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 화장실에 얽힌 추억
날마다 아침을 먹고 나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던 아내도 이제는 “○ 누러 갈 거제?” 하면서 음식쓰레기나 일반쓰레기 처리를 맡긴다. 일을 보고 들어올 때는 요구르트나 우유, 스타킹 따위 생필품 심부름이 뒤따르기도 한다.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도 문을 나서는 나를 보고 “올 때 껌사와.”하며 아빠의 이상한 외출을 이용한다.
이렇게 상가 화장실에 들락날락 하다 보니 말 못할 일들도 많이 겪었다. 술을 먹고 문을 부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르르 몰려와서 담배를 피워대며 침을 뱉어대는 고등학생들을 만나는 것은 예사다. 또 여럿이 드나드는 곳이다 보니 상태가 안 좋을 때가 많은데, 남몰래 씻고 주변 정리를 하면서 일을 볼 때는 왜 이래야 하는지 한심하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황당한 일도 가끔 겪게 되는데, 이를테면 열심히 볼 일을 마치고 나오려는 데 주머니에 화장지가 없는 경우다. 또 아침 일찍 갈 때는 상가 문이 안 열려서 주변 공원이나 일반 상가의 화장실로 가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겪었던 가장 황당한 일은 ‘중계방송’을 하던 술 취한 아저씨를 만난 일이다.
그 날은 저녁을 먹고 좀 늦은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고 있었다. 쪼그려 앉아 신문을 펼치며 볼일을 보려는데 비틀거리는 발소리가 나더니 옆 칸의 문이 쿵쾅거렸다. 술에 제법 취한 듯한 아저씨였다.
뭔가를 중얼거리기에 들어보니 이 곳 경상도에서는 흔히 듣지 못하는 완전 전라도 본토 사투리였다.
"뭐 한당가? 아, 왜 안 나오냐 잉!"
혀가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져 있었다. 저렇게 취했는데 제대로 나올 리가 있겠나 싶었다. 일을 보다가 주저앉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을 하는데 아저씨의 독백은 이어졌다.
"어따 큰 거 하나 나와부러!"
때마침 내가 큰 걸 봤을 때 아저씨도 그런 모양이었다. 제대로 변기통에 집어넣기나 했을까 상상하며 속으로 피식 웃고 있는데 또 아저씨의 말이 들렸다.
"또 구~울근 거 하나 나봐부러."
도대체 얼마나 정신이 없으면 ‘중계방송’을 하면서 볼 일을 볼까. 근데 아저씨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어째 나와 타이밍이 비슷한 게 아닌가. 발에 거울을 달고 내 쪽을 보고 있지는 않나 상상을 하며 마지막 힘을 쓰는데 아저씨의 말은 이어졌다.
"웜메 찌께다시꺼정 다 나와버러잉."
이 말을 들으니 아무래도 저 중계방송은 아저씨의 상황이 아닌 것 같았다. 양쪽의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게 아니라면 이 쪽 상황을 아저씨가 꿰뚫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의심이 깊어지면서 살짝 기분이 나빴지만 웃음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찌께다시?’
횟집에서나 듣던 말을 화장실에서 들으니 경우는 맞지 않지만 지금 내 상황에는 너무나 알맞은 표현이었다. 웃음소리가 들릴까봐 물을 내렸다.
이제 일어서서 옷만 입으면 되지만 저 아저씨가 또 무슨 말을 할까 잠시 기다려보았다.
"뭐한다냐? 왜 안 나오냐잉."
도대체 ○이 안 나온다는 건지 사람이 안 나온다는 건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아저씨가 일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나서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쾅!” 하며 내가 앉은 화장실 문을 발로 차는 게 아닌가. 화장실 문과 기둥이 통째로 흔들렸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오! 뭐 하자는 겁니까 지금."
상대가 술 취한 아저씨라 화는 크게 안 났지만 일부러 상가가 떠들썩하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갑자기 아저씨의 숨소리가 죽고 화장실에는 긴장된 정적이 흘렀다.
몇 초 동안의 차가운 정적을 깬 것은 아저씨의 휴대폰 음악이었다. 휴대폰에서 나오는 장윤정의 ‘짠짜라’가 긴장된 화장실에 가득 울려 퍼졌다.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던 아저씨는 제법 정돈된 말투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너 워디냐 지금? … 뭐이여?"
짧은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던 아저씨는 그 길로 말도 없이 후다닥 화장실을 나갔다. 나는 그 때서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상황을 파악했다.
짐작컨대 아저씨는 내가 자기와 술을 먹던 동료인 줄 알고 옆 칸에 앉아 중계방송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볼 일이 끝났을 즈음 나오라고 했는데 안 나오자 발로 찼다. 그런데 다른 사람 목소리가 들려 긴장하고 있는데 마침 그 동료한테서 전화가 와서 도망치듯 나간 것이 아닐까 싶다.
화장실을 나선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점잖게 상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이미 술 취한 아저씨는 가고 없었다. 내가 무서워서 숨어버렸을까. 화장실 중계방송 사건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이런 기억들도 이제 추억이 된다. 곧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기 때문이다. 남달리 정들었던(?) 화장실을 뒤로 하고 가려니 섭섭한 마음이 앞선다. 7년 째 써온 상가 화장실에는 정말 무엇이라도 보상을 해야 마음이 시원해질듯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한 가지 걱정은 이제 이사를 가면 어떻게 하느냐이다. 지금은 4층에 살아서 급할 때 후다닥 뛰어나올 수 있지만 새 아파트는 12층인데다 상가에는 양변기뿐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적응훈련을 해야겠지만 ‘찌께다시’가 해결되지 않는 양변기를 37년 동안 거부해온 내 몸이 받아들일지는 나도 모르겠다. (2006. 2. 24.)