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사이코 기질을 생각하며
내 안의 사이코 기질을 생각하며...
-‘싸이코가 뜬다’를 읽고-
사흘 정도 시간을 내어 권리가 쓴 장편소설 ‘싸이코가 뜬다’를 읽었다. 이 책이야 광고에서 본 적은 있지만 평소 소설을 잘 읽지 않던 나에게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책이었다.
먼저, 읽고 난 느낌을 나타내는 몇 개의 단어를 나열하자면 ‘충격’, ‘파격’, ‘신선’ 따위다. 문체가 여태껏 본 소설들과 달랐고, 전개방식도 복잡하였고, 뭔가 뜨끈뜨끈한 느낌이 드는 소설이었다. 20대의 작가답게 풋풋한 실험정신의 정수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인물의 선정, 언어의 선택, 이야기의 전개 등 하나같이 기존 소설과는 달랐다.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 작가는 도대체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아니면 평소에 얼마나 많은 책들을 읽었을까 그리고 얼마나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접했을까 하는 것이다. 온갖 지식과 문화의 채널에서 가려 뽑은 소재와 단어들을 퍼즐 맞추기 하듯 자신의 작품에 알맞게 끼워 넣은 것을 보니 역시 소설가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내용 중에 작품을 분석하려 드는 순간 본질이 훼손된다는 구절이 있던데, 내 능력으로 봐서 ‘분석’은 어림없고 단지 느낌을 말하자면 작가는 기성세대에게 뭔가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배경이 일본이지만 등장인물의 인물이 우선 심상찮다. ‘시킨다’를 연상시키는 ‘시키마 선생’, ‘심하다’ 를 떠올리게 하는 ‘시마다’, ‘변태’라는 발음이 느껴지는 ‘헨타이’, ‘사이코’는 이름 그대로 ‘사이코’. 퀴즈에 열광하는 일본사회는 시험(퀴즈)이 공부의 전부인 학교를 포함한 우리 사회를 연상시킨다.
짐작으로는 설정된 배경은 일본이지만 작가와 독자의 의식이 머무는 공간은 시종일관 우리 사회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 위에 표준과 정답 찾기만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에 항의메시지를 전달하고픈 것이 작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다양한 가치와 개성이 철저히 무시되는 사회의 벽 속에 갇힌 젊은 넋들의 절규가 배어나오는 듯하다.
‘자살’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음에도 전혀 어둡게 느껴지지 않은 까닭은 문체의 발랄함과 창조된 등장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애정 때문이 아닐까 본다. 때문에 마지막 부분에서 유서를 밝혀놓았음에도 전혀 유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파격적이어서일까. 굳이 이해하며 읽지 않아도 되지만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두고 책장을 덮으려니 아쉬움이 감돈다. 예를 들어서 ‘오답사회의 야광도시’에서 벌어진 일들. 에로틱한 화장실, 10명의 복제 인간 ‘모리’, 제록시안, 분실물 센터 등에서 겪은 주인공의 경험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급하게 읽은 후유증일까.
시선을 안으로 돌리면 학교 교사인 나 역시 ‘시키마’ 선생이 되어 정답과 표준 만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나 둘러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 역시 ‘선생’이라는 표준을 버리고 내 안에 존재하고 있지 모를 ‘사이코’ 기질을 억누르는 것만이 사회적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질서 있는 사람들 보다는 ‘사이코’들을 존중하고 배려해왔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그 기질이 (나이를 먹어간다는 핑계였는지도 모른다) 죽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이 소설 때문에 새삼 느끼게 되었다.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