 그런데 <다집어>가 이런 쓰레기들의 천적이 되어주었다!

 

흔히 교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주우려면 손이나 양철 족집게를 쓴다. 하지만 손을 쓰려면 허리도 굽혀야 되고 또 손 더러워질 걱정에 주저하게 된다. 그렇다고 아이들더러 주우라고 잔소리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자꾸 하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 그러니 보고도 지나치게 된다.

 

족집게는 어떤가. 늘 이물질을 묻힌 채 우중충한 청소 용구함이나 화장실 한 구석에서나 찾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닌가. 그까짓 쓰레기 몇 개 주우려고 불결해 보이는 이것을 일부러 꺼내기도 그렇고, 쓰고 난 뒤에 다시 넣어두는 것도 일이니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다. 생긴 것도 뾰족하고 날카로워서 조금만 실수하면 옆에 있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흉기가 될 수 있다.

 

<다집어>는 이런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해주었다. 교실 한편에 또는 칠판 앞에 우아하게 세워두었다가 살짝 들고 가서 자전거 브레이크 잡듯 부드럽게 잡아주면 쓰레기가 맥없이 잡혀 올라온다. 허리를 굽힐 필요도 없고, 챙겨 넣는다고 청소 용구함이나 화장실까지 애써서 갈 필요도 없다.

 

생긴 것도 길쭉하고 미끈해서 가끔 골프채를 들고 다닌다고 오해를 받기도 한다. 나는 골프를 치지 않지만 이걸 들고 골마루를 서성거리고 있으면 아이들로부터 "선생님, 나이스 샷!"이라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그럴 때면 <다집어>를 멋지게 휘두르는 몸짓을 하며 "너거 아버지는 이러면서 골프공을 날리제? 나는 이러면서 쓰레기를 줍는다."고 하면서 쓰레기를 집어 보여 준다. 이럴 때 아이들로부터 받는 손뼉 소리는 유명 프로골퍼가 갤러리들로부터 받는 환호보다 더 우렁차다.

 

이 똑똑하고 멋진 도구가 집을 수 있는 쓰레기 종류도 다양하다. 작디작은 압정이나 지우개 조각에서부터 몽당연필, 사탕껍질, 터진 풍선, 다 빨고 난 사탕막대, 화장지, 버려진 안내장 등 학교에서 볼 수 있는 쓰레기란 쓰레기는 모두 먹잇감이 된다. 덩치 큰 우유곽, 페트병도 거뜬히 집어 옮긴다. 어찌나 무는 힘이 좋은지 아내 손목 잡듯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오므리고 있어도 결코 먹이를 놓치는 법이 없다.

 

어디 쓰레기뿐인가. 교실로 날아 들어와 길 잃은 채 천장과 창문을 왔다 갔다 하며 아이들을 위협(?)하고 수업을 방해하는 말벌도 척척 잡는다. 녀석들이 형광등이나 창문에 붙기를 기다렸다가 기다란 몸을 쭉 뻗어 살짝 오므려주면 제아무리 사나운 말벌이라도 꼼짝없이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다. 사로잡은 녀석들을 여유 있게 창밖으로 보내주면 순식간에 아이들의 영웅이 된다.

 

이걸 들고 한 5분 정도만 어슬렁거리면 쓰레기로 어수선하던 실내는 어느새 청정 교육현장으로 탈바꿈한다. 디스크로 삐거덕거리는 허리를 힘들게 굽히지 않아도, 구질구질한 청소 용구함이나 화장실을 뒤지지 않아도, 쓰레기 좀 주우라고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무시무시한 말벌에게 겁먹지 않고도 깨끗하고 공부하고 싶은 교실로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이 혁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런 쓸모 있는 물건이 1만원~2만 원 정도 밖에 하지 않는다. 휴게소에서는 2만원 가까이 하고, 인터넷에서는 1만 원 정도 한다. 단돈 1~2만원으로 교육현장을 쏠쏠하게 변화시킬 이 신통방통한 도구가 탐나지 않는가. 교육환경을 생각하며 쓰레기 줍기 봉사를 하려는 교장, 교감선생님이나 각급 기관 수장님들께 드릴 선물용으로도 전혀 부담이 없다. <다집어>와 함께 유쾌한 교육 혁신에 동참하지 않으시려나. 생활을 바꾼다는 <다집어>가 교육을 바꾼다! ㅋ

 

<이 글은 협찬사 도움 없이 썼습니다. 오로지 교육혁신만을 생각하며 쓰고 싶어서 쓴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