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원로교사
두 원로교사
지난 2월에 나는 색다른 경험 2가지를 했다. 특별한 경험을 시켜준 분들은 다름 아닌 우리 학교 원로 남교사 두 분이다.
한 분은 타 직종에서 오래 근무하시다가 15년 전에 다시 교직에 들어왔다. 봄방학을 앞둔 어느 날 교실 컴퓨터가 고장났다고 좀 봐달라는 말에 그 선생님 교실로 달려가서 컴퓨터를 봐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우리는 8년 전에 동학년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비교적 스스럼 없이 지내던 편이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문을 나서려는데 선생님이 A4 크기의 두툼한 책 한 권을 건네셨다. 학급문집이었다.
"선생님, 요즘도 문집을 만드십니까?"
"허허, 내가 이선생한테 배운게 이거 아이가."
참 반가운 문집이었다. 내용을 훑어보니 아이들이 국어시간에 쓴 여러 가지 글과 일기, 생활문이 빼곡히 들어있었다.
"어유 이런 걸 언제 다 모으셨어요?"
"모으기는 뭐, 지들이 쓴 글을 디스켓으로 담아내라고 하고 나는 불러오기만 했지."
8년 전 동학년을 할 때도 선생님은 문집을 냈다. 그 때는 담당 학년이 6학년이라 타자를 잘 치던 편집위원 몇 명이 거의 문집을 도맡아 만들었다. 나도 마무리하기전에 조금 손봐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선생이 문집 내는 거 보고 용기를 내서 안 만들었나."
선생님은 나를 볼 때마다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아이들에게 편집을 모두 맡긴 것이 마음에 걸렸을까. 선생님은 여름방학이고 겨울방학이고 시간만 나면 학교에 나와서 컴퓨터와 씨름하시곤 했다. 그렇게 시작한 문집을 지금껏 만들어오신다고 한다.
2학년들의 어눌한 손놀림이 그대로 담긴 문집에는 그림도 한 컷 들어있지 않고 맞춤법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글 하나하나마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엿보이고 선생님의 열정이 느껴졌다.
또 한 분은 작년에 동학년을 하신 분이다. 성품이 인자하고 늘 얼굴에 미소를 짓고 다니며 학년 분위기를 좋게 만드시는 분으로 마치 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 같은 선생님이다.
설 연휴가 끝나고 학교로 출근을 하던 날 학년 연구실로 가니 동학년 선생님들이 모두 흰 봉투를 하나씩 들고 싱글벙글 웃음을 짓고있는게 아닌가.
"이선생님도 빨리 와서 세배 하세요. 그래야 봉투 하나 받지."
학년부장선생님께서 농담조로 보채셨다.
"그래요? 근데 누구한테 해야 됩니까?"
아직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선생님들의 눈이 모두 원로 선생님으로 쏠렸다. 선생님은 입을 다문채 웃고만 있었다.
건네준 봉투를 열어보니 길다란 한지가 나왔는데 펼쳐보니 한자로 '비상(飛翔)'이라는 붓글씨가 쓰여 있었다.
"올해는 이선생도 몸 아프지 말고 훨훨 날아야 안되겠나."
설을 맞아 선생님이 새 해에 내려준 덕담이었던 것이었다. 사실 지난해에는 아침에는 학교로 출근을 하고 밤에는 병원에 출근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몸이 안좋았다. 선생님이 보기에 그 점이 참 안타까우셨던 모양이다. 덕담을 받아보니 몸을 짓누르고 있는 병들이 눈녹듯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자신에게 걸맞는 덕담을 받았다고 한다.
더욱 기쁜 것은 덕담과 함께 세뱃돈 5000원이 들어있는 게 아닌가. 5000원씩이라도 동학년이 선생님 빼고 15명인데 비용도 만만찮게 들었겠다 싶었다.
"정식으로 세배도 안하고 덕담도 받고 세뱃돈도 받으면 안되는데..."
세배를 하는 시늉을 하자 사람들이 웃었다. 자그마한 정성과 준비로 이렇게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힘이 선생님에게 항상 있는 것 같았다.
이 두 가지 일을 겪으며 나는 뒷날 나이가 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후배들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까 생각해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